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10
<서영의 캠퍼스 >
제1막 낯선 기숙사
서영은 무거운 가방을 끌며 기숙사 복도를 걸었다.
복도에는 학생들의 웃음소리, 책가방 부딪치는 소리,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뒤섞여 있었다.
“어… 여기가 내 방 맞지?”
휴대폰 속 메모를 확인하며 방 번호를 다시 봤다.
방 문을 열자, 밝은 목소리가 먼저 반겼다.
“안녕! 나는 해진이야. 같은 과여서 기숙사에서도 친하게 지내자.”
서영은 조심스레 미소를 지었다.
“그래, 잘 부탁해.”
겉으로는 친근한 첫 만남이었지만, 해진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이 아이… 너무 완벽해. 키도 크고, 생긴 것도 그렇고, 말투도… 내 마음이 이상하게 뒤틀린다.’
해진은 서영이 가방을 내려놓고 책상 위를 정리하는 손짓, 창문을 여는 습관까지 유심히 관찰했다.
그리고 이미 마음속에서는 서영에 대해 흠집을 낼 소문을 퍼뜨릴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서영은 창가에 서서 바깥을 내다봤다.
햇살이 기숙사 정원을 비추고,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웃고 있었다.
‘이곳에서 나만의 자리를 만들어야지.’
그 다짐은 그녀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지방에서 올라온 서영은 굳은 다짐을 하며 기숙사에서의 첫 시작을 결기로 다졌다.
그날 저녁, 서영은 방에 짐을 정리하고 침대에 앉아 노트를 펼쳤다.
첫날이라 긴장했지만, 마음 한편에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희망이 자리 잡았다.
제2막 흔들리지 않는 서영
다음 날 아침, 서영은 강의실에서 첫 수업을 맞았다.
교수님이 출석을 부르자, 학생들은 반쯤 졸린 표정으로 이름을 불렀다.
“서영… 최서영?”
“네, 여기요.”
목소리가 또렷하고 차분해서 주변 학생들이 놀란 듯 쳐다보았다.
한 학생이 속삭였다.
“와… 필기 진짜 깔끔하다.”
수업 중 서영은 집중하며 노트를 정리하고, 교수님의 질문에 명확하게 대답했다.
주변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점심시간, 동기 한 명이 다가왔다.
“서영아, 이 부분 좀 설명 다시 해 줄래?”
수업시간마다 교수님들 질문에 적극적으로 대답하는 건 서영이 한 사람뿐이었다. 처음에는 나대는 성격 인가 싶던 아이들의 생각이 정확하고 똑 부러지는 답변들을 들으면서 서영이가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바뀌었고 심지어 한 전공과목 교수님이 대놓고 수업 중에 수석한 학생이라고 지목까지 해서 더욱 아이들의 생각은 똑똑한 서영이로 굳어졌다.
서영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논리학 수업을 듣고 난 뒤 준영은 잘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을 서영에게 물어보았다.
“좋아. 그게 이렇게 추리과정이 되는 건데, 일루 와 봐.”서영이는 먼저 말 걸어 준 준영이에게 적극적으로 설명해 주는걸 마다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설명해 주면서 서영이 자신도 다시 한번 복습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서영은 준영과 친하게 되었고, 그 덕에 준영과 함께 서울로 스쿨버스를 타고 통학하는 친구들 무리와도 함께 어울리게 되었다.
해진은 거울 앞에서 중얼거렸다.
“왜 저렇게 다들 서영이한테 몰리는 거지…?”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내가 뭘 더 해야 돼…?’
그날 저녁, 기숙사 라운지에서는 작은 스터디 그룹이 모여 서영과 함께 과제를 했다.
서영은 친구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의견을 조율했고,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그녀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라운지 한쪽에서 해진은 소파에 앉아 서영을 바라보았다.
속으로는 질투가 일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그 눈빛 속에는 긴장, 불안,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초조함이 섞여 있었다.
제3막 주변의 변화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서영 주변에 모였다.
같은 과 학생들은 수업 후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조언을 구하고, 프로젝트에서는 의견을 먼저 물었다.
선배 언니들도 처음엔 경계하며 해진과 손을 잡고 견제하려 했다.
“서영이 너무 튀는 것 같지 않아?”
“맞아, 우리도 신입생인데 조금 조심해야 할 텐데.”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영의 따뜻함과 능력, 겸손한 태도가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서영아, 너랑 같이 일하면 프로젝트가 훨씬 수월해지는 것 같아.”
한 선배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기숙사 복도에서 작은 사건이 있었다.
스터디 그룹에서 의견 충돌이 일어났을 때, 서영은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중재했다.
“우리 서로 입장을 잘 들어보고, 가능한 해결책을 찾아보자.”
친구들은 서영의 차분한 태도에 따라 논쟁을 멈추고, 자연스럽게 그녀를 중심으로 의견을 조율했다.
해진은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며 마음속 불안이 커져갔다.
‘왜 아무리 내가 노력해도 저 아이 앞에서는 아무 힘도 없는 걸까…?’
그녀는 점점 초조함과 질투 속에 빠져들었다.
제4막 음해의 역효과
해진은 뒤에서 서영을 흔들기 위해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서영이, 과제는 남이 다 해주는 거래.”
“서영이 얼마나 공주인지 알아?.”
하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해진을 부정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뒤에서 험담만 하는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붙으며, 그녀는 점점 고립되었다.
