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에 상실감이 감돈다. 이들을 위로하려는 시도는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멜로 영화에서 드러난다. 당시 작품들은 매개체를 통해 남녀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1997년 개봉작 <접속>은 PC통신을 통해 사랑의 아픔을 가진 두 남녀가 만난다. 2000년 개봉작 <시월애>는 시간적 간극으로 인한 두 남녀의 애뜻함을 우체통을 통해 연결한다. <후 아 유>도 분명 표면적으로 당시 작품들과 유사하다. 하지만 그것들과는 다른, 어디인가 이질적인 느낌이 강하다. 틀린 그림 찾기에는 절대 등장하지 않을 물건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영화 초반, 인주는 “나 매일 30층까지 뛴다? 음, 63층까지 한 번 뛰어볼까?”라며 계단을 오른다. 이때 카메라는 63빌딩의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와 인주의 전 방향을 비춘다. 하지만 그와 달리 인주의 시선은 오직 자신이 올라가야 할 계단에만 고정되어 있다. 형태는 그보다 앞선 장면에서 63빌딩 옥상에 오른다. 그는 동료 남훈과 서울의 야경을 보며 전 직장으로 돌아간 상사를 욕한다. 이러한 상하 대비 구조는 기획자 형태와 플레이어 인주가 동일한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하는 장치일 것이다. 그러나 이후에도 반복되는 이 장치는 그 의도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한다. 이어진 장면에서 형태는 자신이 30층에서 근무한다고 말한다. 반면 인주는 지하 2층 수족관에서 일한다. 매일 인주가 스스로를 이겨내며 뛰어 올라갔던 30층이 형태에게는 단순히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출근지일 뿐이다. 이러한 설정은 둘 사이의 묘한 불균형을 가져온다. 상하 대비 이미지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심화된다. 결국 이는 최 호 감독의 의도와는 달리 무력감을 낳는다. 형태가 술에 취해 남훈에게 신세 한탄하는 장면은 이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형태는 63빌딩에 술잔을 비추며 “가로등 빛을 따라 고지를 향해 뛰어 올라가고 있지만 그것이 고지가 아니었으며, 요즘은 가로등 불빛들이 꺼진다”고 말한다. 그 직후, 야경을 이루던 빌딩의 불빛은 하나씩 꺼진다. 63빌딩은 형태가 근무하는 곳이지만, 동시에 인주가 근무하는 곳이기도 하다. 또 앞서 언급했듯이 인주는 신체적·정신적 한계를 넘기 위해 매일 지하에서부터 30층까지 뛴다. 이렇듯 복합적 맥락이 섞인 공간을 '고지가 아니었다'라고 술김에 말해버리는 설정은 오류다. 위에서 아래로 63빌딩 불빛이 꺼지는 짧은 순간, 그 오류는 눈덩이처럼 굴러간다.
당시 멜로 영화가 관객에게 수용되었던 까닭은 작품 속 무력감과 사회 구조 속에서 느낀 무력감을 동일시함으로써 이를 해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작은 주인공 남녀의 무력감을 위로의 수단으로 삼지 않는다. 오히려 인물의 위계질서를 강조하며 무력감 자체를 확대한다. 잘못 설계된 장치로 인해 두 주인공 사이에는 어떠한 감정적 연대를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진 무력감이 관객에게 그대로 전가된다. 이로 인해 인주가 형태에게 마음을 열고 횡단보도를 함께 건너는 열린 결말은 다소 어색하게 느껴진다. 작품은 청춘에게 따뜻한 위로의 메시지를 던지는 척 한다. 하지만 실상은 절대 벗어날 수 없는 단절된 구조를 시각화한 것 뿐이다. 본작의 프루티거에어로 미장센은 예술이다. 현시대 작품은 절대 따라할 수 없다. 하지만 주인공들은 서로 이해조차 할 수 없는 구조에 갇혀있다. 결국 <후 아 유>는 진심 없는 미감만을 남긴다. 편지지는 들어 있지도 않은 근사한 편지 봉투를 하나 툭 던져 놓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