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각 삼각형

by 인디 탐험가

도쿄 여행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는데 그건 후지산을 보고 ‘아, 산이란 저렇게 생겼구나’ 하고 새삼스럽게 생각을 했던 순간이다.

여태껏 산을 그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큰 고민 없이 이등변 삼각형을 그려왔으면서도, 실제로 그렇게 생긴 산을 본 것은 ‘처음’ 이였다.

두손의 엄지, 검지를 모아 삼각형을 만들어서 후지산과 겹쳐 보았다가, 때어보았다가를 반복하며 어느 쪽이 더 삼각형다운지도 비교해 보았다.

단지 산을 멀리서 본 것뿐이 없는 10분 남짓한 시간 이였지만, 그 이후의 남은 일정 동안은 뭘 보던지 ‘후지산의 나라는 이렇게 자전거를 거치하는구나’라는 식으로 눈에 보이는 게 뭐든 간에 후지산과 굳이 굳이 연관 지어 생각을 하게 됐다.

꼭 그렇게 ‘처음’이라는 단어를 앞에 붙이게 되는 일은, 좋게 말하자면, 일상 속의 비일상을 짚어 내 주는 것 같다.


후지산 말고도 기본 도형같이 생긴 것이 또 있었는데 바로 도쿄 시내의 건물들이었다.

“산이야 다 삼각형이고, 건물이 다 사각형이지?”라고 할 수 있지만, 다시 말하자면 삼각형, 사각형 닮은꼴을 넘어서서 그보다 더 사각형다울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다.

어떻게 그런 모양이 되었을까.

자로 댄 듯 사각형으로 만드는 것 까지는 건축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부분이라 해도, 건물 꾸미기 부분에 있어서는 사각형을 그린 사람과는 무관할 것 같아 사각형에 옷을 입히는 부분에 대해서 더 생각해 본다.

근데 그쪽 역시 보통 일이 아닌 것이 바디라인을 온전히 드러나도록 하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옷을 꼼꼼히 옷을 걸쳐 입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고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할 부분인지 동기부여도 잘 떠오르진 않는다.

건물에 간판을 붙이는 데에는 그런 평균적인 오돌토돌함이 있는 것 같다.

간판이라는 것이 가게의 입이 오돌토돌 ‘툭’ 튀어나와 어필 하는 ‘말’이라면 외벽을 간판으로 꼼꼼히 덮은 건물의 외관을 통제하는 일은, 다양한 사람의 의견을 한데 모으고 화합을 이뤄내는 일처럼 결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니 학창 시절 담임선생님에게 늦게나마 죄송한 마음도 든다.

학창 시절의 각 반을 생각 해 봤을 때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어떤 반을 가든지 최소한의 무질서한 소음이 있었다.

한사람이 발언할 땐 쥐 죽은 듯 경청하거나, 오히려 화음을 넣어 준다든지, 성가대처럼 자신의 위치에 맞는 음을 내며 모두가 완벽한 음악을 만들어 내기 위해 열중을 다 한다든지 이런 질서정연한 방식으로 말할 기회를 얻는 교실은 본 적이 없다.

나의 경험으로는 그런 반을 상상하는 것조차도 힘들다.

근데 도쿄 거리를 걷다 보니 그런 교실은 몰라도 그런 건물이 있기에 눈길이 안 갈 수 없었다.

그런 건물들은 내가 생각했던 건물이라는 단어의 폭이 조금 넓어지도록 도와줬다.

더 다양한 건물을 보고싶다는 마음도 들었지만 지금은 간판을 붙이는 방법과 후지산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보기로 했다.




간판이라는 건 사람의 ‘말’만큼이나 다양한 방식으로 이웃 간판, 건물들과 관계를 맺는 것 같다.

