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바람 속에서 삶의 방향을 다시 생각하다
오늘 저녁엔 비 소식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른 아침 서둘러 옥천으로 향했다. 하늘은 높고 맑았고, 차창 밖으로 펼쳐진 가을 들녘은 풍요로움으로 가득했다.
선선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며 마음까지 상쾌해졌다. 오랜만에 서로의 안부를 나누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고향 옥천에 닿았다.
첫 번째로 찾은 곳은 육영수 여사 생가였다. 여러 번 와본 곳이지만, 오늘은 해설사님의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더욱 뜻깊었다.
육영수 여사의 꿋꿋하고 지혜로운 삶, 그리고 조용한 실천의 정신이 마음 깊이 남았다. 그분은 가족을 돌보는 따뜻한 마음으로 ‘받은 것을 나누는 삶’을 몸소 보여주셨다. 특히 기억에 남은 일화가 있다.
영부인 시절, 국민의 민원이 대통령에게 직접 닿지 못할 때면 그 내용을 다듬고 보완해 끝내 해결될 수 있도록 도왔다고 한다. 그 조용한 배려와 세심함이야말로 진정한 품격이 아닐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그녀의 어머니 이야기였다. 남편이 개성을 오가며 인삼 장사를 하던 시절, 한 가정만 꾸릴 수 없었던 상황에서도 친정어머님은 집안의 평화를 묵묵히 지켜낸 인내심이 그 시대의 여성상을 말해주었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나라면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알고도 묵묵히 감싸 안을 수 있었을까, 아니면 옳고 그름을 따지며 맞서 싸웠을까?”
요즘 우리는 감정 표현에 솔직하지만, 때로는 인내의 미덕을 잊고 사는 건 아닐까. 그 시대 어머니들의 깊은 품 앞에서 나의 삶을 되돌아보는 고요한 시간이 되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이었다. 초가지붕 아래 소박한 살림살이,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시인의 감성이 마음을 울렸다.
시 낭송을 들으며, 그의 시어에 담긴 고향의 냄새와 따뜻한 정서를 느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이었다. 정지용 시인의 『향수』처럼, 나도 언젠가 그리움과 사람 냄새가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 일정은 옥천전통한옥체험관에서의 강정 만들기였다. 들깨와 땅콩, 올리고당과 설탕, 버터를 차례로 녹여 틀에 부어 밀대로 고르게 펴고 부채질로 식혔다. 두 번째 체험이라 손놀림이 한결 능숙했다.
완성된 강정을 지인에게 선물로 드리니 그 고소한 향과 정성에 미소가 번졌다. 그 순간, ‘고향의 맛’이란 단어가 마음속에 따뜻하게 스며들었다.
삶은 결국, 배움과 나눔의 반복이다. 일정을 마칠 즈음, 하늘은 예보대로 먹구름으로 변했다. 비가 내리기 전,우리는 따뜻한 차 한 잔을 나누며 독서 이야기와 인생 이야기를 이어갔다.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두 사람의 표정에는 철학이 있고, 희망이 있었다. 오늘의 만남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다. 서로의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함께 모색하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누군가의 발자취를 따라간 하루였지만, 돌아오는 길엔 나의 길을 조용히 다시 생각하게 됐다.”
삶이란 결국,
배움과 나눔을 반복하며 자신을 조금씩 단단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충북 옥천에서 만난 어머니의 지혜, 시인의 고향, 그리고 글벗들의 웃음은 내게 조용한 질문 하나를 남겼다.
“나는 오늘,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살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