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크고 있다>

그래서 나도 큰다

by 고정미

나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40대 여성이다. 그런데 이제서야 내가 조금 특별해진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남자 네 명과 함께 살며 변한 내 모습에 적응하며 살고 있는 ‘나’일 것이다.

모든 ‘엄마’들이 그러하듯 자신의 인생이 어느 순간 자녀 위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을 깨달을 때 자신을 잃어버린 것 같아 우울함을 느끼게 된다. 나 또한 그러한 과정을 겪었지만 지금은 그게 나의 특별함이 되었다고도 생각한다.


아들 둘 엄마는 깡패가 된다는데 이 말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나는 화를 잘 내지 않는 평화주의적 성격이다. 그리고 나는 여자치고 조금 털털하고 덜 예민한 사람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나는 아들들을 낳고 나서 나의 또 다른 나의 모습들을 보게 된다. 이제 막 걸음마 뗀 막내 아이가 형아들을 따라 소파 등받이 위에서 웃으며 뛰어내릴 때 나는 깨달았다.

‘아, 짐승같이 소리를 질러도 이 아이들에게는 소용이 없구나. ’

아들 셋을 끼고 동물의 한살이 그림책을 보며 엄마 사자 옆에서 몸으로 뒹굴며 힘을 키워 노는 새끼 사자들을 보고도 깨달았다.

‘아, 아기 사자들이나 내 아들들이나 별반 다를 게 없구나. 이 아이들은 이렇게 밀고 당기며 놀 때 서로의 힘을 확인하고 강해지고 있구나. ’

아무리 입은 옷을 뒤집어 놓으라고 해도, 놀 때 제발 위험하지 않게 동생 다리 걸어 넘어뜨리지 말라고 해도, 소변을 보면 화장실에 변기물을 내리라고 말해도, 흘린 소변은 샤워기로 흘려보내라고 말해도, 밥 먹을 땐 핸드폰이나 패드를 보지 말라고 말해도, 먹은 밥그릇은 싱크대에 갖다 놓으라고 말해도 이 아이들은 나의 목소리가 귀에 가닿지를 않는구나..

그동안 많이도 소리 지르고 악다구니 써보았으며 멱살도 잡아보고 매도 들었다. 딸랑 세명이서도 따라가는 남자아이들의 군중심리와 강해지고, 세어지고 싶은 본능도 보았으며 엄마를 사랑하지만 엄마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아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보았다. 그러면서 많이 화내고 많이 욱하고 많이 눈물 지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한 번 찢어진 근육이 점점 더 아물고 단단해지는 것처럼 마음이 한번 찢어지면 아물면서 단단해지고 반복하면서 지금은 나름 벌크업이 된 듯하다.

아들 둘 엄마는 깡패라면 아들 셋 엄마는 어떻게 해야할까? 아들 둘이든 셋이든 아들 엄마는 깡패가 된다는 말에 적극 공감한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서 더 발전한 가족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랐다고 말하고 싶다.

아이들의 건강, 교육, 집안 분위기, 사랑을 표현하는 마음, 경제관념 등 정말 다양하고 깊게 보기 위해 바쁘게 부지런 떨며 악착같이 살아내었더니 정말 운좋게도 아이들의 인생을 멀리 보는 눈이 키워졌다. 아이가 하나이거나 둘이었을 때보다 셋일 때 더 부지런해지고, 더 시간을 쪼개 쓰게 되고, 더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연구하게 되고, 더 많이 성장한 것 같다.


아이들이 커가는 만큼 나 또한 크고 있다. 마음이 단단해졌다해도 자식은 자식일터, 또 한번 마음이 다치거나 아플 일이 계속 있겠지. 그럴 땐 이렇게 생각하자.

‘너 크고 있구나. 엄마도 더 커야겠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