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의 돌무덤

아기담부락 이야기

by 카프


진욱이와 금석이는 담하 나를 두고 옆집에 살았다.

동갑내기 둘은 항상 같이 놀았고, 맛있는 것이 있으면 늘 사이좋게 나눠먹었다.

오늘도 금석이네 집 앞에 쌓아놓은 모래더미에서 같이 빵돌놀이를 했다.

금석이는 사발하나를 가지고 와서 둥근 빵돌을 만들었고, 진욱이는 우유곽 하나를 가지고 와서 네모난 빵돌을 만들었다. 둘이서 촉촉한 모래를 넣어 만드는 모양놀이에 해지는 줄도 몰랐다.


“해가 지는데, 집에 가야겠다. 망태할아버지가 올라.” 진욱이는 망태할아버지가 무서웠다.

“그러자, 내일 또 놀자. 내일은 잣밤 따러 가 볼래?”

“우리끼리 할 수 있을까? 난 길도 잘 모르는데.”

“저번에 형님들 따라 근처에 가보긴 했어.

요즘은 아무도 거기 못 가게 하니 잣밤이 많이 있을 거야.

우리 둘이만 몰래 가서 실컷 따먹으면 되지.“




어른들은 모두 잣밤나무 옆에 가지 말라고 했다. 아이들은 몰래 비밀로 하고 거기에 가서 잣밤을 따먹었다가 들키는 날이면 누구든지 혼쭐나게 회초리를 맞았다.

진욱이는 잠자리에 들면서 내일 실컷 잣밤을 먹을 생각을 하니 잠이 오지 않았다.

‘엄마한테는 이야기하지 말아야지. 내일은 금석이네 집에서 금석이하고 논다고 해야겠다. 금석이 할머니는 또 물질하러 갈 테니 둘이서 가도 아무도 모를 거야.’

금석이는 할머니와 둘이 살고 있었다.


다음날 둘이서 산길을 걸어갔다. 제법 깊은 개울하나를 건너야 나무가 있는 언덕이었다.

조심조심 개울을 건너니 돌무더기들이 놓여있었고 그 뒤에 나무가 있었다. 나무 앞에는 일곱 개의 돌무더기가 놓여있었다. 누가 왔다 간지 오래된 모양인지 낙엽이 수북했다. 마을에서 동철이가 죽은 후로는 아무도 이 나무 근처에 오지 않은 것 같았다. 잣밤열매는 가지가 휘어지도록 많이 열려 있었다.

금석이는 조심조심 나무를 올라 잣밤을 따고, 가지를 흔들어 댔다. 후드득하며 잣밤열매들이 떨어졌다. “이제 그만해도 되겠어.”

금석이가 나무에서 내려오다 돌무더기 하나를 건드리자, 와르르하며 무너져 내렸다.

둘은 다람쥐처럼 잣밤 껍질을 까댔고 손톱에는 시커멓게 물이 들었다. 호주머니에도 넘칠 만큼 잣밤을 가득 채웠다.

오는 길에 또 개울을 건너야 했다. 고무신을 신은 금석이는 돌에 미끄러져 개울에 빠지고 말았다. 물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진욱이의 손을 잡은 금석이는 겨우 개울에서 나와 오들오들 떨며 옷을 벗어 바위 위에 늘었다.

해가 벌써 지고 있었다. 진욱이는 망태할아버지 생각이 또 났다.


엄마는 늘 해가지면 망태할아버지가 아이들을 망태 속에 넣어간다고 집으로 빨리 들어와야 된다고 했다.

“금석아! 이제 집에 가자. 옷 다 마르고 가려면 깜깜해지겠어”

둘은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컴컴해진 나무아래 어느 쪽 에선가 아이 우는소리가 들렸다. 마을에는 아이가 한 명도 없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둘은 급히 산을 내려왔다.



그날부터 금석이는 아프기 시작했다. 몸이 불덩이 같았고, 밤새도록 기침을 해댔다.

그 후로 며칠을 집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도 금석이의 병은 낫지 않았다.

진욱이와 놀 아이는 이제 길용이 밖에 없었다. 길용이와 구슬치기를 하다가 삼촌이 사준 사기구슬 두 개를 잃었다.

사기구슬은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사기구슬은 사기구슬끼리만 치기를 한다.

금석이는 구슬치기 대장이었다. ‘금석이 보고 나으면 따달라고 해야지. 이거 하나마저 잃으면 잃은 구슬은 영원히 찾을 수가 없으니 금석이 한테 맡겨놓아야겠다.‘


엄마는 기침병이 옮을지도 모르니 금석이한테는 절대 놀러 가지 말라고 했지만

진욱이는 엄마 몰래 금석이를 만나러 갔다.

금석이는 핼쑥하고 하얀 얼굴로 계속 기침을 해대고 있었다.

“금석아! 많이 아프니? 언제 놀 수 있어.”

