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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르도 Jun 07. 2018

이른 여름휴가, 축제의 정치와 함께 하다

스웨덴의 정치 페스티벌, 알메달렌 그리고 민주 정치의 덕목

처음으로 회사에 연차를 내고 주말과 공휴일을 이용해 긴 휴가를 떠났다. 첫 휴가는 홍콩과 마카오. 함께 할 책을 고민하던 찰나 사무실로 북저널리즘의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를 배송받았다. 이거다! 스웨덴의 대표 휴양지 알메달렌에서 열리는 정치 축제를 다룬 책이니 첫 휴가와 잘 어울리겠다 싶어 망설임 없이 선택했고, 어째 너무 재미있어서 떠나는 비행기에서 다 읽어버렸다. 홍콩 소호 카페에서 북저널리즘의 책을 펼쳐 멋드리 지게 읽는 기회는 놓쳤지만, 내용은 흥미로웠다.


한국 정치 이야기의 단상


책을 다 읽으니 '우리는 어떤가?'하는 질문이 떠올랐다. 작년 촛불집회로 사회가 떠들썩할 때, 나는 고향 대구에 잠깐 내려간 적이 있다. 오래간만에 본 가족과 외식을 하러 가는 사이 아버지가 무심코 물었다. "닌 박근혜가 탄핵될 만큼 큰 잘못을 했다고 생각하나?" 처음에는 흠칫 놀랐으나 이야기를 나눠 보니 다행히(?) 아버지도 탄핵에 동의한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다음 대선 후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분위기가 과잉되었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대구 사람으로 민주당과 문재인에 대한 불신을 기반으로 말을 던졌고, 물론 모든 정치인을 욕했다. 서로 다른 정치 성향 때문에 빚어난 답답함과 흥분, 그리고 아버지는 말했다. "어차피 정치하는 놈들은 다 똑같다. 다 썩었어. 다 갈아엎지 않는 이상 어떤 놈이든 같은 놈이다." 보다 못한 어머니는 "가족끼리 정치 이야기하지 마라 그만하고 밥이나 먹자."라고 말했다.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우리 아버지가 싫고 이해할 수 없었냐고 묻는다면 예상과 다르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상하게 대화 후 아버지보다 나 스스로 너무 부끄러웠다. 우리나라 정치에 대한 당연한 불신은 물론, 정치 이야기가 가족끼리 하면 안 되는 주제고, 젊은 세대로서 당당히 정책과 올바른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한 점이 너무 답답했다. 왜 '카더라 통신'으로 한 명의 정치인 개인에 대해 씹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그냥 겉만 훑는 이야기만 하는가. 그런데 이건 비단 우리 가족만의 모습이 아닐 테다.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심지어 TV에서 정치 토론을 볼 때 그 수준은 매한가지다. 정치에 대해 무지하고, 정책과 정당 그리고 스스로 민주 시민으로서 가치관은 전혀 없다. 우리나라에서 정치하는 사람은 돈 많고 약아서 권력욕만 가득한 놈으로 여겨진다. 이래도 우리나라는 선진 민주 국가일까?


알메달렌을 통해 바라본 스웨덴의 정치


알메달렌은 민주 정치의 좋은 예다. 휴가지에서 정치인들이 모여 자신들을 선전하고, 정책에 대해 토론하며 경쟁하는 축제를 연다. '선전'이라는 단어에 반감이 들지 않는다. 정치인 스스로 드러내고 귀와 마음을 활짝 열어 국민들과 소통한다. 우리나라 TV 토론이나 뉴스를 보면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어림잡을 수 있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대해 나름의 지식과 통찰을 갖춘 답을 하기란 쉽지 않다. 오랜 정치 공부가 되어있는 정치인만, 그리고 꾸준히 공부하고 배우는 정치인만 답할 수 있다. 스웨덴의 정치인은 젊은 정치인도 경력이 길다. 그리고 정책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자고 찾아다닌다. 정당에서는 정책 강의를 열고, 이해단체는 저마다의 이해관계를 설명한다. 정당활동과 정치에 반감이 들지 않는 이유는 우선 떳떳하고, 남을 이해하는 자세에서 비롯한다.


알메달렌을 통해 바라본 스웨덴 정치의 일면 중 가장 마음에 든 3가지가 있다.


1. 토론은 무조건이다.

스웨덴 정치는 생활 저변에 깊이 자리 잡았고, 이는 건강한 토론 문화에서 비롯한다. 우리나라와 달리 토론은 토론 자체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토론이랍시고 모여 서로 비방하고, 인격모독 및 치부를 들추거나, 가십을 퍼트리는 식의 과정이 아니란 말이다. 스웨덴의 토론에는 감정과잉이 없다. 개인으로서 다른 개인의 의사를 기본적으로 존중한다. 그리고 분명 맞는 부분이 어디에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다. 책에서도 연금 생활자 단체의 토론을 예로 든다. 잘하는 부분을 칭찬하고, 못하는 부분을 보완하고자 정치 활동을 한다. 현재 연금제도에 대한 불만만 터트리고자 모이는 단체가 아니다. 


