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마저 지나갔다
며칠 전이었다.
둘째 딸아이가 발목을 다쳐 정형외과를 다니게 됐다.
나는 일 때문에 함께 가지 못했고, 시어머니가 대신 병원에 데려다주셨다.
그러던 중, 시어머니의 형부께서 돌아가셨다는 부고 소식이 전해졌고,
그날 통화로 나는 “잘 다녀오시라”고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병원은 어떡하냐는 말씀에, “병원에서도 괜찮다 하셨으니 어머니 오시면 같이 가자”고 했다.
그렇게 상황은 지나간 줄 알았다.
그런데 다음 날, 회사에 있던 내게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작은엄마가 병원 얘기하시는데... 어떡해?”
작은엄마, 즉 동서가 아이에게 연락한 것이다.
나는 바로 동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서야, 00이한테 전화가 와서. 무슨 일 있었던 거야?”
그러자 동서는 말했다.
“어제 어머님이 00이 병원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셨어요.”
나는 상황을 이해했고, 이렇게 말했다.
“아 그랬구나. 근데 이왕이면 ‘형님, 00이 좀 어때요?’ 하고
먼저 말 한마디 해줬으면 더 고마웠을 거 같아.”
그 말에 동서는 울었다.
“형님, 말투가 좀 그러시잖아요...”
왜 우냐고 했더니, 이것저것 얘기를 쏟아냈다.
나는 그날, 예전 같았으면 억울함에 목이 메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울지 않았다.
그저 차분히, 내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설명했다.
“00이 병원 데려다준 건 고맙다고 생각해.
근데 어머니도 나한테 그 얘기를 미리 안 해주셨고,
나는 나대로 상황을 모르고 있었던 거야.”
동서는 “어머니랑 형님 사이엔 저는 모르겠고요…”라고 선을 그었고,
나는 굳이 더 감정을 키우지 않으려고 상황을 마무리했다.
몇 주가 지난 주말 시댁 식구들은 시골에 다녀왔다.
시어머니, 시아버지, 도련님, 그리고 남편까지.
남편은 돌아와서 말했다.
“엄마랑 좀 싸웠어.”
이야기를 들어보니, 동서가 도련님에게 나와의 일을 울면서 전했고,
그게 결국 시어머니에게도 전달된 모양이었다.
시동생이 시어머니에게 이 이야기를 하며, “잘 지내고 싶었는데 서운하다는 표현과 함께 형수한텐 말하지 마라”고 당부했다고 했다.
하지만 남편은 이야기를 듣다 보니 뭔가 이상해서
결국 따지고 말다툼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전화를 걸어 “어머니, 잘 다녀오셨어요?” 인사를 드렸다.
그러고 나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어요?”
동서 이야기까지 솔직하게 꺼냈다.
그랬더니, 어머니는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니가 그런 소리를 왜 하냐?”
“니 새끼 일인데 우리가 해준 거잖아.”
“동서 입장에선 기분 나쁠 수도 있지 않냐?”
나는 그 말들 속에서도 꿋꿋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한쪽편에서 서계시는 그 분께 더이상 감정은 나지않았다.
내 의도가 그런 게 아니었다고 차분히 설명했다.
결국 어머니는 늘 그렇지만 말씀하시다가 늘 자기 분과 화에 못 이겨 울기까지 하셨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울지 않았다. 억울하지 않았다. 억지로 참으려는 감정도 아니었다.
감정에 휘둘리지도 않았다.
그날 나는, 내 감정을 내가 책임지는 법을 조금은 배운 듯했다.
이제는 그런 말에도 그렇게 울먹이는 시어머니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나의 직업이 많은사람들 앞에서 상품교육을 하는 일이기도 한데 올해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시작하겠되었다던 나의 자랑스런 그 일을 빗대어 어머니는 나에게 또 이 같은 말로 화살을 쏘아 올렸다.
“너는 입으로 먹고산다더니, 말로는 내가 못 이기겠다.”
그 말도, 예전 같았으면 비수처럼 꽂혔을 텐데 지금은 그냥 지나갔다.
그 말을 되받을 가치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변했다는 증거였다.
나는 이제 안다.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흘려보내는 법을.
그리고 다짐한다.
흔들리는 말보다, 흔들리지 않는 나를 더 믿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