“금방 나을 거야. 할머니는 키가 크려면 아파야 된다고 그랬어.”

진욱이가 구슬을 주며 말했다.

“네가 잘하니까 길용이한테서 따줘야 돼!”

“응. 꼭 따줄게. 밖에 나갈 수 있으면...”

밤새도록 나던 기침소리는 새벽에 멈췄다. 그리고 할머니의 울음소리가 크게 담너머로 들렸다.

뒷날 금석이의 시신은 볏짚으로 만든 가마니에 쌓여 잣밤나무 아래로 옮겨졌다.

진욱이의 동갑내기 친구는 이제 길용이만 남았다.

몇 달이 지났다. 진욱이는 며칠째 새까만 길고양이 한 마리와 놀았다. 살금살금 고양이 뒤를 따라가던 진욱이는 길을 잃고 말았다. 어디로 가도 나무밖에 보이지 않았다.

산속을 헤매다가 멀리 잣밤나무가 보였다. ‘저 나무까지 가서 아래로 내려가면 마을로 갈 수 있을 거야.’

해가지고 있었다. 또 망태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집에 빨리 돌아가야지.


나무아래 돌무더기 여섯 개가 세워져 있었고, 하나는 무너져 있었다. 어디선가 미역국 끓이는 냄새가 났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어디선가 아이는 소리가 들렸다. 한 아이가 울자 옆에서 또 다른 아이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자꾸자꾸 여러 명이 울어댔고, 울음소리가 커져갔다.

누군가가 옷깃을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앞으로 걸어가려 해도 발걸음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진욱아, 어서가. 여기 있지 말고! 나중에 놀아줄게.”

어디선가 금석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진욱이는 어떻게 왔는지 겨우겨우 집에 도착했다.


그날 저녁 진욱이도 열이 나기 시작했다. 밤에 꿈을 꾸었다.

금석이가 서 있었다. 진욱이는 금석이를 불렀지만, 금석이는 길용이와 함께 가면서 뒤돌아 보지도 않았다.

다음날 길용이가 물에 빠져 죽었다. 길용이의 시신도 가마니에 쌓여 잣밤나무 아래로 옮겨졌다. 나무아래 돌무더기는 일곱 개가 되었다.


마을에서 남은 아이는 진욱이 밖에 없었다.

진욱이네는 고향을 떠나 도시로 나갔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흘러 진욱이는 어른이 되었다.

휴가철에 남해안 일주를 하다가 어릴 때 살던 고향마을이 보고 싶어 졌다.

마을은 조용했고, 사람들도 거의 살지 않았다. 관광지 개발로 거의 모든 집들이 옮겨갔고 입구에는 등산로 표지판만 보였다.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니 전망대가 있었다. 어릴 적 보던 아름다운 풍경들이 반가워 한동안 넋을 잃고 있었다. 내려오는 길에 어릴 적 다니던 샛길이 보였다.

‘저리로 가면 더 빨리 내려갈 수 있는데.’

작은 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니 수풀 사이에서 길이 없어져 버렸다. 한참 산속을 헤매어도 거기가 거기인 것 같았다.

해가 지고 있었다. 그때 저 멀리에 잣밤나무가 어렴풋이 보였다. 어릴 때 보던 모습 그대로였다.

‘나무 아래쪽으로 마을로 가는 길이 있었어.’

잣밤나무를 바라보고며 서둘러 길 없는 산을 내려왔다.


해가 져서 컴컴해졌지만 이제 망태 할아버지 이야기는 무섭지도 않았다.

나무 앞에는 아직도 돌무더기들이 있었고 그중 하나가 무너져 있었다. 미역국을 끓이는 냄새가 심하게 났다.

그때 가느다란 아이의 울음소리가 하나 들려오더니,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따라 들리기 시작했다.

톡 하고 작은 돌멩이 하나가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자세히 보니 돌멩이가 아니고 파란색 사기구슬이었다.

심장이 뛰었다.

급하게 개울을 건너려 하자 누군가 팔을 잡아당겼다.

금석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진욱아! 왜 이제 왔니? 이제 자리가 비었어. 같이 놀자.”

길용이. 동철이의 목소리도 들렸다.

“같이 놀~~ 자~~”



*경상도 바닷가 쪽에서는 아이들이 죽으면 아기담부락을 만든다.

땅을 파서 묻지 않고, 외진 길 부근에 가마니에 싸서 묻고, 돌로 탑을 쌓는다.

해가 지고 나면 아기담부락 근처에는 가지 말라고 한다.

비가 올 때면 아이들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한 아이가 울면 옆에서 자던 다른 아이들도 깨서 따라 운다고 한다.


묘지 부근에는 미역국 끓이는 냄새가 난다.

습기가 차거나 비가 부슬부슬 내릴 때는 더 심하게 난다고 한다. 시체 썩는 냄새가 미역국 냄새와 비슷하다고도 한다.


작가의 이전글전갈과 개구리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