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이해하게 되는 일들

by 서율빈

박사 학위를 막 끝낸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취직을 준비하고 있다며,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는 한동안 그 말을 듣고 있다가, 예전에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을 그대로 해주었다. 몇 년쯤 지나면, 누군가 일이 막힐 때 ‘아, 그 사람’ 하고 너를 떠올리게 되는 사람이 되라고. 말을 하면서도, 잠시 망설였다. 그런 전화를 받게 되기까지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린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사 과정 동안의 나는, 대부분 분석을 하고 있었다. 데이터는 이미 누군가가 가져와 있었고, 질문도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다. 나는 그 질문에 맞는 모형을 찾고, 결과를 정리하고, 보고서를 완성했다. 엑셀 창과 회귀 결과만 화면에 남아 있는 시간이 많았다. 같은 코드를 몇 번씩 다시 돌리는 날도 있었다.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대개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정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스스로 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그 시기의 나에게는 오히려 안심이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주어진 일을 오래 붙잡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 순서를 따라가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몇 년이 지나고 나서, 다른 종류의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 선배 소개로 연락드렸습니다.” “△△가 번호를 알려줘서 전화드렸습니다.” 나는 그 이름을 한 번 더 마음속으로 되뇌고 나서야 대답했다. 누군가가 나를 떠올리고 내 번호를 건넸다는 게, 아직은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다. 내가 했던 연구를 보고 연락했다는 말과 함께, 같이 해볼 수 있겠냐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나는 늘 비슷하게 대답했다. 도움이 될지 모르겠는데요… 그래도 일단 얘기부터 들어볼게요. 그 말은 사실이었고, 동시에 습관이기도 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게. 누가 내 이름을 먼저 꺼냈을까. 어떤 맥락에서, 어떤 말과 함께 내 번호가 건네졌을까. 나는 그 장면을 알 수 없지만, 그런 순간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대화 속에서, 잠깐 내 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후배와의 통화를 마치고 나서, 내가 그 말을 이해하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는지 생각해보았다. 정확한 순간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어느 시기부터, 그런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는 것만은 기억난다.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를 떠올리며 먼저 전화를 걸게 될까. 그 이름을 잠시 생각하다가, 망설임 없이 번호를 누르게 되는 날이 올까.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나는 한동안 손을 멈춘 채 그 장면을 상상했다. 누군가의 대화 속에서, 내 이름이 잠깐 지나가는 순간. 어느새 창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책상 위에는 아직 정리하지 않은 분석 결과가 남아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이름을 검색하던 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