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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르도 May 01. 2018

제 9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서평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젊고 영리하고 재밌는 이야기꾼들의 소설들

제 8회 젊은작가상 수상 작품집을 읽으며 좋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에, 제 9회도 나오자마자 고민하지 않고 구매했다. 이번에는 출판하자마자 구매해서인지 부록으로 선정된 소설가들의 인터뷰와 작은 이야기가 담긴 팸플릿도 같이 받았다. 멋진 소설을 쓴 그들이 궁금했는데, 왠지 옆집 사람처럼 친근한 구석이 있어 재밌게 읽었다. 알라딘에서 구매했는데 생애 처음으로 회사 사무실 배송으로 했다. 평일 오후 무료하고, 힘든 일상 속 깜짝 선물처럼 책이 찾아온 듯해 기분이 좋았다. 다음부터 구매를 많이 하지 않는 한 회사로 보내야겠다. (요즘 책을 너무 많이 구매해 읽을 책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여자친구님에게 당분간 구매 금지령을 받았다)

지난해 대상을 받은 임현 소설가가 올해도 뽑혔고, 나머지 작가들은 새로운 분들이다. 이 소설가들을 알아보다 꽤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두 분 정도 직장을 겸업하면서 소설을 집필하신다는 것이다. 와... 존경스러워라. 대단하다. 퇴근 후 자유 글쓰기 습작도 어려운데 출근 전, 퇴근 후 소설을 쓴다는 건 대단한 열정과 체력이 필요할 테다. 나도 더욱 분발해서 습작도 해보고 진지하게 글쓰기를 대하도록 해야겠다. 다시 소설집으로 돌아오자. 소설집을 읽기 전 제목만 보고 내용을 유추해보는 재미가 있다. 혹시 수상 작품집을 읽기 전인 분들은 제목과 작가만 보고 분위기와 내용을 추리해보자.


1. 박민정 소설가의 ‘세실, 주희’
먼저, 박민정 소설가의 ‘세실, 주희’다. 세실과 주희가 주인공이고 무슨 내용일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두 여자 주인공이 나오려나. 작년처럼 페미니즘과 레즈비언을 다룬 소설인가라고 생각했다. 세실, 주희는 뭐랄까 리뷰 쓰기도 어렵고 단순히 설명하기 힘든 작품이다.(그래서 대상을 받았나 보다) 한 여성의 일화를 평범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를 통해 쉽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여성으로서 가진 문제와 그리고 모든 여성이 동일성을 가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동시에 한다. 쉬우면서도 설명하기 난감함 이 소설은 대상을 받을만하다. 평범한 일상의 소재와 에피소드, 그리고 평범하지만 않은 질문과 인상을 남기는 이야기다.


2. 임성순의 ‘회랑을 배회하는 양 떼와 그 포식자들’

내 취향만 보았을 때 대상 작품으로 꼽을 수 있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속 소설 중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현대 예술을 철저히 자본주의 구조로 소비하는 엘리트에 기생하는 주인공이 실패 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겪는 기묘한 퍼포먼스를 다뤘다. 갈수록 긴장감 있고 빨라지는 전개에 나도 모르게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툭툭 치는 대화에 무시할 수 없는 예술적 조예를 느낄 수 있다. 모르면 할 수 없는 대화들을 흥미롭고 그리고 유익하게 읽었다. 물론 소설 속 현대미술에 대한 대화가 정답일 리 없다. 소설은 말 그대로 허구니까. 하지만 이 소재를 다루는 솜씨가 남다르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재미와 속도감도 인상 깊었다.

