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퀸 카드, 비상하는 소녀들
요즘 군대는 지니티비가 있다. 하지만 군대는 기본적으로 폐쇄적이다. 티비 역시 인터넷망이 아닌 인트라넷 비스무리한 것을 사용하기에 기능이 제한적이다. 당연히 결제도 할 수 없어 주기적으로 업로드 되는 아이돌 뮤비, 무료 드라마 정도를 보는 것이 전부다. 나와 동기들은 휴대전화를 받기 전이나 반납한 후, 가끔은 일과 시간에도 몰래 지니티비를 켰다. 아이돌 뮤비를 보기 위해서다. 그런데 어느 날 후임이 트리플에스의 <Girls Never Die> 뮤비를 봐도 되냐고 물었다. 당시에는 별 생각이 없었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니 의아하다. 가장 보수적인 집단에 살고 있는 남성이 페미니즘 서사가 강한 그룹에 거부감 들지 않는다니. 내가 목격한 군대의 인간 군상들은 트리플에스의 감성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아이들’은 페미니즘 색채가 짙다며 절대 뮤비를 틀지 않는 이들은 어째서 트리플에스는 괜찮다는 것일까.
트리플에스는 몇 차례 페미니스트 관련 논란에 휩싸였다. 그들은 비즈니스 측면에서 이에 대한 뚜렷한 입장을 표명할 이유도 없었을 뿐더러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들의 행보를 분석한다면 트리플에스는 확실히 페미니즘적이다. 여기서 페미니즘이란 여성 주체 중심의 기존 질서 비판과 도전을 말한다. 트리플에스는 서울 사는 대한민국 10대 소녀들의 현실적인 청춘을 노래한다. 그러나 청춘이 항상 밝기만 한 것은 아니다. 웃고 떠드는 10대의 이면에는 불확실한 미래와 그 시기에만 하는 고민이 있다. 이것들은 청춘의 그림자가 된다. 서울이라는 상징도 양면성을 가진다. 서울은 선진 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고층 건물과 판자촌이 혼재하는 곳이 서울이며 서울의 야경은 야근러의 사무실 불빛이 만들어낸 결과다. 중심과 주변부, 이 양면성은 주류 문화에 도전한 뉴진스의 정반합 변증법을 닮았다. 이 흐름대로라면 합 요소는 어딘가에서 반드시 나타나야 한다. 소속사 모드 하우스는 이를 뮤직 비디오에서 드러낸다. 정·반 개념이 컨셉에 공존하는 이상 소녀들은 불행할 수 밖에 없다. 두 개념의 충돌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충돌은 필연적으로 내·외적 갈등을 낳는다. 그 둘의 모순과 '합'의 발현은 초기 앨범 《ACCESS》의 타이틀 곡 <Generation> 뮤비에서부터 드러난다. 행복해야 할 학교에서 소녀들은 소위 ‘딴따라’ 취급을 받는다. 오히려 그들은 불편한 길거리, 한강 다리 등의 상징적인 장소에서 춤을 추며 행복을 느낀다. 그 순간 소녀들의 연대는 시작된다. 연대는 정규 1집 타이틀 곡 <Girls Never Die>에 이르러 확장된다. 히키코모리, 우울증 환자, 극단적 선택을 결심하는 소녀들은 가출팸이 되어 연대한다. 이들은 함께함으로써 각자의 결함을 마주할 용기를 얻는다. 목소리 내기에 앞서 연대의 과정은 필연적이다. 이때 소녀들의 연대는 매우 주체적이다. 외부에 구원의 손길을 뻗는 장면은 어느 뮤비에도, 어느 가사에도 없다. 그들 스스로의 구원은 기존 사회질서 탈피 의지에서 비롯되며 그 과정은 온전히 여성의 시선에 의한 것이다.
아이들의 서사는 정규 1집의 발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발매 이전까지는 단순히 당당한 여성상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이후 본격적인 페미니즘적 행보가 시작된다. 대표 멤버 전소연을 필두로 한 아이들의 강한 여성 이미지는 그들의 데뷔와 함께 시작된다. 데뷔 이전 전소연은 랩 경연 프로그램 ‘언프리티 랩스타 3’에 출연한다. 큐브 엔터테인먼트는 방송에서 보여준 카리스마 있는 강한 여성 이미지를 (여자)아이들에서도 잇겠다는 전략을 내세운다. 걸크러쉬 매력의 중소 아이돌은 당시 충분한 메리트가 되었다. 데뷔 EP 《I am》의 수록곡 <달라 $$$>, 나쁜 남자에 미련을 주지 않는 주체적 여성의 모습을 강조한다. 동시에 전소연의 래퍼 시절 이미지도 계보를 잇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것이 페미니즘이라는 등식을 성립하기는 어렵다. 가사에서 드러나는 주체성은 공동체성을 띠기보다는 개인적이다. 연대라기보다는 힙합의 FLEX 감성을 공유한다. 게다가 나쁜 남자에 대한 메시지는 이전 세대 아이돌 가사에도 흔히 등장하는 요소였다. 이후 아이들은 큰 실적 없이 매니악한 국내 팬층과 해외 K-POP 팬층 위주로 활동을 지속한다. 계속되는 침체기 속, 아이들은 돌파구의 필요성을 인식한다. 그 결과 아이들의 부활을 알린 정규 1집 <I NEVER DIE>가 탄생한다. 앨범은 발매 직후 화제가 된다. 타이틀곡 <TOMBOY>의 “I’m not a doll”이라는 가사와 켄 인형을 죽이고 트렁크에 싣는 뮤비 속 장면은 논란의 중심이 된다.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였다. 이전의 아이들이 주체성 있는 여성상을 강조했다면 톰보이 활동기의 아이들은 기존 남성중심 이데올로기를 철저히 거부한다. 이로써 아이들은 단순 걸크러쉬를 넘어 페미니즘 서사의 시작을 알린다. 동시에 수록곡 <Liar>의 가사가 래퍼 창모를 저격한 것이라는 논란이 일자, 아이들이 페미니스트라는 의견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떠돌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