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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나는 마케터인가, 사업기획가인가?

스타트업 멀티플레이어의 애매한 함정

by Beyond Work
premium_photo-1678216286021-e81f66761751?fm=jpg&q=60&w=3000&ixlib=rb-4.0.3&ixid=M3wxMjA3fDB8MHxwaG90by1wYWdlfHx8fGVufDB8fHx8fA%3D%3D 출처: unsplash.com

스타트업 출신이면 누구나 겪는 고민이 있다.

다양한 역할을 하면서 오히려 정작 나 자신을 정의하지 못하는 상황 말이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이력서를 수십 번이나 고쳤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야?”


서류 탈락의 횟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초조해졌다.

분명 스타트업에서는 누구보다 빠르고 유연하게 일했는데, 이직 시장에서만큼은 내 경험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매일같이 AI와 논쟁을 벌이며, ‘이번엔 되겠지’ 했던 희망도 자꾸만 멀어져갔다.


어느 날 AI가 나에게 결정적인 질문을 던졌다.


“지속적으로 떨어진다면, 지원 포지션을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겠어.”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런 생각을 한 번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이력서를 냈을 뿐이었다.


이 질문 하나로, 모든 문제의 근원을 깨달았다.


“넓게 일한 경험이 오히려 독이 되다니.”


스타트업에 있던 시절, 나는 마케팅 캠페인도 기획했고, 신사업도 개발했으며, 투자 유치까지 다양한 일을 했다.

스타트업에서는 그것이 당연한 일이었고, 그것이 나의 경쟁력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AI가 지적한 대로, 내가 여러 가지 일을 해온 건 결국 내가 뭔가에 ‘깊이’ 있는 전문성을 가지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력서마다 내 경험이 중구난방으로 흩어져 있었고, 명확한 포지셔닝이 없었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나는 그저 ‘애매한 지원자’였다.

모든 일을 다 한다고 강조했지만, 사실 어떤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 채용 담당자에게 전혀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내가 해야 하는 선택은 무엇인가?”


그때부터 포지션 분석을 다시 시작했다.


지원하려는 회사의 채용공고를 깊이 있게 뜯어보았다. AI와 함께 문장 하나하나를 분석하며, 기업이 원하는 구체적인 역량을 찾아갔다.


마케팅 포지션의 역량을 구체적으로 살펴봤다.

• 퍼포먼스 마케팅 운영 경험

• 데이터 기반 자동화 마케팅

• 퍼널 전환율 관리 역량

• 유료 광고 운영 및 효율 최적화


확인하는 순간 깨달았다.

“이게 내가 그간 했던 일인가?” 솔직히 아니었다.

내가 마케팅이라고 불렀던 일들은 훨씬 더 사업기획에 가까웠고, 이런 기술적인 마케팅과는 맞지 않았다.


그동안 이 사실을 모르고 지원했으니,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업기획 포지션을 다시 들여다봤다.

• 신사업 개발 및 BM 설계 역량

• 시장 조사와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능력

• 사업 타당성 분석과 투자 유치 지원 경험


하나씩 체크하면서 소름이 돋았다.

이건 내가 지금껏 해왔던 일과 완벽히 일치했다.

MVP 출시, 신규 시장 조사, TAM-SAM-SOM 분석을 통한 BM 구축, 투자유치 성공까지, 내가 낸 성과들은 모두 사업기획 포지션에서 가장 빛났다.


결국 문제는 단순했다.

그간 내 커리어는 마케팅 베이스였기때문에, 해당 포지션에 계속 억지로 나를 맞추려고 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동안 내가 왜 그렇게 떨어졌는지 이제 명확해졌다.


나는 이제 마케터가 아니었다. 사업기획자였다.


하지만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마케팅을 포기하면 그동안 했던 많은 경험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또 한 번 자존심이 무너졌다.


“이렇게 쉬운 걸 왜 이제야 알았을까?”


여전히 나는 서류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마침내 방향을 찾았다는 점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이 과정에서 나는 AI와 매일 밤을 새워가며 토론했고, 때론 울고 웃으면서 나 자신과 싸웠다.


이제는 더 이상 헤매지 않고, 내 경험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포지션에 도전할 준비가 되었다.



다음 편 예고


마케팅을 포기하고 사업기획자로 방향을 전환하자, 비로소 서류 통과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사업기획자로서 나는 정말 준비가 된 걸까?”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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