제5막 무너지는 중심
“왜… 왜 다들 서영이만 좋아하는 걸까…”
해진은 천장을 바라보며 밤새 뒤척였다.
불을 끈 기숙사 방은 조용했지만, 그녀의 마음만은 낯선 소음으로 가득했다.
질투, 초조함, 두려움, 불안.
그 모든 감정이 지독하게 섞여 머릿속을 지배했다.
‘아니야… 내가 가만히 있어서 이런 거야. 뭔가… 뭔가 해야 해.’
해진은 결국 극단적인 생각까지 이르게 되었다.
'기숙사 선배언니들을 이용하자'
서영을 괴롭히려면, 먼저 그들에게
‘서영이 미운 존재’라는 이미지를 심어야 했다.
제6막 조작된 이야기
해진은 평소 기숙사에서 ‘대장’으로 불리던 5층과 6층 방장언니, 영자언니와 희선언니를 따로 불렀다.
“언니들… 사실 말할까 말까 했는데…”
영자와 희선은 귀찮은 듯 가볍게 대답했다.
“왜? 또 무슨 일인데.”
해진은 고개를 조심스레 숙이며 거짓을 흘렸다.
“서영이가요… 언니들 욕하고 다녀요.
‘기숙사 언니들 늙은 꼰대 같다’고… 제가 말하면 또 상처받으실까 봐…”
말하면서도 속으로도 뜨끔했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서영을 미워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예상대로 두 언니의 얼굴은 서서히 굳어져 갔다.
“뭐라고? 그 조용한 애가?”
“허… 인간은 겉만 보고 모른다니까.”
해진은 속으로 기뻐하며 속삭였다.
‘그래… 이대로면 언니들이 서영을 미워하겠지. 그러면…’
하지만 해진은 한 가지를 오판했다.
그 언니들은 억울한 건 참아도, 거짓말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제7막 진실을 가르는 사람들
영자와 희선은 그날 밤 바로 움직였다.
둘은 평소처럼 복도 청소를 하며 서영을 조용히 살폈다.
서영은 그날도 후배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먼저 인사를 건네며 지나갔다.
“언니들, 안녕하세요.
이따 공용 세탁기 돌아가면 제가 꺼내드릴게요.”
언니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저게 욕하고 다니는 애라고?’
그 후 며칠 동안 언니들은
서영이 누군가 뒤에서 흉을 본 적이 있는지,
혹시 싸움이나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는지
여러 후배들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결론은 명확했다.
서영에 대한 험담은 단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었다.
오히려 후배들은 말했다.
“서영이요? 되게 착한데요?”
“예의 바르고 공부 잘하고… 왜요?”
언니들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그럼… 해진이가 거짓말을 했다는 건가?’
제8막 공정함의 칼날
며칠 후, 희선언니는 해진을 복도 끝으로 불렀다.
“해진아, 너 그날 말한 거… 다시 말해봐.”
해진은 얼떨결에 웃으며 말했다.
“왜요 언니? 제가 말한 건—”
“그만해.”
희선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영자언니도 곁에서 팔짱을 끼며 말했다.
“우리가 다 확인해 봤어.
서영이가 그런 말 한 적 없더라.”
해진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아… 아니에요. 진짜예요. 제가 직접—”
“거짓말하지 마.”
희선언니의 눈빛은 냉정했다.
“우리는 없는 말 만들어내는 애들… 딱 질색이야.”
그 말은 단순한 꾸지람이 아니었다.
그 순간, 언니들은 해진이라는 존재를 완전히 끊어냈다.
제9막 완전한 고립
그날 이후, 기숙사 복도는 해진에게 낯선 곳이 되었다.
언니들은 그녀를 더 이상 반기지 않았고,
가끔 인사해도 건성으로 고개만 까딱했다.
후배들도 불편해하며 눈을 피했다.
낙인이 찍힌 사람이 된 것처럼.
학과에서도 해진은 이미
서영을 험담하다 뒤통수 맞은 아이로 알려져
동기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지던 중이었다.
기숙사에서도, 학교에서도
그녀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해진은 결국 모든 것이 무너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자신이 파놓은 구덩이에 스스로 빠져들었다는 것을.
제10막 자퇴
한겨울처럼 차갑고 공허한 며칠이 흐른 후,
해진은 강의실에 들어갔다가
학생들의 작은 시선 하나에도 숨이 막혀 나와버렸다.
기숙사 방으로 돌아와 문을 쾅 닫고,
책상 앞에 앉아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꺼냈다.
자퇴서.
‘도망치고 싶어… 이제 더는 못 버티겠어…’
그녀는 서류를 접으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이 작은 종잇장은
자신의 패배를 상징하는 것 같았다.
제11막 서로 다른 풍경
며칠 뒤, 서영은 친구들과 강의실에서 웃고 있었다.
끝난 수업 이야기, 교수님 농담, 별것 아닌 이야기들로
아이들은 깔깔거렸다.
그때 창밖으로
학교 정문 쪽을 향해 조용히 걸어가는 한 여학생의 뒷모습이 보였다.
해진이었다.
햇살 아래 드리워진 그림자는 길었고,
그 고개 숙인 모습은 유난히 외로워 보였다.
서영은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저 아이… 혼자구나.’
조금의 안타까움이 스쳤지만, 서영은 곧 친구들의 말에 웃으며 돌아섰다.
그녀의 세계는 이미 새로운 관계와 따뜻한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