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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르도 Aug 05. 2018

부부 대신 파트너, 결혼 대신 팍스는 어떨까?

북저널리즘의 '팍스, 가장 자유로운 결혼'을 읽고

내 이야기


25살까지, 난 아이를 3명 낳을 거라고 말하고 다녔다. 내게 남동생이 있고 그 남동생은 나에게 동생이자, 가족이자, 친구이자, 하나의 작은 사회를 만들어 주었고, 난 자식을 낳을 때 그런 형제를 여러 명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러나 나 혼자서 낳는 것이 아니고, 내 아내가 낳는 것이며, 자식은 알아서 자라는 게 아니라 나와 아내가, 그리고 이 사회가 기른다는 깨달음과 동시에 나는 이 사회에서 자식을 아직 낳을 준비가 안되었다고 마음을 바꿨다.


27살까지, 난 결혼이 당연한 절차라고 생각했다. 수천만 원을 써가며 1시간 동안 행사를 진행하고 '저희 이제 결혼합니다'하는 모습들을 직접 보기 시작했고, 난 결혼식이라는 행사에 의문을 가졌다.

과연 꼭 필요한 절차일까? 남녀가 아니, 사랑하는 사람과 지내기 위해서 반드시 결혼이란 제도를 거쳐야만 공인받을 수 있는 걸까. 우리 부모님과 집안은 그렇다 쳐도 정부가 그렇게 바라보는 건 바람직할까? 결혼식이란 행사와 결혼이란 제도는 필수가 아닐 수 있다고 마음을 바꿨다.


28살, 난 '팍스, 가장 자유로운 결혼'을 읽었다. 프랑스의 팍스 제도는 내게 알려줬다. 결혼이 아닌 다른 형태의 결합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난 지지한다고 말하고 싶다. 굳게 믿건대 '팍스가 옳소'가 아닌 '팍스를 제공하는 프랑스 정부가 옳소'라고 전하고 싶다. 정부는 모든 개인의 선택과 권리를 보장할 수 있어햐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단,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그리고 우리나라에 팍스와 같은 제도가 준비된다면, 난 결혼보다는 팍스를 맺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선택지가 많은 사회를 나는 원한다.


개인은 다양한 형태의 사랑과 결합을 할 자유가 있고, 국가는 이를 보장해야 한다. 팍스의 첫 모습은 동성애를 위한 제도였다. 동성결혼을 끝내 지지하지 못한 프랑스 정부가 대안책으로 마련한 시민 연대 계약은 오히려 이성과 동성 커플을 가리지 않고 요즘에는 결혼보다 더 각광받는 제도가 되었다.


PACS는 또 하나의 가족의 형태이자 결혼의 대안책이 될 수 있다. 개인과 또 다른 개인의 만남이 기존 관습에 따르지 않더라도 가능하다는 점에 큰 의의를 가진다. 사실 많은 독자가 '팍스가 결혼보다 더 편하고 자유로운 형태이며, 시월드가 없고 집안간 분쟁을 줄일 수 있어 훨씬 우월한 제도이다'라고 순간 혹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강조하고 싶다. 팍스는 결혼 제도보다 우월하고 좋은 제도가 아니다. 결혼과 다른 제도다. 이는 결혼이란 제도말고 커플이 정부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하나의 선택지일 뿐이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선택지가 많다는 것은 건강한 사회를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라고.


우리나라에는 왜 팍스와 같은 제도가 아직 없는 걸까? 저자는 우리나라가 동성애를 포함한 다양한 소수를 배척하는 인식을 아직 갖고 있으며, 특히 부부간 그리고 각자의 가족 간 평등한 관계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다. 웹툰 며느라기를 이야기하고, 몇 가지 우리나라 시댁 문화를 예시로 힘들어하는 한국 며느리들에 대한 이해를 밝혔다. 물론 모든 우리나라 부부가 그런 형태를 띄지는 않겠지만 그런 잠재성이 충분히 가득 있기에 젊은 사람들, 특히 수많은 젊은 여성들이 결혼을 거부한다.


