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맛이 더 맛있어'
아직 차가운 공기가 바닥에 깔려있는 새벽에 우리 부부는 꽃단장을 했다. 결혼을 준비하기 위해 로마, 피렌체에서 야외 스냅 촬영을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13시간 비행기를 타고 온 타국에서 새벽부터 평소에 안 하던 단장을 하니 더욱 쑥스럽기도, 더욱 설레기도 했다.
한국에서 준비했던 대로 잘 마쳤다. 미리 섭외해둔 사진 작가님과 콜로세움 근처에서 만나 해 뜰 때쯤 시작하여, 현지인들의 출근 시간이 되었을 무렵 마쳤다. 날이 밝고 거리에 사람들이 더 많아져 부끄러웠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카메라 앞에서 자세를 잡고 미소도 짓다보니 조금씩 긴장이 풀렸다. 내향적인 성격의 배우도 무대 위에 올라서면 열띤 연기를 할 수 있는 것처럼 카메라 앞이 자연스럽지 않던 우리 커플도 점차 능숙해졌다. 우리나라 서울로 치면 명동 혹은 청담과도 같을 로마 꼰도띠 거리에서 정장과 드레스를 입고 다니니 특별한 경험을 한 것 같았다. 지나가는 현지인들도 축하한다, 보기 좋다고 해줘서 고마웠다.
사진 촬영을 마친 우리는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한숨 돌렸다. 눈을 붙이려고 했지만 창문 사이로 비치는 따뜻한 햇살과 흥겨운 골목길 소음, 그리고 우리 마음속 한가득 자리잡은 기대감과 설렘이 우리를 가만두지 않았다. 금세 털고 일어나 카페로 가서 커피와 빵으로 에너지 충전.
외국에 갈 때마다 이발소를 찾아가는 재미를 가졌던 나는 이때 로마 이발소를 보고 나중에 가볼 것이라고 사진을 찍어뒀다. 네덜란드 교환학생할 때 유럽 곳곳의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깎고, 홍콩여행에서도 머리를 깎았었다. 올해 다녀온 포르투에서도 머리를 깎았다.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이탈리아 이발소를 가지 못했다. 스냅 촬영한다고 머리를 직전에 다듬고 왔기 때문에 깎을 머리카락이 없었다. 여행 말미에 깎으려고 했으나 시간이 빠듯해 결국 포기.
이탈리아 이발소에서 재미난 옛 추억이 하나 있다. 2015년 여름에 네 살 어린 남동생이랑 3주간 이탈리아 여행을 했다. 교환학생을 갓 마친 나는 로마 떼르미니역 앞에서 만난 20살짜리 남동생이 어찌 반가웠던지. 이탈리아 여행을 시작했는데 당시 어린 내 동생은 내 머리 스타일과 현지 남자 헤어스타일을 보고는 자기도 이렇게 깎고 싶다고 했다. 볼로냐에 있을 때 어느 허름한 동네 이발소에 갔었다.
갑작스런 두 아시아인 남정네가 들어오니 이발사는 당황했지만 숨기며, 동생을 의자에 앉혔다. 동생은 내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그다음 자기가 봐놓은 예시 사진들을 이발사에게 보여줬다. 이발사는 '클래식!'이러면서 자신있게 가위를 들고 시작했다. 난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워 동네 한바퀴 돌고 저녁 뭐 먹을지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그때 같이 있어줘야 했다)
동네 한바퀴 돌고, 저녁 먹을 식당도 찾고, 가게도 구경하고 다시 이발소에 돌아오니 분위기가 사뭇 무거워졌다. 동생의 얼굴은 굉장히 어둡고, 이발사도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며 급히 마무리하고 있었다. 가여운 이발사가 간과한 것은 당시 내 동생 머리는 파마 머리라는 점이었다. 당연히 현지인처럼 곱슬머리인 줄 알고 짧게 깎았는데 우리 남동생은 유난히 머리카락이 굵고 억센 직모에 가까운 머리였으니... 짧아진 머리는 삐죽삐죽 튀어나오며 가라앉을 줄 모르고, 이발사도 어쩔 줄 몰라했다. 그리하여 동생의 머리는 그냥 사각형으로 90년대 상고머리 혹은 북한 사람 머리처럼 되어버렸는데...
동생은 앞으로 여행 사진 망쳤다고 울면서 여행내내 볼캡 모자를 썼다는...
다시 로마로 돌아와, 점심은 까르보나라와 토마토 해산물 리조또를 먹었다. 아내는 까르보나라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토마토 소스 베이스를 골랐고, 난 로마의 첫 끼는 무조건 까르보나라!
우리가 머문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추천해준 숙소 근처 레스토랑이었는데 아주 맛있지는 않았지만 괜찮은 수준이었다. 난 저 꾸덕하고 뻑뻑한 특유의 까르보나라 소스랑 단단한 식감의 리가토니 파스타가 정말 좋다. 정통 까르보나라를 알고는 국물 가득한 크림 파스타는 못 먹겠다! (이래놓고 아웃백 투움바 파스타는 잘 먹는다)
거리를 걸으며 구경하는데 빗물이 빠지도록 도로에 구멍이 예쁘게 나있었다. 눈꽃모양이다. 아내와 함께 언제부터 이 눈꽃 하수구멍이 있었을까 이야기했다. 로마시대였다면 굉장했겠지만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로마의 돌길만으로도 낭만이 치사량 수준인데 이런 디테일까지 숨어있다니 감동이라며 아내가 사진을 찍었던 귀여운 기억이 있다.
이날은 저녁 해지기 전에 성 베드로 성당에 사진 작가와 다시 만나 성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더 찍었다. 성 베드로 성당을 7년만에 다시 왔는데 여전히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이 성당으로 가는 길부터 로마 제국의 수도라는 위엄을 느낄 수 있는데, 광활한 대로변, 그리고 멀리서부터 윤곽을 드러내는 성 베드로 성당이 멋졌다. 해가 지기 시작하니 하얀 성당이 점점 붉게 물들어서 더욱 로맨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