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숫자로 도착하는 방식

by 서율빈

피드 사이에 전쟁 영상이 하나 끼어 있다. 낯선 도시의 거리 위로 연기가 올라가고 있다. 화면 아래에는 도시 이름이 작게 적혀 있다. 테헤란. 영상은 몇 초 뒤 끝난다. 다음 영상이 이어진다. 이어서 다른 영상이 재생된다. 사람들이 뛰어가고 있고 누군가는 휴대폰으로 그 장면을 촬영하고 있다. 다시 몇 초 뒤 영상이 바뀐다. 바스라. 그리고 또 다른 영상. 호르무즈.


전쟁은 이제 뉴스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그것은 종종 피드 사이에 끼어든다.


영상 아래에는 이미 많은 말들이 달려 있다. 누군가는 이것을 핵 억제의 문제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중동 패권의 균형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민주주의와 독재의 대결이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석유와 해협의 문제라고 말한다. SNS에서는 각자의 입장이 더 빠르게 흘러간다. 분노하는 사람, 정당성을 설명하는 사람, 앞으로의 전쟁을 예측하는 사람. 수많은 해석들이 하나의 장면 위로 몰려든다.

피드에는 폭격으로 숨졌다는 민간인의 이야기가 올라온다. 사진 한 장과 짧은 설명이 붙어 있다. 몇 시간 뒤에는 같은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설명이 이어진다. 누군가는 이것이 군사 시설을 노린 공격이었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민간인 학살이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상대의 선전이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전쟁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다시 설명한다.


장면은 하나인데 말은 계속 늘어난다.


민간인이라는 단어는 조금 낯설다. 사람의 이름이라기보다 통계의 항목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연구실에서 데이터를 정리할 때 사람들은 종종 행과 열로 나타난다. 인구, 소비, 이동. 숫자들은 질서를 만든다. 그 질서는 세상을 이해하게 만든다. 어떤 삶은 그렇게 이름 대신 하나의 항목으로 남는다. 전쟁도 종종 그런 방식으로 정리된다.


휴대폰을 내려놓으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화면에는 다른 숫자들이 떠 있다. 환율, 주가, 내일의 기름값.

멀리 있는 전쟁은 이 도시에서 종종 숫자의 형태로 도착한다.


리터당 몇 원.


주유 시기를 고민하다가 문득 멈춘다. 어떤 곳에서는 사람들이 집을 잃고 가족을 잃고 하루를 잃고 있는데 나는 그 전쟁을 기름값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잠깐 고민을 멈춘다. 잠시 뒤 다시 숫자를 본다. 이것 역시 지금의 삶이다.


사람의 삶은 언제 하나의 숫자가 되는 걸까?


그 질문 뒤에는 또 다른 질문이 따라온다.


누군가의 죽음을 이렇게 글로 남겨도 되는 걸까?


몇 개의 영상을 보고 몇 개의 문장을 고쳐 쓰는 동안 이상한 죄책감이 남는다. 어떤 사람의 마지막 하루가 문장 속 장면이 되는 느낌 때문이다.


이 글을 써도 되는지 여전히 확신하지 못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편이 더 옳은 일인지도 알 수 없다.


지금도 조금 망설이면서 이 문장을 적고 있다. 누군가의 죽음을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적어도 그것이 하나의 숫자로만 남지 않기를 바라면서.

작가의 이전글반 걸음 뒤의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