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두 개의 세계 사이에 서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나는 숫자와 논리가 정돈된 세계다. 데이터가 말하고 모델이 설명한다. 표와 그래프가 결론을 정리한다. 연구실과 보고서, 코드와 통계가 있는 세계. 그곳에서는 가능한 한 모든 것이 명확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조금 다른 언어로 이루어진 세계다.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공기, 잠깐 멈춘 침묵, 지나가는 풍경 같은 것들이 문장이 된다. 설명되지 않은 감정이 장면으로 남고, 그 장면이 다시 문장이 된다. 나는 그 두 세계를 오가며 살아왔다.
낮에는 숫자의 언어로 세상을 설명하고, 밤에는 장면의 언어로 그것을 바라본다. 하지만 두 세계의 언어는 생각보다 쉽게 번역되지 않는다. 숫자는 감정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고, 문장은 회귀식을 대신할 수 없다. 그래서 가끔 묻게 된다. 내 목소리는 어느 세계에 닿아야 하는 걸까.
비슷한 감각은 강의실에서도 찾아온다.
학생들이 자리에 앉아 있고 나는 앞에 서서 이야기를 한다. 어떤 학생은 고개를 끄덕이고 어떤 학생은 노트를 펼친다. 누군가는 펜을 천천히 움직이고, 누군가는 잠깐 창밖을 바라본다. 강의실 뒤쪽에서는 의자가 조용히 끌리는 소리가 난다. 나는 말을 이어 간다. 슬라이드를 넘기고, 다음 문장을 설명하고, 칠판에 몇 개의 단어를 적는다. 하지만 가끔은 내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그 장면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는 느낌이 든다. 마치 내가 강의를 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 장면을 기록하는 사람처럼.
어떤 학생이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고 있고, 누군가는 노트 위에 잠깐 손을 멈추고 있다. 그 사이에서 나는 말을 계속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장면 전체를 천천히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 있지만 내가 서 있는 위치는 언제나 반 걸음쯤 뒤에 있다. 이 반 걸음의 차이는 아주 작다. 하지만 그 작은 차이가 가끔 긴 거리가 된다.
누군가 말을 시작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 말을 이어 간다. 누군가는 웃으며 한마디를 덧붙이고,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맞장구를 친다. 대화는 끊기지 않고 다음 이야기로 이어진다. 나는 잠깐 생각을 한다. 지금 이 순간 어떤 말을 꺼내면 좋을까. 문장을 머릿속에서 한 번 고쳐본다. 말이 너무 길지 않을지, 조금 다른 표현이 더 좋지 않을지 잠깐 망설인다. 그 사이에 대화는 이미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누군가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 쪽으로 시선을 옮긴다.
나는 잠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지만, 방금 떠올렸던 문장은 어느새 말할 타이밍을 잃어버린다. 몇 초 정도의 차이일 뿐인데 그 몇 초가 이상하게 길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가끔 사람들과 같은 시간에 있으면서도 조금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느낌을 받는다.
그럴 때 내 시선은 대화보다 장면으로 이동한다. 누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누가 잠깐 말을 멈췄는지, 어떤 침묵이 스쳐 지나갔는지.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순간 나는 대화의 한 사람이라기보다 카메라 뒤에 서 있는 사람이 된다. 장면을 기록하는 사람. 아마 그래서 나는 글을 쓰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현실의 대화에서는 타이밍이 중요하지만 글에서는 늦어도 괜찮기 때문이다. 이미 지나가 버린 장면도 다시 불러올 수 있고, 말하지 못한 문장도 천천히 완성할 수 있다. 객차가 지나간 뒤에도 창밖의 풍경은 기억 속에서 다시 나타나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가끔 생각한다.
이것은 외로움이라기보다 연결을 준비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고.
사람들과 같은 길을 걷고 있지만 보폭이 조금 다르고 말을 건네는 타이밍이 조금 늦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잠깐 숨을 고르고, 조금 늦은 속도로 몇 걸음을 옮긴다.
어쩌면 글을 쓴다는 것은 그 몇 걸음의 거리에서 세상을 한 번 더 바라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이 문장이
누군가의 장면 속에 조용히 놓일지도 모른다.
그 생각에
나는 슬핏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