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삼촌이 돌아가셨다.
친정엄마의 작은 오빠, 나에게는 작은삼촌, 아들에게는 돼지방 할아버지.
아들이 어릴적, 동네에 돼지방이라는 고깃집이 있었는데 삼촌은 언제나 그곳에서
거나하게 취해있었다. 아들에게는 그 기억이 전부인 할아버지.
그런 삼촌은 요양원에서 오랜 투병생활을 하신 끝에 돌아가셨다.
삼촌은 내기억에도 늘 술에 취해있었다. 엄마와 유난히 사이가 좋았던 삼촌.
그런 오빠가 있는 엄마가 가끔은 부러웠다. 삼촌은 말수가 적어 역시 말수 적은걸로는
적수가 없었던 나와는 특별히 대화를 나눈기억이 없다.
그런 삼촌은 엄마가 부탁하는것은 다 들어줬다. 엄마말에 의하면 삼촌은 재주가 너무 많아서
가난하게 산다고 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어릴땐 그말이 이해가 안갔다.
재주가 많은데 왜 가난하지? 반대로 내가 엄마에게 왜 나는 재주가 없냐고 물으면
또 이상한 말을 했다. "무재주가 상팔자야" 그건 또 무슨 논리란 말인가!
삼촌은 정말 재주가 많아서 집수리도 부탁만하면 다 고쳐주었다.
아마 전문가를 불렀다면 많은 돈을 지불했어야 할일들을 삼촌은 다 해주었다.
삼촌이 바라는 조건은 딱하나, 술이면 충분했다. 엄마가 내오는 소박한 술상.
덕분에 우리 자매들은 술심부름을 꽤나 했었다.
삼촌은 방랑벽도 있어서 젊을때는 집안일을 나몰라라 하고 떠돌아 다니신 적도 많았다.
그 때문에 가장노릇을 하지못해 식구들에게 원망도 많이 샀지만,
내가 생각하는 삼촌은 낭만이 있고 정이 그리운 사람이었던 것 같았다.
장례식장에서 외숙모를 뵈었는데 나를 알아보지 못하셨다. 몇년만에 보는 건지 기억조차 나지않았다.
그래도 어릴땐 종종 만나곤 했는데 그이후론 그럴일이 많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친척이라고는 하지만 남보다도 더 못한 사이가 된것이다.
간혹 안부를 전해듣는 것이 다이니 말이다.
말수가 없는 내가 늘 어려웠다고 친척들은 종종 내게 말했다.
외숙모 역시 장례식장에서 본 내게 같은 말을 했다.
그런데,세월이 이럴땐 좋은건지 나이를 먹으니 그동안도 몇마디 나누지 못했던 외숙모와
자연스러운 대화가 이어졌다. 내가 이렇게 말을 잘 하는 사람인 줄 몰랐다며..
세월때문일까? 아니면 난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데 그들이 오해한걸까?
"나"라는 사람은 때로는 타인에 의해서 선입견이 결정되곤 한다.
남들이 그렇다고 하니 내가 그런사람인가 보다..하고 말이다.
그렇게 외숙모에게 새로운 나의 인상을 남겨두고 장례식장을 나왔다.
늙고 병들고 긴 투병생활을 한 후 간 사람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가시길 잘했어, 더 살아봐야 고통이야.."
정말 그럴까? 그분들은 끝까지 이생에서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마지막 까지
삶의 끈을 부여잡고 싶진 않았을까?
타인보다 못한 가족. 죽음을 맞이해서야 가족임을 깨닫게되는 아이러니.
그렇게 삼촌은 기분좋게 술이 취해있었던, 낭만있던 삼촌으로 내기억속으로 저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