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마음을 꺼내는 법
지금까지 나는 단호박 하나로 꾹 눌러온 감정을 마주했고,
나를 건드리는 말들에 무너졌다가도 다시 일어섰고,
흔들리는 상황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나를 배우고 있다고 썼다.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저 마음속에서 오래 잠들어 있던 감정이 어느 날 문득 나를 흔들었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밤에 혼자 누워 있다가도
조용히 올라오는 마음의 파도들이 모여 “나 좀 꺼내줘.” 그 말이 들리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묻어둔 마음 하나를 꺼내 단호박 한 조각에 실어 글을 썼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이 사람은 누구일까?’ 궁금할 수도 있겠구나.
나는 말보단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다.
설명보다 느낌이 먼저 떠오르는 사람.
나는 어릴 때 말이 적은 아이였다.
부모님은 몸이 불편하셨고, 집은 시골 산골에 있었다.
작은 눈으로 본 세상은 좀 무서웠다.
엄마 아빠는 늘 힘들어 보였고, 세상은 거대하고 험한 것 같았다.
그 속에서 우리 가족은 늘 작고 약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말보다 눈으로 먼저 세상을 배웠다.
느끼고, 생각하고, 그냥 조용히 받아들이는 편이었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언제나 감정이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내 안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던 감정들.
중학생 때부터 자취를 했다.
허름한 작은 방 한 칸에서 6년을 살았다.
지금 생각하면 열악한 공간이었지만, 그 곳은 내 아지트였다.
라디오를 듣고, 사연을 보내고, 노래를 녹음해 반복해서 들으며 그림을 그리던 시절.
나는 늘 감정을 오래 품고, 오래 생각하는 아이였다.
생각만 오래 하다 놓치기도 했지만, 어느 날 문득 시간이 나면 그 감정을 글로 꺼내 적었다.
글은 거창하지 않았다. 그저 틈이 나면 쓰는 것.
아이들을 재운 밤이나, 출근 전에 아주 잠깐.
그렇게라도 꺼내야 마음이 덜 무거워졌다.
나는 틈틈이 쓰지만, 이 글이 누군가의 하루 틈에 스며들어 따뜻한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대학 시절,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학교에 다녔다.
친척 이모의 소개로 작은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만난 김창준 사장님은 지금도 내 기억에 깊이 남아 있다.
수업 시간에 맞춰 근무 시간을 조정해주셨고, 일이 익숙하지 않아 자주 실수하던 나에게
“메모하면서 해보자”는 따뜻한 말을 건네주셨다.
어느 날은 주말 출근길,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던 나를 보시더니
등록금이 필요할 때마다 따뜻하게 도와주셨다.
아무 설명도, 조건도 없이.
나는 묻지 않았고, 그분도 굳이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마음, 그것은 내 인생에서 오래도록 간직할 사랑받은 기억 중 하나다.
그 기억은 지금도 내 안에 따뜻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돌아보면, 그 외에도 삶의 여러 순간에서 마음을 건네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 모든 기억이 모여 나를 다독인다.
그래서 나는 말할 수 있다.
“나는 사랑받은 사람이었구나.”
그 믿음이 있기에, 나는 감정을 정직하게 마주할 수 있다.
사랑받은 기억으로 스스로를 다시 다독일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말 대신 글로 살아 있는 마음을 꺼내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