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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르도 May 17. 2024

각자 속도에 맞춰 배울 수 있는 세상

성인이 되어 독학을 해보니

최근 프랑스어를 독학하고 있다. 아내가 전문 자격증 공부를 하는 중인데 옆에서 놀고 있기보다는 함께 뭔가를 학습한다면 큰 힘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무엇을 공부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실행하기 수월해야 하고, 흥미를 잃지 않기 위해 적당히 어렵고,  추후 도움이 될 수 있는 여러 선택지를 탐색했다. 그러다 대학을 다닐 때 교양 수업으로 기초 프랑스어를 2개 학기 수강했던 기억이 나서 이참에 다시 배워보면 좋겠다고 결심했다. 물론 아내도 기뻐하며 진심으로 응원해 주었다.


프랑스어를 다시 공부하기 위해서 찾아보니 인터넷 강의, 오프라인 학원, 게다가 학위과정도 있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 불어불문학과가 있어 프랑스어와 불문학을 공부하고 학사 학위까지 취득할 수도 있었다. 대한민국이 참 좋은 교육 인프라를 갖추고 있었다고 새삼 느꼈다.


고민 끝에 나는 가장 비싼 옵션 중 하나인 오프라인 학원, 그것도 단기간 강도 높은 수업을 제공하는 림박프랑스어학원에 등록했다. 근처 강남에 위치한 프랑스어 학원의 초급 과정을 끝내기까지 7개월이 걸린다면, 림박은 4개월이면 충분했다.


4개월 주 1회 2시간 수업을 꼬박 참석하여 초급 과정을 마치고 현재는 Delf라는 프랑스어 능력 시험을 대비한 시원스쿨의 인강을 듣고 있다. 동기부여를 위해 올해 9월에 Delf B1이라는 자격시험에 응시할 예정이다. 


처음 프랑스어 공부를 재시작할 때는 실력이 참 더디게 늘어 좌절도 많이 했다. 듣기 파일을 재생해서 열심히 청취해도 전혀 들리지 않아 막막했다. 쓸모도 없을 프랑스어를 공부한다고 괜히 일을 벌였나 싶은 후회도 적지 않았다. 


지금 와서는 그때 들리지 않았던 수많은 문장과 어휘가 들린다. 그리고 처음보다 훨씬 더 능숙하게 다양한 표현을 구사할 수 있다. 2월부터 시작하여 5월에 초급 수업을 마치고 부쩍 늘어난 프랑스어 실력이 뿌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수 프랑스어 수준만 따지면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학사 학위 과정의 3학년 혹은 4학년 수준이며, 내가 대학에서 1년간 교양으로 수강했던 진도보다 훨씬 앞서나간 것이다. 불과 3개월 만에. 내가 한 것이라곤 주 1회 수업을 열심히 듣고, 퇴근 후 복습한 것뿐.


우리가 믿었던 학위 과정과 정규 교육 과정이란 것이 지금 세상에서 유효한 방식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반드시 대학교는 4년간 다닐 필요가 있을까? 스스로 바짝 공부한다면 1개월이면 끝날 학문의 진도를 1학기(4개월) 내내 느슨하게 나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심오하고 방대한 다양한 이론을 빡세게 배우는 과정과 기관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학문과 과정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유튜브나 인터넷 강의 등 온라인 교육 콘텐츠가 잘 발달되어 독학이 용이한 세상이다. 정규 과정이란 개념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 주어진 상황과 형편, 그리고 능력에 맞춰 속도를 내면 된다.


나만 이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창업가이자 음악가, 지금은 작가로 활동하는 Derek Sivers의 블로그 글에서도 볼 수 있다. 이 글에서 그는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한다. 버클리 음대 입학을 앞두고 지역 밴드 활동을 하는데, 버클리 음대 졸업생이자 선생님 출신인 한 사람을 만난다. 데렉이 버클리 음대 입학 예정이라고 하니, 내일 아침 9시에 자기 집으로 오면 버클리 음대에서 배울 진도를 미리 알려줄 수 있다고 했다. 데렉을 쿨한 기회라 생각하고 정말 찾아가서 배움을 청한다. 그날 3시간 일대일 가르침은 굉장히 밀도 있었고 진도도 빨랐다. 간신히 따라갈 수 있었다. 그 결과 3시간만으로 버클리 음대 정규 과정의 1학기 분량을 배웠고, 연이어 4번의 추가 레슨으로 그다음 4학기 분량을 배웠다고 한다. 


각자의 배움과 진도에는 제한(limit)가 없다. 정해진 교육 과정은 평균을 위해 존재한다. 모두가 비슷한 수준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최대한 평평하게 두드린 뒤 건널 수 있게 천천히 그리고 얕게 나눠서 알려준다. 하지만 우리의 시간과 능력이 허용된다면 얼마든지 앞지를 수 있고, 그걸 쉽게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사회 통념과 기존의 질서에 맞춰 우리 능력과 학습 수준을 굳이 억제할 필요가 없다. 이 경험을 토대로 난 앞으로 평균의 속도가 아닌 나만의 속도에 맞춰 제한없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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