여유머 콩트 (1) 착각은자유다

by 구민성

콩트- 착각은 자유다-

돼지국밥처럼 만만한 친구....













학규와 상호는 70년 우정을 과시하는 배꼽친구이다. 그들은 장날이면 거의 점심을 함께 먹는다. 오늘도 시장통 할매집에서 돼지국밥을 맛있게 먹는다. 밥값은 대부분 교대로 부담하되, 돈 내는 사람이 메뉴도 정하는 편이다. 말하자면 ‘패는 사람이 알아서 팬다’는 식인데, 주로 비싸지 않은 시장통 서민형 메뉴다. 대화의 내용도 대개 소소한 생활형이 많다.

“어이, 상호. 자네 그저께 신호 위반 걸렸다며?”

“그래. 재수없게 13만원 짜리 받았네. 우리 모교 앞에서 걸렸어.”

“신호 위반이 그렇게 바싼가? 운전 좀 천천히 하지.”

“아니, 계기판에만 신경 쓰다가 신호등을 깜빡 놓쳤지. 그놈의 30km 속도 제한 때문에…….”

상호는 국밥에 매운 양념장을 더 넣으면서 불평을 계속 늘어 놓는다.

“아니, 애들이 없어서 폐교 직전인데 어린이 보호구역이 뭔가? 열흘 동안 다녀도 애들이라곤 한 녀석도 안 보이는데 말이야.”

“그러게 말이지. 시골에 애들이 어딨다고.”

“법이란 현실성이 있어야지. 법 만드는 높은 놈들, 지들은 더 개판이면서 서민들만 힘 들게 만들잖아.”

“맞아. 높은 놈들이 더 엉망이야. 불법, 탈법은 그놈들의 전유물이지.”

“내 말이 그 말이야. 좋은 사람도 가뭄에 콩 나듯이 있기야 하지만, 죽일놈과 나쁜놈이 더 많아. 엄청난 특권도 누리지.”

정치권에 대한 학규의 불만도 만만찮다. 반주로 마시는 소주 석 잔에 취기가 오르는지 말이 조금씩 거칠어진다. 본래 두주불사형이었던 그는 요즘 많이 변했다. 말 한 마디에 술 석 잔을 마실 정도로 과묵했던 사람이 나이 들수록 술은 약해지고 말은 많아지는 것 같다.

“그 인간들, 저그는 노골적으로 법꾸라지 짓을 하잖아. 명백한 불법 사실에 대해서 불체포 특권이 뭔가, 지기미 떠그랄!”

“국민들은 신호 위반에도 처벌 받고, 지놈들은 음주에 뺑소니라도 돈 쓰고 빽 써서 빠져 나가지. 더러운 새끼들.”

“우리는 피 같은 범칙금을 물고, 저그는 국고를 흥청망청 빼 먹으니 세상 참!”

낮술을 즐기는 상호는 소주 한 병을 더 시켰다.

“오늘은 내가 알아서 패는 날이니까 많이 마시라고. 예산 범위 안에서 물 쓰듯이 쏠 테니까, 까짓거!”

“그래. 그 새끼들은 양주 처먹지만 우리는 소주라도 실컷 먹자고.”

사실 정치인이나 탐관오리에 대한 두 친구의 신랄한 비판은 저주에 가까운 것이다.

지금의 대가리급들부터 힘 쓰는 공직자들, 심지어 보좌관들 중에도 전과자가 유독 많다. 민주 투사나 사상범도 아니고 한심한 잡법들이 수두룩하다. 서로 상대의 흠을 잘 아니까 저그끼리는 퉁치고 넘어가는 것이다.

그들의 병역 비리, 입시 부정, 뇌물 수수, 불륜과 성희롱 등은 어쩌면 양념 수준일 것이다. 엄청난 금액이 오가는 부동산 변칙 개발이나 외환 관리법 위반 등도 안줏거리일 것이다.

보다 더 심각한 것은 반복되는 거짓말이며, 들통난 거짓말도 계속 우기는 덧칠 거짓말이다. 그러고도 부끄러움까지 삼켜버리는 뻔뻔스러움이 얼마나 역겨운가. 그런 인간들은 나쁜 짓도 안 들키면 괜찮다고, 소위 무죄추정 원칙을 들먹이거나 증거인멸에 열을 올린다. 불리하다 싶으면 증인도 죽여버린다. 인간이라기보다 야수라고 할 것이다.

그들의 비도덕적이고 비인간적인 작태를 두 친구가 계속 비판하는 중이다.

“거기, 어르신. 조용히 밥 좀 먹읍시다.”

대각선 옆 테이블에서 국밥을 먹고 있던 중년 사내가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손등에서 팔뚝과 목에까지 시퍼런 문신이 요란해보였다.

“아, 우리 이야기가 시끄럽소?”

“시끄럽지요. 근데 노인네들이 뭘 안다고 정치인들을그렇게 욕하시오?”

“아니, 젊은이. 우린 나라가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지 않소.”

상호의 댓거리에 사내가 불쑥 한 마디 내뱉는다.

“걱정은 조용히 하시지 노인네가 떠든다고 세상이 달라집니까?”

소주를 한 잔 더 마신 학규가 버럭 소릴 질렀다.

“이봐, 젊은 아저씨! 당신이 뭔데 우리 대화에 그렇게 간섭하오? 표현의 자유도 모르오?”

“표현의 자유도 다른 사람의 식사 분위기까지 망치면 안 되지요. 나도 조용히 밥 먹을 권리가 있으니까요.”

꼬박꼬박 대꾸하는 사내와 날선 실랑이가 더 이어질 분위기였지만, 식당 할머니의 만류로 수그러졌다.


사내가 툴툴거리며 나간 후에 학규가 말했다.