가장 충격적인 일례는 원자력 발전소 폐기물 처리장 건이다. 지역끼리 경쟁했다. 우리나라처럼 서로 싫다고 떠넘기기 경쟁했냐 하면 그게 아니다. 서로 유치하겠다고 경쟁했다. 다양한 계층의 이해관계가 모두 모여 설명하고 토론한다. 정부와 전문가는 방사능 폐기물의 처리는 어떤 식으로 되는지 정확하게 설명한다. 시민은 '카더라 통신'이 아닌 팩트를 기반으로 이해한다. 혹시 모를 위기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얼마나 무해하고 어떤 보상과 혜택이 주어지는지 이야기한다. 그러니 모두 폐기 과정을 정확히 이해하고, 지역사회에 어떤 해가 있고, 이익이 있는지 계산을 하고 유치 경쟁을 하는 것이다.


2. 지역 정치인은 무급 봉사 활동 개념이다.

별것 아닐 수 있지만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라 생각한다. 우리나라 지역 정치인 전부는 아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역 유지이거나, 해당 지역 출신으로 국회의원이나 대선 등 중앙 정치에 나설 욕심이 있는 사람들이다. 꽤 높은 임금을 받으며, 좋은 대우와 참여 행사마다 의전을 받는다. 반면 스웨덴은 무급이다. 지역 사회를 위해 정치 활동을 해도 임금이 없어 보통 투잡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편하게 입고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3. 젊은 정치인의 경력이 10년 이상인 경우도 있다.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에서 나온 젊은 정치인 중 29세에 보건체육부 장관이 된 빅스트룀 회장이 나온다. 하지만 그런 그도 장관이 되기 전 청년 정치 조직 및 다양한 정치 경력을 쌓아왔다. 알메달렌 축제에서도 젊은이, 심지어 많은 어린이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부모님과 함께 즐기거나, 어린이 기자단으로 활동하며 나름의 날카로운 질문과 어린이의 이해관계에 해당되는 활동을 하는 것이다. 어릴 때 정치 활동을 하는 것은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할 점이라 생각한다. 


그 이유는 어린이로서, 젊은이로서 정치 활동을 하고 그에 대한 경험을 기반으로 추후 더욱 영향력이 큰 자리에 가더라도 연령층 고루고루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다 큰 어른, 특히 중장년층에 정치를 시작하면 아무래도 기존 기득권을 유지하고, 어린이와 학생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질 것이다. 엄연히 사회의 일원이며, 앞으로 더욱 많은 시간을 누려야 할 그들에게 올바른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인 스스로 어릴 때 어떤 점이 고민이었고, 어떤 부분이 중요한 사항이었는지 정치 활동으로서 경험과 인사이트를 쌓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평을 마무리하며...


정치란 분명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다.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정치를 믿지 않고, 정치인을 나쁜 사람으로 취급하는 사회는 멀쩡한 민주 사회가 아니다. 스웨덴은 정치를 믿고, 항상 이야기하며, 축제로 즐기기까지 한다. 정치인들이 낮에는 정책 토론과 선전을, 밤에는 댄스 배틀을 펼친다. 그런 스웨덴도 계속해서 고민한다. 젊은 정치인이 줄고, 젊은 세대의 정치 관심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분명 스웨덴의 알메달렌에서 배워야 할 점이 있다. 근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책을 읽고 나서도 모르겠다. 어려운 주제고,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온 사항이며 반성할 부분이 너무 많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다. 과거 피를 흘리며 싸운 적도 있고, 작은 불꽃을 모아 뒤집은 적도 있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갈 길이 멀다. 우리나라가 아닌 나 스스로 한 명의 민주 시민으로 본다면, 난 아주 형편없는 시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밑줄 친 구절


'정치는 약점을 파헤쳐 상대를 파멸시키는 행위가 아니라 나의 철학과 그 철학을 실현하기 위한 전략을 밝히고 국민의 지지를 받아 통치하는 행위다.'


'정치가 부패하는 이유는 대체할 사람이 없어 문제가 있어도 계속 출마하도록 놔두는 구조 때문'


'정당마다 추구하는 가치와 정책이 다른데도 수시로 협의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중략) 서로 싸운다는 것은 자주 만나지 않고 담을 쌓고 지낸 것의 결과물"이라면서 "자주 만나면 첨예하게 맞서던 이슈에서도 결국 합의점을 찾게 된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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