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espa Dirty Work MV: 다시, 성전

by 고 란

'24년 10월 발매된 <Whiplash> MV. 에스파는 영화 <백 투 더 퓨처>에 등장하는 DMC사의 들로리안에 몸을 싣는다. 영화 속 들로리안이 타임머신 역할을 수행하듯, 그들이 향한 목적지는 다중평행세계관이다. 손수 모은 구체를 주저 없이 부순 것처럼 광야 세계관에 대한 미련은 누구에게도 남아 있지 않다. 차기작은 당연히 다중평행세계관이 되어야 할 것. 예상대로 차기 EP <Dirty Work>의 뮤직 비디오는 다중평행세계관 속에서 펼쳐지는 에스파의 이야기를 담는다.


우: 멕시코 치첸이트사 피라미드, 나무위키

에스파의 이야기 방식은 제의·종교적이다. 카리나는 뮤직 비디오 시작과 함께 등장한다. 이때 그녀가 서 있는 곳은 인간 피라미드의 꼭대기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무덤인 동시에 파라오가 신과 연결을 맺는 공간이었다. 따라서 꼭대기를 뾰족하게 만든 후 금칠을 해 파라오의 지위를 강조했다. 반면 중남미, 특히 멕시코의 피라미드는 기본적으로 전자와 같은 역할을 하지만 제의적 특징이 두드러진다. 절대자 또는 제사장은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올라가 제물을 바친 후 의식을 치렀다. 사람이 그 위에 올라가야 한다는 점 때문에 멕시코의 피라미드는 모서리가 잘려나간 사각뿔 형태다.이러한 면에서 카리나가 서 있는 피라미드는 오히려 멕시코 양식에 가깝다. 이뿐만 아니라 피라미드가 인간으로 이뤄진 점은 그 자체가 헌신과 희생의 결과를 뜻한다. 이는 중남미 피라미드의 제의적 성격과도 같다. 결국 카리나의 절대적 지위는 더욱 명확해진다. 이러한 역할 설정은 전작의 계보를 잇는다. 에스파는 정규 1집의 타이틀 곡 <Supernova>에서 초신성으로 묘사된다. 초신성은 폭발의 결과물이자 새로운 별을 창조하는 재료다. 창조와 소멸의 권능은 전능한 자에게만 허락된다. 이뿐만 아니라 미니 1집 수록곡 <aenergy>에서는 멤버별 능력을 부여해 절대적 지위를 직접 드러낸다. 하지만 본 작품은 조금 특이하다. 절대자라는 개념을 더욱 구체화한다. 멤버들이 '신격'을 지닌다는 확실한 근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우: <Virgin and Child Enthroned with Twelve Angels>, WikiArt

그들이 신격을 갖는다는 사실은 유기적으로 해석해야 알 수 있다. 불도저 장면은 그중 첫 번째 실마리를 제공한다. 불도저의 삽날은 하늘 위로 향한다. 이때 이를 응시하는 카메라는 삽날과 수직을 이룬다. 촬영자가 촬영하는 장면을 상상한다면 이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든 모습이다. 결국 카메라의 시선은 윈터와 주변을 둘러싼 댄서의 지위를 암시한다. 카메라가 불도저 주변을 훑는 두 번째 장면은 더욱 흥미롭다. 풀샷 촬영 덕분에 윈터와 댄서는 전신이 드러난다. 이때 그들의 배치가 독특하다. 윈터를 둘러싼 댄서들의 배치는 신화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는 고전 회화 구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안젤리코의 <Virgin and Child Enthroned with Twelve Angels> 모두 절대자를 중심으로 천사가 에워싸는 서양의 전통 회화 양식이다. 전자의 경우 절대자는 비너스 신, 후자의 경우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다. 그렇다면 윈터 역시 신으로 설정된 것일까. 그것은 아니다. 에스파가 신이었다면 전지전능하기에 또 다른 자아로 인한 혼란은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인간을 신으로 표현한다면 사회적 리스크가 커진다. SM 엔터테인먼트는 그녀를 미카엘로 표현함으로써 다중평행세계관을 전개하는 동시에 우상 숭배 논란을 차단한다. 미카엘은 일부 신격을 갖지만 신 그 자체는 아니다. 또한 천사들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며 이는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에 드러나 있다. 이후 불도저는 윈터와 주변 인물을 태웠던 삽날에 흙을 담고 다시 쏟아 내린다. 이때 카메라의 시선 또한 삽날을 우러러보므로 하강의 이미지는 강조된다. 신은 천상계에서 활동하지만 인간계에 내려오기도 했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과 다양한 지혜를 선물했다. 그는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에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우연히도 이번 작품의 촬영지는 당진제철소다. 미카엘 역시 프로메테우스와 비슷하다. 종파에 따라 해석의 차이가 있지만 미카엘은 가브리엘을 돕기 위해 인간계로 내려가 전투를 벌인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의 보호자로서 지상에서 활동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진흙에서 뒹구는 윈터, 무거운 벽을 미는 지젤. 그들이 궂은 일을 하는 것은 신격을 갖는 자가 인간계에 몸을 던지는 제의 행위다.