“친구야. 저 사내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모르는 노인네라고 했지? 우리가 정말 무식한 노인네들인가?‘

“아니, 저 사람이 착각하고 있어. 노인들이 뭘 모른다는 것은 정말 무지한 소리야.”

“그렇지. 착각이라도 보통 착각이 아니야. 우리도 요즘은 방송이나 유튜브를 통해서 세상을 많이 알잖아? 한심한 착각쟁이 같으니라고.”

“착각쟁이? 맞아. 착각은 자유라지만 심한 착각쟁이들은 언제나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지. 그건 정말 대책없는 착각이라구.”

“어쨌거나 나라가 정말 걱정이야. 소위 태극기 부대라고 하는 광화문 집회팀들의 덕분에 이 정도라도 균형을 잡는 거 같아.”

두 친구는 언제나 그렇듯이 말이 잘 통했지만, 주인 할머니는 아까부터 계속 하품을 하고 있다. 다른 손님이 없어 그런지 꽤 따분해 보인다.

상호가 일어서면서 말했다.

“여기 잠깐 기다려.”

“왜?”

“이 집에 물거름 좀 보태주려고…….”

“화장실?”

“그래. 잠깐만 기다려.”

상호가 화장실로 가자 학규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그런데 시간이 제법 지났지만 상호가 오지 않는다. 처음에 조금 지루했던 학규는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이 친구 왜 이리 늦지? 혈압도 있는 사람인데 혹시 화장실에서…….”

반주 치고는 술도 꽤 마셨으니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화장실로 가볼까 하는데, 바로 그때 상호가 멋쩍은 얼굴로 돌아왔다.

“어이, 이 친구야. 뭐 한다고 이리 늦었어?”

“아, 그… 뭐가 잘 안 나와서…….”

“뭐가? 오줌이?”

“아니, 그게… 저… 너무 작아서…….”

상호가 쭈뼛거리자 학규는 노골적으로 묻는다.

“아하, 거시기? 그렇게 작은데 애는 어찌 3남매나 낳았어?”

“무슨 소리야? 거시기가 작은 게 아니라 단추구멍이 너무 작아서 얼른 안 나왔지.”

“아, 난 또 뭐라고… 내가 헷갈렸네. 허허허.”

“자네도 헛다리 짚는 착각쟁이구먼.”

착각쟁이라는 말에 그들은 아까 그 젊은이를 떠올리며 실없이 웃었다.

길 건너편 까페로 자리를 옮긴 두 친구의 한담은 계속되었다.

“그래, 범칙금은 아까워서 어떻게 납부할껴?”

“안 그래도 미루고 있어.”

학규의 질문에 상호가 나무토막 던지듯이 불쑥 대답했다.

“왜? 얼른 내어버리지. 귀찮은데.”

“아니야. 혹시 국경일이 되면 특별사면이라도 해 줄지 모르잖아.”

“꿈도 야무지네. 누가 사면 해 준대?”

“혹시 알아? 8.15 특사나 명절에 민생사범에게 처분면제해 주는 경우도 있잖아.”

“안 될거야. 이렇게 작고 중요하지 않는 일에 정부가 신경 써주겠어?

정치사범이나 국가적인 중대사범이면 몰라도 …….“

“하기야 그 인간들, 돈 있고 빽 좋은 인간들은 온갖 구실로 다 빠져 나가지. 더런 놈들.”

상호의 불평이 이어질 때 학규의 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학규의 아내였다.

“여보, 지금 어딨어요?”

“아. 카페에서 친구랑 커피 마시는 중이오.”

“친구 누군데요?

“누구긴. 1번 친구 박상호 씨지.”

“정말이예요?”

“이 사람 또 왜 이래? 바꿔 줄까요?”

“아니, 됐어요. 빨리 와서 보건소에 좀 태워 줘요.”

“안 돼요. 나 지금 술 마셔서 운전 못 하니 마을버스 타고 가소.”

학규는 전화를 끊으면서 상호에게 말했다.

“이 사람이 요즘 의부증이 있는 모양이야.”

“의부증이라니? 이 나이에 무슨 바람을 핀다고…….”

“글쎄 말이지. 얼마 전에 부일식육점 남자가 마누라 친구와 붙어먹다가 온 동네가 발칵 뒤집혔잖아. 그때부터 동네 아지매들이 영감 단속한다고 난리도 아니야.”

“그야말로 가슴 아픈 착각이구먼. 식육점 최사장은 돈도 많고 인물도 좋으니까 여자가 붙겠지만, 학규 자넨 돈도 인물도 영 아니잖아.”

“아니야. 여자는 돈이나 인물도 좋아하지만 모두 그런 건 아니야. 남자의 지성이나 친절한 메너에 마음을 열기도 한다더라.”

“허허, 그렇다면 자네도 괜찮은 남자축에 들어가네? 말인 즉슨, 외적인 조건보다 내적인 깊이가 더 중요하겠지.”

“그럴 거야. 그러니까 우리도 포기하거나 기 죽지 말자고.”

“암, 그렇지. 뚝배기보다 장맛이라고 내면의 가치가 더 중요하니까.”

“껍데기만 보고 판단하는 여자는 별 볼일 없어. 저그는 안 늙을까? 지 얼굴도 쭈글해지면 남자가 떠나는데 그것도 모를 거야.”

“맞아. 저그는 늘 싱싱할 거라는 게 정말 화려한 착각이지.”

“진짜 착각쟁이는 그런 사람이야.”

그들은 늘 이렇게 공감대 형성이 잘 된다. 그러니까 70년 우정이 한결 같을 것이다.

두 친구가 까페 밖으로 나올 때 따사로운 햇살이 쏟아졌다. 자연은 계절을 착각하지 않는다. 가끔 변덕을 부릴 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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