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산문집 '보다'를 읽다

김영하의 시선을 읽다

by 까르도

김영하 산문집을 3권 세트로 구매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소설가 중 한 명으로 최근들어 방송활동도 나오며, 강연도 늘어 꽤 유명세를 타고 있다. 조용히 소설을 쓰던 그가 왜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는지. 자신의 말을 더 내세우게 되었는지를 일부 설명한다.


김영하의 '보다'는 자신이 본 세상과 사회, 이것저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스마트폰, 자본주의, 여행, 인생 가치관, 영화, 미래 등 다양한 주제를 두고 이야기한다. 하루키의 에세이 산문집으로 재미를 톡톡히 본 나는 김영하의 산문도 재미를 기대했다. 물론 재미있었다. 글도 술술 읽히고 주제도 적절했다. 다만, 하루키에서 없었던 어느 정도의 무거움이 있었다. 이는 김영하가 산문집을 쓰고 강연 활동을 하고 목소리를 낸 이유와도 어느정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밑줄 친 구절


'자유 아닌 자유'에서

물론 세일즈맨은 고객이 물건을 사도록 유혹할 자유가 있고 고객은 그 유혹에 넘어갈 자유가 있다. 이때의 자유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정치적 개념이라기보다 강력한 저항이 없는 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 제 뜻을 이루겠다는 힘의 논리를 말한다.

초강대국 미국이 걸핏하면 들이대는 가치가 '자유'라는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진짜 부자는 소유하지 않는다'에서

부자를 정말 부자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은 가난에 대한 무지다.


'여행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용기'에서

새삼 당연한 얘기지만, 여행을 하고 안 하고는 단지 선택의 문제일 뿐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필자: 요즘 사람들을 보노라면 여행강박증을 갖기 시작하는 것 같다. 보다 나은 삶을 만드는 요소 중 가장 큰 요소로 여행으로 꼽는다. 대학시절 유럽여행은 반드시 갔다와야 하고, 직장인이 되면 연차를 꼭 붙여서 하루바삐 다닌다. 일정을 빠듯하게 잡고 옛날 근대 유럽인들이 그랬듯이 깃발 꼽고 사진 찍기식의 여행이 주를 이룬다. 물론, 더 많은 시간과 돈을 주지 못하는 사회의 문제도 있을테지만 해외여행을 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식의 주변 분위기도 한 몫 한다고 생각한다. 주변 사람보다 꽤 많이 다녀본 나에게 사람들은 부럽다고 말하지만 나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때가 있고, 시기별로 느낄 수 있는게 다르다. 어릴 때 갔다온걸 부러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대답한다. 진심이다. 김영하의 말대로 여행은 선택이지 의무나 강박에 의해 하는게 아니다. 남들이 보라카이, 세부부터 파리, 런던, 프라하를 간다고 나도 가고 싶어. 부러워. 라는 단순한 생각보다는 정말 내가 가고 싶고, 보고 싶고, 느끼고 싶을 때와 장소가 생긴다면 그때 준비해서 가자. 미국 안 가봤다고, 유럽 안 가봤다고 달라지는건 아무것도 없다. 아니면 차라리 과감히 몇 개월 살아보라.



'나쁜 부모 사랑하기'에서

배를 타고 떠나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모비딕과 대부는 보여준다. (김영하는 아버지와 아들 관계를 통해 많은 이야기의 실타래를 풀려고 한다)

배를 타고 고향을 떠나는 것, 술을 만들어 먹는 것만으로 온전한 성인이 될 수 있었다면 아마 문학과 연극, 영화 같은 것들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카르페 디엠과 메멘토 모리'에서

남의 위험은 더 커 보인다. 반면 자기가 처한 위험은 무시한다. 그게 인간이다.

미래의 시점에서 현재의 파국을 상상해보는 것은 지금의 삶을 더 각별하게 만든다.


'어차피 죽을 인생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이유'에서

"삶이 이어지지 않을 죽음 후에는 전혀 무서워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이해한 사람에게는 삶 또한 무서워할 것이 하나도 없다."


'샤워부스에서 노래하기'에서

세상에 맞춰 자신을 바꿀 것이냐, 세상을 자기에게 맞게 바꿀 것이냐. 아마도 모든 예술가의 고민일 것이다.


