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아일기

시발시발 모유보다 룰루랄라 분유

by ama

"왜 모유수유 안 했어요?"

"힘들어서요"

"그게 나중엔 더 편한데"

"해보셨어요?"


영유아 검진 차 찾은 소아과, 머리가 희끗한 소아과 남의사가 모유수유가 더 편한데 왜 하지 않았냐며 묻길래 어이가 없었다. 나는 단 한 번 아이에게 젖을 물린 후 다신 직접 수유를 하지 않았다. 출산 이틀 후 진통제와 수액을 꽂고 병실에 누워 있는데 수유콜이 오자 안 간다고 답하고 잠을 잤다. 링거 줄을 제거하고 이튿날 수유실에 가서 아이를 처음 안아 보는데 대각선 자리 엄마가 링거줄을 주렁주렁 달고 와서 아이를 안고 수유하는 모습이 보였다. 어제 아기를 안아보지도 않았던 게 미안하고 수유실에 있는 모든 엄마가 젖을 물리길래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아이의 입에 젖을 갖다 대보았다. 왁씨! 진짜 아팠다. 젖 먹던 힘까지 쓴다는 말은 아기가 젖을 빠는 흡입력이 그렇게 세다는 말이었나 보다. 아직 젖이 돌지도 않았던 때라 뭔가 나올 리도 없는데 괜히 성급하게 엄마 코스프레를 한 것 같다고 황급히 젖가슴을 뗐다. 직수는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날, 지옥의 젖몸살이 시작됐다. 사춘기 시절 이후 가슴이 그렇게 아픈 건 처음이었다. 아니 그보다 7배 정도는 더 아팠던 거 같다. 마침 병원 내 가슴마사지실이 휴일이라 차오르는 젖가슴을 어쩌지 못한 채 열까지 나기 시작했다. 나는 교양이나 부끄러움 따윈 잊은 채 환자복 상의를 풀어헤치고 남편에게 가슴을 주무르라고 소리 질렀다. 마사지실이 문 열자마자 가서 드러누워 마사지를 받았다. 양쪽 가슴을 쥐어뜯어서 너무 아팠지만 젖몸살이 다시 올까 봐 꾹 참았고, 땀을 뻘뻘 흘리는 마사지사는 '젖 잘 나오는 가슴'이라며 생전 처음 들었지만 별 쓸모없는 칭찬을 해주셨다. 그럼 뭐해요, 전 모유수유 안 할 건데요?

모유가 아기에게 더 좋다느니 모유수유가 산모 회복에도 도움이 된다느니 말은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았다. 왜냐? 나는 술을 먹어야 했으니까. 술, 그중에서도 소주 그리고 술자리를 무지하게 좋아한다. 9개월가량의 임신기간 중 가장 힘들었던 건 술을 못 먹는다는 것이었다. 스무 살 이후로 술 없이 몇 달, 아니 며칠을 보낸 적이 없었는데 술 한 잔도 마시지 않고 맨 정신으로 사는 게 힘들었다. 도대체 술을 안 마시는 사람은 긴긴밤을 뭐 하며 보내는지 궁금했다. 남편은 "여보 주량이라면 소주 한 잔 정도는 마셔도 괜찮지 않을까?" 했지만 소주 한 잔 누구 코에 붙이려고, 기왕 참는 거 맛대가리 없는 무알콜 맥주도 먹지 않았다. 아마 내게 모성이라는 게 있다면 금주 기간에 발휘된 듯하다. 아이를 낳자마자 알코올중독자로 살 것이라 선언했고 따라서 모유수유는 내 선택지에 낄 수 없었다.


진통이 얼마나 오래 얼마나 많이 아플지 몰라 질식분만은 생각조차 않고 제왕절개를 선택했던 나, 술을 먹어야 하니 모유수유는 제외했던 내가 생각지 못한 변수가 있었으니 바로 '젖 잘 나오는 가슴'이었다. 수술 부위 통증은 진통제를 맞아가며 생살을 찢었는데 이만큼도 아프지 않을까 하며 버텼지만 젖몸살은 처음 겪어보는 종류의 당황스러움과 고통이었다. 낮시간에는 어찌어찌 유축을 한다고 해도 밤이 고역이었다. 잠이라도 푹 자고 싶은데 가슴이 부풀어 올라 세 시간마다 옷을 풀어헤치고 유축기 앞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 건 귀찮고 아프고 약간은 모욕스럽기도 했다. 남편이 같이 일어나 유축기 세팅과 정리, 소독을 맡았지만 자다 일어나 옷을 벗고 한 마리 젖소처럼 젖을 짜야하는 내 신세가 서글퍼 눈물이 났다. 나 진짜 힘들다고!!!

이후 존경하는 인물은 '모유수유하는 엄마들'로 바뀌었다. 모유수유를 하려면 그 지겨운 미역국도 한 대접씩 먹어야 하고 엄마가 잘 갖춰 먹어야 모유의 영양 역시 좋아질 터였다. 그들은 훌륭하지만 나는 못한다. 삼시세끼 일주일 내내 먹어대서 똥까지 미역이 나오게 하는 미역국을 쳐다보기도 싫고 매콤알싸 한 마라탕이 먹고 싶었다. 대기업에서 똑똑한 연구원들이 영양소 고루 갖춰 만들어낸 분유, 꼭 젖 달린 엄마가 아니어도 아무나 타서 먹이면 되는 분유를 먹이기로 결심했다. 백화점 모유수유실은 쇼핑을 하다가도 때 되면 엄마는 가슴을 드러내고 젖을 먹여야 함을 의미했다. 모두가 자는 한밤중~새벽 나 홀로 우두커니 앉아 있기도 싫었다. 시발시발 해가며 모유를 먹이는 것보다 룰루랄라 분유를 먹이는 게 내 행복이며 그게 아기를 위한 길이라 생각했다.


+아, 단유를 하고도 나의 '젖 잘 나오는 가슴'에는 한동안 젖이 돌았고 아이가 200일이 다 되었을 때도 아이가 울자 가슴 끝이 저릿하면서 방울이 맺혔다. 이 지긋지긋한 젖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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