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때, 아무 곳에서 아무 페이지를 펼쳐 읽어도 무아지경에 빠져드는 책
<잡문집>. 말 그대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다양한 글이 실린 잡문집이다. 연설문, 서평, 에세이, 번역자의 말, 대담까지 다양한 형택의 활자를 담은 책이라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간 됨됨이부터 작가로서의 가치관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구석구석 알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공식 석상에 잘 나타나지 않고 말을 아끼는 소설가로 유명하다. 물론, 영화배우는 영화, 탤런트는 TV, 가수는 노래 그리고 소설가는 소설로 나타난다고 믿는 그래서 당연한 일이지만 그만큼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 있다. 하지만 매번 그랬듯 그는 책으로 인사를 건넨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도 그렇고, 잡문집도 그렇다. 글을 통해서는 자신의 의견과 생각, 삶을 나타내기를 아끼지 않는다.
잡문집의 리뷰를 쓰려다 말았다. 그 이유는 리뷰를 쓰기에는 너무 방대하고 다양한 형태의 글이 담겼고 생각 없이 읽다가 한 개씩 콩콩 머리를 찍는 울림을 주곤 하기 때문이다. 에세이처럼 가볍게 잘 읽고 재밌었다! 소설처럼 허무하지만 그런대로 맛이 있었다!라는 평을 내리기 어려웠다. 예루살렘 수상식에서 말한 그의 유명한 스피치도 담겨 있어 반가웠고, 아직 나오지 않은 에세이가 담겨 있어 또 반가웠다. 마지막으로 그가 다른 소설가에 대해 평가한 내용이 있어 신기했다. '역시 미국 소설가를 좋아하는군', '하드보일드 문학을 얼마나 좋아하면 레이먼드 카버를 초청할 생각을 할까?' 그리고 재즈를 정말 사랑한다는 점도 느껴졌다. 재즈와 미국 소설을 뺀 하루키는 지금의 하루키와 정말 다를 것이다. 그도 역시 세계 문화의 영향을 받은 작가다. 일본인이지만 일본 문학만을 쓰는 게 아니라, 일본 문화와 소설의 토양 위에 미국 음악과 소설이라는 영양분을 받아 자란 소설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다 읽고도 가끔 아무 페이지나 펼쳐 쓰윽 읽어보곤 한다. 무슨 페이지가 나오든 실망을 하지 않는다. 모두 그런대로 저마다 맛이 있고 울림이 있으니. 무엇보다 시간 투자한 만큼 재미를 주는 책이다. 하루키는 확실히 재미있게 쓸 줄 아는 소설가다. 한참을 고민했다. '과연 이 사람의 비결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즐거운대로 사는 그의 철학이 가장 큰 영향이 있겠다 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에서 느꼈는데 그는 아무래도 쓰고 싶은 것만 쓰고 좋아하는 것을 많이 쓰고 쓰기를 좋아하는 소설가다. 독자도 그걸 느끼고 '오호 이 사람 참 재밌는 생각을 하고 글을 쓰네?'라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중요한 영향을 이번에 찾았다. 바로 재즈다! 그는 재즈를 사랑하고 재즈 덕분에 글쓰기를 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바로 이 <잡문집>에서!
[다른 울림을 찾아서]
음악이든 소설이든 가장 기초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리듬이다. 자연스럽고 기분 좋으면서도 확실한 리듬이 없다면, 사람들은 그 글을 계속 읽지 않겠지. 나는 리듬의 소중함을 음악에서(주로 재즈에서) 배웠다. 그리고 그 리듬에 맞는 멜로디, 요컨대 적확한 어휘의 배열이 뒤따른다. 그것이 매끄럽고 아름답다면, 더 바랄 게 없다. 그리고 하모니, 그 어휘들을 지탱해주는 내적인 마음의 울림, 그다음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뒤따른다-즉흥연주다. 특별한 채널을 통과한 이야기가 내부에서 자유로이 솟구쳐 오른다. 나는 그저 그 흐름을 타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이 온다. 작품을 다 마치고(혹은 연주를 다 마치고) 맛볼 수 있는 '내가 어딘가 새로운, 의미 있는 장소에 이르렀다'는 고양된 기분이다. 그리고 잘만 풀리면, 우리는 독자=청중하고 그 고조되어가는 기분을 공유할 수 있다. 그것은 다른 데서는 믿을 수 없는 멋진 성취다.
텔로니어스 멍크는 내가 가장 경애하는 재즈 피아니스트인데, "당신의 연주는 어떻게 그렇게 특별하게 울리나요?"라는 질문에 그는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가리키며 이렇게 대답했다.
"새로운 음(note)은 어디에도 없어, 건반을 봐, 모든 음은 이미 그 안에 늘어서 있지. 그렇지만 어떤 음에다 자네가 확실하게 의미를 담으면, 그것이 다르게 울려 퍼지지. 자네가 해야 할 일은 진정으로 의미를 담은 음들을 주워 담는 거야.(It can't be any new note. When you look at the keyboard, all the notes are there already, but if you mean a note enough, it will sound different. You got to pick the notes you really me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