'진심은 진심으로 전달되지 않는다'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이야기가 '상연되는' 현장에 갑자기 등장해 자기 입으로 자기가 겪은 이야기를 전해준다는 것.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 유명한 이야기들, 예컨대 세이렌이나 키클롭스, "내 이름은 아무도 아니'오"등은 모두 이 부분에 들어 있다.

안타깝게도 진심은 진심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진심 역시 '잘 설계된 우회로'를 통해 가장 설득력 있게 전달된다. 그게 이 세상에 아직도 이야기가, 그리고 작가가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연기하기 가장 어려운 것

"인간에게 연극적 자아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연극적 자아가 바로 인간의 본성입니다. 인간은 원래 연극적 본성을 타고납니다. 이 본성을 억누르면서 성인이 되는 거예요."

우리가 가장 연기하기 어려운 장면은 바로 우리의 일상일 것이다.


'2차원과 3차원'에서

오르한 파묵의 소설과 소설가 인용

"꿈을 꿀 때는 그 꿈이 진짜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꿈이니까요. 우리는 소설도 진짜라고 생각하며 읽습니다. 그게 꿈이니까요. 우리는 소설도 진짜라고 생각하며 읽습니다. 하지만 머릿속 한구석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모순되는 상황은 소설의 본질에서 옵니다. 소설 예술은 서로 모순되는 것들을 동시에 믿을 수 있는 우리의 능력에 바탕을 둡니다.


'앞에서 날아오는 돌'에서

우리에게 자기실현적 암시가 꼭 필요한 인생의 순간들이 있다는 것. 그 암시가 꼭 점쟁이나 관상쟁이에게서 나올 필요는 없겠지만 말이다.


'택시라는 연옥'에서

택시는 엄청나게 부유하지도, 찢어지게 가난하지도 않은 사람들과 관련이 깊다.

연옥은 천국과 지옥 중간에 있다. 로마 가톨릭이 연옥을 창조해낸 것은 천국과 지옥의 이분법만으로 사후세계를 설명하는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택시는 음주 문화, 육체노동자 천시 풍조, 무질서한 교통, 높은 강력범죄율 같은 문제를 떠안고 있는우리 사회의 거울이다. 누군가 이걸 간단하고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적어도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예측불가능한 인간이 된다는 것'에서

출근길을 바꾸고 안 먹던 것을 먹고 안 하던 짓을 하며 난데없이 엉뚱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면 우리는 점차 예측 불가능한 인간이 되어질 것이다. 이런 엉뚱한 연습에서 얻어지는 부산물도 있다.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감수성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무심하게 내버려둔 존재, 가장 무지한 존재가 바로 자신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지 모른다.


'홈쇼핑과 택배의 명절, 추석'에서

그들의 손에는 전기밥솥이나 텔레비전 상자가 들려 있었다. 다시 서울로 돌아올 때 그들의 손에는 늙은 부모가 들려준 농작물이 한가득이었다. 이런 광경은 산업화를 모종의 정당한 거래처럼 포장하는 효과가 있었다.


'탁심광장'에서

기차와 추리소설 모두 산업혁명 당시의 영국에서 발원했다. 정시에 운행되는 기차는 근대적 합리성의 완성이며 역 광장의 시계탑은 근대의 승리를 알리는 오벨리스크였다.


'나는 왜 부산에서 사는 것일까?'에서

서울 사람들은 내가 부산에서 살고 있다고 하면 '왜' 부산에서 살고 있느냐고 묻는다. 서울에 사는 사람에게는 '왜 서울에 사느냐'고 묻지 않는다. 그것은 이유를 간단히 납득할 수 없기 때무에 쓰는 '왜'이다.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에게 '왜' 결혼을 하지 않느냐고 물을 때 쓰는 바로 그 '왜'다.


'작가의 말'에서

우리는 정보와 영상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많은 사람이 뭔가를 '본다'고 믿지만 우리가 봤다고 믿는 그 무언가는 그 무언가는 홍수에 떠내려오는 장롱 문짝처럼 빠르게 흘러가버리고 우리 정신에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제대로 보기 위해서라도 책상 앞에 앉아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내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생각의 가장 훌륭한 도구는 그 생각을 적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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