3. 임현의 ‘그들의 이해관계’

임현이라는 소설가에 더욱 알 수 있었다. 임현은 일상 속에서 흔히 일어나는,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다룬다. 지난 ‘고두’에서는 사람의 이기심과 가십에 숨겨져 있던 이야기를 들춰내며 ‘너는 떳떳한가?’라는 질문을 강렬하게 던졌다면, ‘그들의 이해관계’에서는 ‘기적’이라는 소재를 다룬다. 누군가의 기적은 선택받은 것인가? 동일한 재앙 속 왜 내 아내는 죽고, 그들은 살아남았는가. 재앙은 일정량의 법칙에 따라 이루어지나? 왜 기적은 벌어지지? 큰 사고 소식을 듣고 나면 ‘휴, 내가 아니라 다행이야.’라고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인간에게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을 소설은 담고 있다.

4. 정영수의 ‘더 인간적인 말’

대화만 하면 싸우는 부부가 스스로 자살을 선택하는 ‘이모’의 소식을 접하는 이야기다. 이모의 자살은 우리가 생각하는 우울증으로 인한, 금전적으로 인한, 가족관계로 인한 자살이 아니다. 순전히 스스로 이제 명을 다하고 싶어서 선택하는 자살이다. 이유를 물어봐도 이유가 없다. 그냥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을 뿐이다. 이모는 스위스로 떠나고, 부부는 그 자리를 함께 한다. 항상 정치, 관념, 사회적 이슈를, 답도 나지 않는 맹렬한 언쟁을 하던 부부는 이모의 자살이라는 ‘사실’ 그것도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순전한 인간의 선택으로 말문을 잃는다. ‘더 인간적인 말’은 무엇일까?

5. 김세희의 ‘가만한 나날’

온라인 마케팅 회사에 취업해 가짜 블로그를 만드는 업무를 하며 겪는 주인공의 이야기다. 현재 스타트업 마케팅팀으로 근무하는 점에서 많은 공감을 할 수 있던 소재였다. 가짜 블로그는 가짜 인격체를 만들어 꾸민다. 그럴싸한 한 명이 제품을 리뷰하고 활발히 가짜 일상을 공유하면 우수 블로그로 분류된다. 그러면 그때부터 적극적인 광고를 시행한다. 거짓말을 하는 업무와 이를 그럴싸하게 잘하는 주인공, 자신의 리뷰로 피해자가 적발되고, 회사가 망해 실직 후 지나친 예전 동기를 보며 그녀는 무엇을 느꼈을까. 소설은 적절히 감정표현을 절제하고 리얼리티를 더욱 선사한다. ‘가만한 나날’을 ‘기만한 나날’로 읽은 건 내 기분 탓일까.

6. 최정나의 ‘한밤의 손님들’

카프카와 보르헤스를 생각나게 만드는 소설이다. 일반적이지 않다. 첫 페이지부터 ‘이게 뭔 말이냐. 뭔 상황이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엄마를 오리로, 동생을 돼지로 표현하고 식당 속 인물들은 주인공의 남편이 되었다가 내연남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주인공이 된다. 서사는 뒤죽박죽이고, 장소도 뒤섞인다. 남편이 갑자기 얻어맞은 채 끌려오고, 돼지와 오리는 그를 부축해서 끌고 온다. 꿈을 꾸는 것과 같은 소설은 그 나름의 강렬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7. 박상영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남자 동성애를 다룬 소설이다. 그래서 동성애 소설이냐? 아니다. 성공한 예술가의 삶을 꿈꾸었지만 실패한 그리고 사랑에서도 철저히 실패해 애처로운 보통사람을 다룬 이야기다. 동성애자로서 퀴어 영화의 한 획을 긋겠다고 선언하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된 영화 한 편도 없고, 철저히 이성애자 시각으로 동성애적 요소가 소비된다고 비판만 할 줄 알지 제대로 된 액션을 못하는, 그저 취한 채 울분을 소리 질러 외쳐대는 주인공이 나온다. 소리를 지르지만 메아리도 없다. 그리고 그들은 끝까지 취한 채 이리저리 헤맨다. 집에도 가지 않고 그저 울다 웃다 춤추다 웅크린다. 세상의 점도 되지 못한 존재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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