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55세.
꼼수 부리지 않고 우리 나이로 55세.
빠른, 만, 이런 거 없이 55세.
4년 전, 심혈을 기울여 고민하고 준비했던 일을 얼마 전 그만두었다.
내 이름을 건 나만의 일이었기에 애착이 많았고 열정이 가득했었다.
나를 알아줄 거라는 기대와 기다림.
그걸 알아준 학생들은 나와 끝까지 함께 해주었다. 다시 생각해 봐도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나의 마지막을 같이 안타까워해 주었고 그만두지 말까를 잠시 고민할 만큼 내겐 큰 감동이었다.
내 인생 중간쯤에 느껴본 성취감이었다. 그럼에도 그만두어야 했던 이유..
난 가르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운영자이기도 했다.
수업시간만큼은 아낌없이 내어주며 학생들에게 쉽게 전달될 수 있도록 정성을 쏟았다.
소위 말하는 마케팅. 나를 알려야 대중들이 알아본다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SNS도 열심히 했다.
거기까지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가..
나를 거쳐간 학생들을 떠올리면서 왠지 나의 인생중반의 성적표를 받은 느낌이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내게 왔다 그냥 떠나버린 이유가.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을 것이다.
붓글씨가 안 맞아서, 환경이 맘에 안 들어서, 공사가 다망해서, 등등
그중 가장 큰 원인은 나랑 안 맞아서였을 것 같다는 자책 같은 변명으로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면서 생각해 보니 학생들 뿐만 아니라 내 곁에 머무르지 않는 사람은 많았다.
가족, 친구, 지인, 그들은 내 곁에 머물고 싶어 하지 않는다. 물론 이건 내 추측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지금 자학도 아니고 우울감과 상실감에 하는 생각도 아니다.
냉정하고 진지하게 이성적으로 하는 생각이다. 나를 비난할 생각도 없음은 물론 그들을 원망하려는 생각은
더더욱 없다. 사람들이 말하는 갱년기를 겪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자의였든 타의였든 나는 지금 나란 사람을
점검할 시기가 찾아왔단 생각이 든다.
한쪽문만 바라보면 다른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못 본다는 말이 있다.
나는 지금까지 한쪽문만 바라보는 좁은 시야를 가지고 살아왔다. 내가 원하는 사람이 나를 원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쟁취하는 것, 하고 싶은 일이 꼭 잘되어야 한다는 막연한 직진사고.
이런 생각들은 차선이 없고 안되면 세상 무너지는 생각들이다.
그러니 내 곁엔 내가 원하는 사람은 없고, 하고 싶어 하는 일이 안되니 인생실패자 같고, 어려우면 포기하는 나약한 사람이고, 이런 생각 들은 한 가지 생각밖에는 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닐까 싶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어떤 이는 나를 걱정하고, 전화기를 들었다 놓았다 했을 수도 있다. 또한 나의 학생들은
적어도 나를 괜찮은 선생으로 기억해 줄 것이고, 지금의 일을 그만두지만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올 수도 있다.
최선이 중요한 만큼 차선도 중요하다. 난 최선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아왔고, 그것이 되지 못한다면 실패고 망한 것이며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이 없었다. 사고가 유연하지 못했다.
하물며 나이가 드니 더 행동에 소극적이고 생각은 극단적이 되어가고 있었다.
55세에 시작하는 '나'란 사람에 대한 고찰과 성찰.
시간이 많아진 요즘 진지하게 인생의 중반을 돌아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