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쪽에 서 있는 사람

by 서율빈

조명은 계속 색을 바꾸고 있었다. 빨강이 지나가면 초록이 들어오고, 그 위에 다시 보라가 얹혔다. 천장에 달린 작은 미러볼이 빛을 잘게 쪼개 사람들 얼굴 위에 흩어놓고 있었고, 눈동자에도 잠깐씩 색이 얹혔다가 사라졌다. 이걸 굳이 보고 있을 필요는 없는데 나는 계속 보고 있었다.


음악은 컸고 바닥은 미세하게 울리고 있었다. 발바닥으로 같은 박자가 계속 올라왔다. 사람들은 그 박자에 맞춰 움직였고, 말은 거의 필요 없었다. 입을 움직이는 것보다 눈을 마주치는 게 더 빠른 신호처럼 보였다.


유난히 쉽게 웃는 사람들이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에도 금방 어깨를 얹고, 이름을 묻기 전에 잔부터 부딪치는 사람들. 맥주와 향수와 땀이 섞인 냄새가 공기 위에 얇게 붙어 있었고, 그들 사이에서는 무언가가 설명 없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 사이가 아니라 벽 쪽에 서 있었다. 같이 있는 쪽이 아니라 겹치지 않는 쪽으로. 등을 가볍게 기대면 누군가의 움직임에서 한 발 떨어질 수 있는 자리. 굳이 그렇게 서 있을 이유는 없는데 그게 더 편했다.


이런 곳에서는 이해 같은 건 필요 없다고,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왜 웃는지 몰라도 되고 왜 가까워지는지 몰라도 되고, 눈을 한 번 마주치고 고개를 조금 기울이면 그걸로 충분한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은 일처럼 보였다.


나는 가끔, 조금 화려한 쪽을 향해 눈을 보냈다. 빛을 더 많이 받는 얼굴들, 웃음이 쉽게 이어지는 자리. 거기까지는 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눈이 마주칠 것 같으면 먼저 시선을 거두었다. 괜히, 그 다음을 감당해야 할 것 같아서.


나는 그걸 못 했다. 못 한 건지 안 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누군가는 어깨를 잡아당겼고 누군가는 잔을 건넸다. 잔 표면에 맺힌 물기가 손에 잠깐 묻었다. 나는 웃으면서 받긴 했는데 그 다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잘 몰랐다.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도 잘 몰랐다.


나는 계속 설명을 찾고 있었다. 왜 이게 괜찮은지, 왜 이게 즐거운지, 이 순간을 그대로 두면 안 되는 이유를. 사실 없어도 되는 건데 계속 찾고 있었다.


조명은 계속 바뀌고 있었고 사람들은 계속 섞이고 있었고, 몸과 몸이 자주 부딪쳤고 아무도 그걸 신경 쓰지 않았다. 눈빛은 계속 오갔고 나는 그 흐름에 들어가지 못했다.


나는 끝까지 벽 쪽에 서 있었다.


이건 외로움은 아닌 것 같다. 외롭다고 하기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고, 그렇다고 괜찮다고 하기에는 내가 너무 또렷했다. 사람이 많을수록 나는 더 또렷해졌다.


이런 자리에서 항상 어딘가 비켜 서게 되는 사람이 있다. 아마 그런 사람은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벽 쪽에 서 있는 사람으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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