차이라고 하면 말은 실채가 없지만 간판은 물질이여서 “과장님 귀여운 척하는거, 창피해서 같이 밥먹기 싫어요”같은 것을 한번 만들고 나면 생각이 바뀌어 다른 말을 하고 싶어도 꽤 오래동안 그 말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상대방을 생각하면서도 내 할말을 온전히 전달하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그래도 급한대로 최선을 다해서 만들었는데, 시간이 지나 생각해 보니 옆 사람 말을 자르거나 현 상황에 적절하지 않은 말이였다 하더라도, 묵묵히 주인장의 책임을 머금고 주어진 메시지를 전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저런 일을 막기 위해 말보다는 조금 더 명확한 규제가 정해져 있어 도시마다 각기 알맞은 법을 만들어 상호배려를 가이드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가이드를 하더라도 각자의 목적을 위해 모인 간판들이 건물 위에 하나의 맥락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또 다른 가이드 혹은 그 이상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가이드를 따를 마음이 없고 각자의 말 소리를 높인다면

건물은 꼭대기 점부터 바닥까지 건축가가 그린 선을 따라 깔끔하게 내려오지 못하고, 옆선이 마치 오르내리는 익일 주가 차트처럼 맥락을 알 수 없는 모양새가 된다.

그건 이미 설계 당시의 형태와는 거리가 있다.

그 속의 좋고 나쁨은 알 수 없지만 나는 거기서 건물이 추구하는 이미지는 얼핏이라도 느낄 수 있어 재밌었다.

강남 가로수길에서 간판을 달 때 고려하는 점은 미학적 기준 준수와 독창성, 북촌, 전주 한옥 마을과 인사동은 전통적인 디자인이 기준이라고 한다. (Gpt)

도쿄에서 내가 얼핏느낀 것은 ‘상대방이 불편해할 것을 미리 최소화하는 것’ 이였다.

그 속에는 즉각적으로 눈에 보이는 시각적 불편함 외에도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효율과 절약이 있었다.


간판 외에도 사람 손이 닿은 모든 곳의 물건이 완성된 시점 이후의 일어날 많은 가능성을 세심히 고려한 듯 보였다.

보도블록의 짜임새부터, 물건 하나하나가 긴 시간 다른 사물과 관계하며 기능 할 수 있도록 설계가 되어있어 오래돼 보임에도 교체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왠지 모두 자기가 있어야 할, 제자리에 있는 듯 보였다.

한편으로는 그 사물들의 선명함이 부럽기도했다.

진작에 자기 역할을 찾고 100년이고 그 자리를 지킨 라맨 집이라던지, 공간과 어울리지 않아야 정상인 물건들이 가득 차 있음에도 그 안에서 세월이라는 맥락을 만들어 농익은 분위기를 보여주는 카페라든지 다양한 종류에 선명함이 있었다.

자신의 역할에 만족하고 자신의 존재 이유를 명확히 아는 듯 보이는 것은 사람이든 물건이든 혹 그것들이 합쳐져 만든 넓은 도시, 국가이든 간에

세심한 선택이 오랜 시간 축적돼 밀도를 만들면 선명해 보이는 법이다.


그런 선명한 도쿄 거리를 걷다 보면 자신의 상황과 여력에 맞는 옷을 적절히 걸치고, 바디 라인도 잘 살린 건물들을 종종 볼 수 있어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소유한 땅의 면적을 공중에서도 서로 침범하지 않으려고 한 듯 보여서 신기했다.

얼마나 신기했는지 넋 놓고 구경하다 보니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다.

또 보다 보면 건물이 사람처럼 앉아 있는 것 같이 보이기도 했는데, 그 모습이 식당이나 지하철에서 만난 일본인들과 똑 닮았다.

고의든 아니든 자기 자리 이상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 수치스럽게까지 생각하는 듯, 반듯이 앉아 있는 일본인들처럼.

건물도 자기의 네모난 땅 이외에 그 밖에 대해선 생각도 않고, 자기에게 주어진 네모 칸에 자신의 색을 더하는데 열심을 다하며 서 있는 듯했다.

그런 건물들을 보고 있으면 ‘그 사람들에 그 동네구나’ 하고 조금은 편견을 가지게 됐다.



일본 여행 이후로 산을 그리려고 하면 멈칫, 하고 삼각형의 한 면 정도는 삐뚤게 그리거나 삼각형을 하나만 그리지 않고 줄 지어 여러개 그린다.