에스파가 미카엘이라는 근거는 작품 후반부에서 더욱 힘을 얻는다. 에스파는 225명의 엑스트라를 호출한 뒤 대열을 만든다. 그 전경은 전장에 나가는 중세 군대를 보는 듯 하다. 아마겟돈 전쟁 당시 미카엘은 천사들 또는 군대를 이끌고 참전했다. 이러한 기록을 토대로 판단했을 때 이 모든 배치는 상당히 의도적이다. 카메라 렌즈는 멤버뿐만 아니라 엑스트라 전체를 강조한다. '에스파'의 위엄이 아닌, 이들 '집단'의 위엄을 나타내려는 의도다. 이후 엑스트라는 멤버 주위를 맴돈다. 위계질서의 확립은 일관적으로 강조되었기에 그 행위는 단순 안무가 아닌 의례 행위로 보인다. 전장 출두 전 결속 의식은 중세 서양, 봉건시대 동아시아 모두 존재했다. 이는 단결력 강화와 질서 확립을 위한 중요한 절차였다.에스파와 그 군대 역시 이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다시 작품의 초반부로 돌아가자. 잠시 스쳐 지나가듯 팔 굽혀 펴기를 하는 장면이 있었다. 이제 와서는 그들이 전장에 나가기 전 단련을 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궂은 일 역시 체력 단련이라는 이중적 해석을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종합하면 그들이 아마겟돈을 준비한다는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이 운전했던 들로리안은 타임머신이 아니기에 사건은 일방향적으로 흘러가야 한다. 아마겟돈 이전을 이야기한다는 결론은 근거가 다소 빈약하다. 또한 에스파는 <Savage>에서 블랙맘바를 물리쳤기에 광야로 돌아갈 수도 없지만 돌아갈 이유 또한 없다. 빌런은 물리쳤지만 위협은 여전하다. ae에 대한 수수께끼는 여전히 풀리지 않았고, <Drama>에서는 클론과 싸우는 실존적 투쟁에 돌입하지만 실패한다. 게다가 <Armageddon>에서 클론과 싸우며 우위를 점하기는 하지만 이는 <Whiplash> 발매 이전. 다중평행세계에서는 이야기가 또 다르다. 그곳은 그들이 보여줬던 코스믹 호러처럼 미지의 위협이 도사린다. 결국 에스파의 군대 집결은 제2의 아마겟돈 선언이다. 그들은 다시 한번 성전을 준비한다. SM의 초기 예상과 달리 에스파의 행보에는 변수가 너무나 많았다. 메타버스는 거품으로 밝혀졌고 경영 형태의 변화마저 찾아왔다. 이를 모두 고려해 보았을 때, 신화적 메타포를 적극 활용해 기존의 판을 뒤집는 것은 현명한 판단이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에스파는 아노미 현상을 보인다. 그들이 보여주는 시·청각적 요소는 어쩌면 다중평행세계관보다 더 미래적이다. 심지어 심미적으로도 뛰어나다. 하지만 그 내부에 존재하는 콘텐츠는 본질적으로 메타버스 의존적이다. 그렇기에 여전히 거품의 시기에 머물러 있다. 이 내부적 문제점은 단순히 세계관의 이행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에스파는 다음 작품에서 그 돌파구를 보여줘야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tripleS, i-dle 평론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