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아일기

라테파파가 아니어도 괜찮아

by ama

대체로 나는 토요일에 글을 쓴다. 이따금씩 떠오르는 생각을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두었다가 몰아서 엮어 쓰는 편이다. 남편이 일주일 중 하루는 자기가 아이를 볼 테니 나는 나가서 쇼핑도 하고 쉬며 기분전환을 하라고 했다. 평일에 남편은 퇴근 후 아이에게 저녁을 먹이고(물론 내가 미리 준비해 둔) 목욕을 시키고 재우기에 나는 남편의 퇴근에 맞춰 육아퇴근을 한다. 평일과 주말 나름의 육아 분담인 셈인데, 우리 이야기를 알게 된 이들이 남편을 두고 '사랑꾼'이라느니 아이 잘 보는 아빠라고들 했다. 칭찬이었으나 한편으론 의아했다. 월화수목금 내내 아이를 보는 나는 사랑꾼이나 아이 잘 보는 엄마라는 소릴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빠가 퇴근 후 두어 시간, 일주일에 하루 아이를 보는 건 대단한 일이고, 엄마가 아이를 기르는 건 당연한 일인거지?

어느 영상 콘텐츠에서도 비슷한 말을 하는 걸 보았다. 임신한 와이프와 병원 검진 때마다 동행하는 남편을 두고 좋은 남편이자 아빠로 평가하는 걸 비꼬았다. 그렇게 치면 가장 칭찬받고 격려받아야 하는 건 임신과 출산 당사자인 여성인데 말이다. '*서방이 잘하네, 하루라도 그렇게 애 떼주는 게 어디냐'며 사위를 치켜세우는 엄마에게 나는 입을 삐쭉 내밀며 위와 같은 내 생각을 말했다. 엄마는 언제나 그랬듯 현명한 답을 내주었다. "그렇게 하는 남자들이 잘 없거든."

자기 새끼 보는 일에 칭찬씩이나 들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서 주위의 부러움을 남편에게 전하지 않았다. 물론 내가 나가서 놀고 남편이 아이를 볼 때 뭐는 어떡해? 뭐는 어떻게 해? 따위의 질문을 해 마음을 불편하게 한 적도 없고, 아침 일찍 일어나는 아이를 거실로 데리고 나가 출근 전까지 놀아주고 퇴근 후 피곤할 텐데 아이를 '떼주는' 건 고맙다. 물론 아빠가 아이를 보는 건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한편으론 세상에 당연한 일은 없다. 마찬가지로 엄마가 아이 보는 일 역시 당연하지만 당연하게 취급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은 후 육아방식의 차이로 많이들 싸운다는데, 나는 친정에서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우다 와서 그런지 육아문제로 남편과 싸운 적은 없다. 원래 크게 싸운 적 없는 관계이기도 하고, 좋은 부부가 좋은 부모가 된다고 믿기에 되도록 싸우지 않으려 노력한다. 남편의 육아방식이 100퍼센트 마음에 든다거나 너무나 잘해서 입댈 게 없어서가 아니라 아이 아빠인데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하고 존중한다. 혹여 못마땅한 점이 있더라도 흐린 눈을 하고 못 본 척 넘어간다. 성에 안 차고 마음에 안 들면 내가 해야 한다. 하지만 내 체력에는 한계가 있고 나 역시 그리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싸울 일이 없다.

싸움의 계기가 어디 방식의 차이만 있을까. 많이들 바뀌고 있다곤 하지만 주위에 애 잘 보는 남자, 육아에 적극 참여하는 아빠는 손에 꼽을 만큼 드물다. 아, 한국 아빠들에 한정해서. 유럽 공원이나 몰 등지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적극적으로 케어하는 아빠들을 많이 목격했다. 유아차에 아이를 태우고 조깅하는 아빠, 엄마 없이 아이 둘셋을 업거나 손 잡고 다니는 아빠, 이들이 소위 말하는 '라테 파파'일 것이다. 동네 공원에서 항상 마주치는 또래 아이들이 있는데, 자주 아빠와 함께 해서 나는 부부 모두와 알고 지내지만 그들은 내 남편의 얼굴조차 모른다. 남편이 육아에 무심해서가 아니라 일하러 가서 집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 아빠들의 육아 참여도가 낮은 이유는 그들이 아이 보기를 대단히 싫어한다거나 와이프의 '독박'에 혈안이 되어 있어서가 아니라 정말 일을 많이 해서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내 주변 유럽 아빠들은 재택근무도 잦고 휴가도 많아 집에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다. 유럽과 한국은 가족중심의 문화냐 아니냐의 차이도 있겠으나 한국은 업무 시간이 많고 강도 역시 높은 데다 빌어먹을 회식은 또 얼마나 많은지. 정말 제 아이를 돌볼 시간이 없다. 오히려 가장의 책임감은 조직에 더욱 충성하게 만들고 유명무실한 육아휴직은 먼 세상 이야기가 아닐까.

다정다감하고 대체로 잘하는 남편도 말로 나를 서운하게 한 적이 있었다. 결혼 전 연애 때 친구와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곳 게스트하우스에서 부부가 모두 육아휴직을 내고 아이들과 제주 한달살이를 하고 있었노라 전했다. "둘 다 공무원이나 선생님이겠지. 나는 육아휴직 낼 생각 없는데?" 나는 제주에서 새카맣게 익도록 신나게 노는 아이들과 그 부모, 가족의 화목함과 단란함을 이야기했는데 이것이 한달살이가 가능한 그들의 직업이나 형편에 대한 동경으로 들렸는지 이상한 포인트의 대답이 돌아오자 잠시 멍해졌다. 그리고 답했다. "나도. 나도 육아휴직 생각 없어." 비혼주의에다 아이 생각은 더더욱 없던 내가 육아휴직을 생각해본 적 따윈 없었지만, 아니 육아휴직이 가능한 직업조차 없던 때지만 당시 대놓고 육아휴직을 하지 않겠다는 그의 말에 섭섭했다. 마치 육아를 선택적으로 하겠단 말로 들렸던 것 같다. 나중에 승진 대상자들 가운데 육아휴직 사용자만 동기들 뒤로 순위가 밀려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의 육아휴직 보이콧(?)이 이해됐다.

세월이 흘러 흘러 나의 비혼 다짐도, 당시의 서운함도 모두 무색해졌고 한국과 멀리 떨어진 유럽 땅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다. 남편은 여전히 바쁘다. 하지만 바쁜 와중에도 내가 조금이라도 덜 힘들도록 배려하고 남편의 입장에서 최대한 육아에 참여하려 하는 게 느껴진다. 그걸로 만족한다. 어차피 육아의 힘듦은 상대적인 게 아니기에 각자의 자리에서 각각 소임을 하되 서로를 위해주는 걸로 됐다. 낙이 있다면 아이를 재운 후 술 한잔 같이 마시며 고생했지, 하고 다독이며 아이의 재롱이나 재밌는 에피소드를 나누는 일. 아이 낳기 전처럼 부어라 마셔라 진탕 술을 마시고 이튿날 숙취로 하루종일 누워 있는 일은 한동안 불가능하겠지만 (가끔 그립다.) 먼 훗날 성인이 된 아이와 남편과 셋이 함께할 술자리를 기대해보기도 한다. 아무리 술자리 조기교육을 한 데도 아직 요원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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