그리고 나서 한발짝, 뒤로 물러서 보면 그편이 더 ‘산’ 같다.

다시 말하면 내가 자주 보던 북한산 같다.

뭐 북한산이 아니더라도 ‘정’ 삼각형인 산은 흔치 않으니까.

근데 그 후지산이라는 것은 굉장히 ‘정’ 삼각형으로 생겼다. (아니 이등변 삼각형)

어째서 그렇게 생기고 만 것인지 꼬치꼬치 캐묻고 싶어도 누구한테 물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꼭 사람 앞에 서면 생각없이 말하게 되고, 혼자 있을 때 생각이 잘 돼버려서 혼자 망상에 빠져선 질문이 마구 떠오를 때는 받아줄 사람이 없어, 결국 혼자 풀어가는 게 인생인 모양이다.

혼자 고민해 봐도 여태 울룩불룩한 산을 보고 자랐으면서도 왜 그렇게 본적도 없는 모양새로 산을 그렸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거짓 그림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마음대로, 잘도 본적 없는 후지산을 그렸으면서, 삼각형과 똑 닮은 산을 보니 글쎄, 현실고증이 잘된 그림을 그리는 타입도 아니지만, 왠지 편의를 위해 산을 이등변 삼각형으로 그리는 게 꺼림칙한 일처럼 느껴진다.

산을 그려야지 할 때마다 생각이라곤 할 필요 없이 이등변삼각형을 그렸지만, 이제는 그렇게 그리면 다른 이는 몰라도 나는 그게 후지산이라는 것을 알아버렸다.

그게 양심이라면 양심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에서 유치원 시절, 우렁찬 포효를 하는 무지개색 티라노 사우르스 그림의 배경으로 후지산을 그려도 뭐라고 하는 선생님은 없었다.

(나는 그 그림으로 미술 대회에서 무려 대상을 받아, 아직까지 그게 최고 경력이다.)


후지산이고 뭐고 그건 그냥 산이다.

유치원생이 뭘 알고 그리겠나, 그리고 그게 뭐 그리 대수라고 난리일까 싶지만.

이것 외에도 이런 나만의 양심이라든지 편견이 셀 수 없이 많은 것 같다.

하나하나 꺼내볼 엄두도 안 날 만큼 싸여있다.

예를 들면 ’난 바지 밑단이 어정쩡한 사람을 보면 정이 떨어지더라고, 어떻게 마음을 고쳐먹으려 해도 별수 없더라’

(예시일 뿐 내 마음과는 무관하다) 라던지

그런 점들을 하나하나 사람들 앞에 공개 한다고 생각하면 창피하면서도 그런 점을 빼면 나를 소개할 수 있을까? 싶다.


그런 개인적인 규칙들이 나의 결핍과 욕망의 지나온 발자취가 아닐까.

그런 것들이 좋든 싫든, 이리저리 꿈틀꿈틀 지나온 길은 위아래로 물결을 치면서 파동을 만들고, 어디인지 내가 가늠 할 수 없는 곳부터 나의 겉모습 너머 드러나는 곳까지, 오르락내리락 자아라는 바코드를 만들어 낸다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적절한 규칙들을 만들고 자신에게 주어진 건물 외벽에, 건물의 정체성이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야무지게 꾸며보는 것.

옆 건물이 다치지 않을 정도로만 나의 간판을 주장 하는 것.

또 언젠가 변화를 맞이해야 할 때를 위해, 건물 외벽에 간판을 이리저리 옮길만한 여유 또한 그만큼 중요한 것 같다.

나는 방심하면 건물 외벽을 가득 채우는 데에만 집중을 하게 되는 경향이 있지만 아무튼 그래서

나의 경우 어떤 식으로든 빈공간을 만들어 주는것이 나에게 꼭 맞는 리듬과 산맥, 바디라인을 찾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렇게 모은 간판이든 옷이든 생각을 죽 늘어놓았을 때, 나는 여러모로 후지산과 거리가 멀다.

나는 아무래도 한국의 산을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