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 나오게 힘든 육아
아이를 키운다는 건 취향을 뒤바꾸는 일이다.
유아차에 주렁주렁 장난감을 매달고, 하단 주머니에도 한가득 짐을 싣고 총총거리며 가는 내 모습이 유리창에 비쳤다. 간신히 선크림만 바르고 나온 멀건 내 얼굴. 휴. 아이가 없던 시절 미니멀리스트를 추구한 터라 작은 크로스백을 탈탈 털어 왓츠인마이백을 해보면 반지갑, 휴대폰, 에어팟, 립밤이 전부였던 나. 짧은 치마를 좋아해 오버사이즈 상의에 매칭해 입던 나. 지금의 나는 오버사이즈 상의는 여전하나 긴 바지, 긴치마로 바뀌었고 아무리 간소하게 짐을 챙긴다고 해도 기저귀가방은 항상 빵빵하다. 그뿐이랴. 여행을 좋아해 임신 중에도 핀란드 이글루호텔에서 오로라를 보는가 하면 슬로베니아 블레드 호수를 한 바퀴 걷고 임신 8개월 차에도 부른 배를 안고 폴란드 크라쿠프를 누볐다. 하지만 현재 아이 돌을 맞이해 여행 가자는 남편의 제안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럴 수가. 짐 한가득 이고 지고 떠나서 낯선 곳을 나다니며 혹시 아이가 아프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느니 장난감이 가득하고 익숙한 환경을 택한 건 당연지사일지도. 엄마가 되고 포기한 게 어디 취향뿐일까.
임신과 출산, 육아는 몸도 물론 고되고 힘들지만 엄마로서의 정체성과 엄마가 되는 내 모습을 받아들이는 과정 역시 쉽지 않았다. 아니, 정말 욕이 나올 만큼 힘들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평소 아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엄밀히 말하면 아이라는 존재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고 아이를 가지지 않겠다는 단단한 확신도 없어 결혼 후 으레 이어지던 임신에 관한 질문에 딩크라고 확언하지도 않는 그런 어정쩡한 상태였다. 속으론 자식 하나쯤은 있어야지 생각하던 친정엄마도 임신을 안 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몰라 내게 손주 욕심을 내색하지는 못하셨고 시어머니도 별말씀이 없으셨다. 결혼을 하고 3년 정도 지나자 피임을 하지 않아도 임신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우리 부부가 혹시 난임인 건가 하는 걱정이 가끔 들긴 했다. 남편과 나는 술잔을 기울이며 아이가 자연스럽게 생기면 낳고 시험관은 하지 말자고 했다.
어느 가을날 감기 기운에 약을 먹기 전 혹시나 해본 임신테스트기에 두 줄이 선명히 나타났고, 이따금 하던 걱정이 무색하게 덜컥 그리고 쉽게 임신이 되었다. 가까운 친척과 친구가 난임을 겪고 있어 '쉽게' 임신이 되었다는 표현이 조심스럽다. 임신이라는 것이 참 얄궂게도 노력 여부나 간절함의 정도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원치 않더라도 되거나 나처럼 별 무리 없이 이뤄지기도 하고 누군가는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기도 한다.
희망을 걸었다가 절망에 미끄러지는 경험을 하지 않아서일까. 임신은 물론 기뻤지만 사실 얼떨떨함이 더 컸다. 다행히 나는 입덧도 심하지 않았고 임신과정에서 흔히 겪을 만한 임신성 당뇨 등의 증상도 겪지 않았다. 그리 힘들지 않은 임신부였다. 과정이 그렇게 무던해서였을까. 출산 날 아이의 울음소리가 우렁차게 들리던 순간엔 다소 닭살이 돋았지만 곧 간호사가 내 곁으로 아이를 데려와 보여주는데... 엥? 못생겼잖아요. 태지가 덕지덕지 묻은 채 눈을 감고 울어대느라 더욱 검붉어 보이고 마치 외계인 같았다. 얘가 제 애라구요?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었다.
육아 정보를 찾아보는 데도 무관심하고 내 애 키우느라 정신없고 바빠서 다른 사람 육아에 큰 흥미가 없다. 원치 않아도 인스타 피드에 떠서 보게 되는 육아 이야기는 힘들고 어쩌고 해도 결국 내 새끼 귀여워, 로 끝나곤 했다. 모든 힘듦이 상쇄되는 귀여움과 행복이라나. 꼭 그렇지 만도 않은데? 엿 같고 짜증 나는 순간이 잦은데? 천성이 조금 비뚤어진 나는 세상 모든 육아가 행복으로 끝나는 게 아님을 말하고 싶어 욕으로 가득한 육아일기, '욕아일기'를 쓰기로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