프랑스는 서로를 평등하게 보고, 며느리나 사위를 동등한 지위를 가진 한 명의 새로운 가족 구성원으로 여긴다. 시월드라는 개념도 없으며, 집안 간 분쟁도 적다고 한다. 물론, 프랑스의 모든 파트너나 부부가 서로 간 갈등이나 집안 간 갈등이 없지 않을 것이다. 어디에나 갈등은 있고, 문제는 있으며 실제로 책에서도 결혼이든 팍스든 이혼과 이별, 그리고 다툼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적어도 상대방을 평등하게 바라보는 기본 가치관이 팍스를 도입하는데 큰 역할을 했을 것이라 믿는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결혼 문화와 세대 차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팍스가 아닌 더욱 훌륭한 제도를 만들더라도 여전히 어렵다고 생각한다. 평등한 가족 문화를 가진 프랑스였기 때문에 팍스라는 제도를 도입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팍스와 같은 제도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서로 평등하고 자유로운 개인으로 바라보는 자세가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에 있는 '내 첫 직장 첫 사업장 재즈 카페에서'라는 수필의 마지막 문장을 인용하고 싶다.


"현대의 폐쇄된 사회 상황이 무척 걱정이 된다. 옆으로 빠져나가는 길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회는 좋은 사회라고 나는 생각한다."


개인이 인생을 위해 서로 다른 선택을 하고 모두가 이를 존중하며 정부로부터 보장받는 것이 팍스의 핵심이 아닐까? 팍스는 단순히 결혼의 대안책으로 도입된 것이 아니라 옆길로 가고 싶은 사람을 인정하고 보호하는 제도라고 볼 수 있다. 옆길로 빠져나가고 싶은 개인을 보장하는 사회가 건강하다. 진심으로 모든 형태의 커플이 사회 안정망에 속하고, 건강하면 좋겠다.




아쉬운 점이 보이더라...


기대가 컸던 탓일까 아쉬운 점들이 눈에 보였다. 내가 나서서 언급하기 조심스럽지만 한번씩 빗나간 이야기들이 눈에 보인 건 사실이다.


우선 제목이 아쉬웠다. '팍스, 가장 자유로운 결혼'인데, 일단 팍스가 기존 결혼과 다른 제도임을 설명하는 책에서 팍스 = 가장 자유로운 결혼이라고 제목을 지은 점이 조금 아쉽다. 더욱이, 여기서 '가장 자유로운'은 어디에서 어느 기준을 두고 말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남녀관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것인가, 부부가 아니기 때문에 자유롭나? 아니면 서로의 집안이 엮이지 않아 자유로운 건가? 절차가 간편해서 자유로울까? 혹은 모든 면에서 결혼보다 자유로워서?


출판사에서는 굉장히 고심한 제목이기에 함부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기 너무 오만하고 섣부른 것 같지만, 내 입장에서는 딱 들어맞는 제목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혼자서 '팍스, 새로운 모습의 가족'이나 '팍스, 결혼이 아닌 또 다른 결합'등을 생각했지만 역시 어려웠다. 분명 어떤 의도로 '가장 자유로운 결혼'이라 지었을지 이해는 하지만 조금은 아쉽다.


그리고 다른 아쉬운 부분은 내용에서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나온다는 점이다. 북저널리즘의 책은 개인 에세이가 아닌 하나의 정보처럼 받아들여지는데 사실 이에 비해 이번 책은 논증이 부족했지 않았나 싶었다. "엄마와 유아기를 보내는 것보다 유치원에서 사회생활을 겪어보는 것이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준다는 게 프랑스인의 일반적인 생각이다"(P.45)라고 밝혔는데, 뒷받침하는 근거가 없는데 정말 사실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리고 임산부 흡연을 허용한다는 관념 자체도 '하나의 카더라'처럼 전하는데, 예민한 사항일수록 올바른 정보 출처나 전문 소견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밖에도 P.68의 '프랑스인 부모 밑에서 자란 친구들이 다른 악센트의 말투를 놀리면서도 부러워한다'는 부분이나 다른 몇 가지에서도 개인적인 경험이 마치 프랑스의 통론인 것처럼 설명하는 내용이 있어 아쉬웠다. 평생 한국에서 살아온 나도 '우리나라 사람은 어찌어찌하다'고 밝히기 어려운데, 이 책에서는 저자가 프랑스에 사는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러운 부분을 단정짓는다고 느껴졌다.


특히, P.49에서 '한국 사회는 결혼에 대한 기대와 환상은 크지만, 결혼 생활을 지속시키기 위해 필요한 노력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편이다.'라고 한 것은 조금 섣부르지 않았나 하는 우려를 느꼈다. 저자는 성인이 되기 전부터 외국 생활을 해 온 사람으로 한국 결혼 생활을 옆에서 지켜볼 경험이 적음에도, 이미 결혼한 수많은 우리나라 부부들의 노력을 '무관심한 편이다'고 단정지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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