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아일기

개와 애를 키운다는 것

by ama

개, 그것도 나이 든 개에게 아기란 어떤 존재일까. 갑자기 나타나 온 집안의 중심이 되어버린 시끄러운 생명체. 자기에게 향하던 애정의 눈길과 손길, 다정한 목소리와 관심 모두 빼앗아간 아기라는 녀석.


리키를 처음 만난 건 약 10년 전 축소 이전하게 된 유기견 보호소에서 안락사 공고를 올린 사진에서였다. 진한 초콜릿 색깔의 곱슬거리는 털에 까만 눈을 가진 푸들. 다른 이름을 지어뒀지만 임시보호하던 분이 지은 리키라는 이름이 너무나 잘 어울려서 그대로 불렀다. 연애시절 내내 함께한 리키를 결혼식에서 '화견'으로 입장시키고 싶었지만 사람 좋아하는 녀석이 너무나 날뛸 것 같아 참았다. 함께 유럽으로 건너와 유럽 여권도 생긴 리키는 개들의 천국인 이곳에서 하루 두 번 산책하며 견생 최고의 나날을 보냈다. 나도 리키 덕분에 개 데리고 다니는 아시안으로 눈길을 끌었고 주위 친구들도 쉽게 사귈 수 있었다.


한국에서 아이를 낳기로 결정하고, 리키가 혼자 집에 있을 시간이 걱정돼 한국에 다시 데려와 친정에서 함께 지내기로 했다. 개의 등장을 썩 내켜하진 않으시던 친정부모님도 무작정 밀고 들어오는 딸과 개를 내치진 못하셨다. 개를 왜 아파트에서 키우냐며 데려오면 주차장에 묶어둘 것이라던 성화도 리키의 애교 앞에 어느덧 팔뚝을 베개로 내어주는 애정으로 변모했다. 친정엄마는 새벽부터 리키와 매일 산책을 하며 동네 개 친구를 사귀기도 했다. 한국에 온 김에 리키 검진을 받게 하러 배 부른 채로 함께 동물병원을 다니며 작은 종양을 발견해 제거 수술을 했고, 종양이 재발해 다시 한 번 수술을 받아야 했다. 나이도 꽤 들긴 했지만 긴 비행과 수술 때문이었는지 리키는 생기를 잃고 어울리지 않게 얌전해졌다.


아침과 저녁, 하루 두 번 산책을 다니는 리키와 신생아 돌보기를 병행하는 건 혼자선 불가능했다. 친정엄마는 몸조리하는 나와 신생아, 리키 셋을 돌봐야 했다. 산책 외엔 집에서 크게 움직이지 않는 리키가 복병이 된 건 현관문 소리나 외부 소리에 짖어 잠든 아기가 깨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람을 잘 따르고 애교가 많은 리키여도 손주의 단잠을 깨우는 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용납되지 않았다. 다행히 털이 잘 빠지지 않는 푸들이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털을 모두 밀고 아기 근처에는 얼씬거릴 수도 없었을 것이다. 움직이지도 않는데 울어만 대는 아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듯하다. 아기를 안았던 내 품이 비면 리키는 얼른 달려와 내게 몸을 기댔지만 아기를 안고 있으면 다가오지 않았다. 침대에 아기와 나, 개 셋이 누워서 있어도 내 몸을 기준으로 영역을 구분 짓던 리키였다.

아기가 뒤집고 기어 다니며 바닥생활을 하게 되자 리키의 공간은 더욱 좁아졌다. 거실에 놓았던 밥그릇과 물그릇은 방구석으로 밀려났고, 리키의 방석과 장난감 모두 아기의 생활공간에서 멀리 치워졌다. 리키에게 미안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10년 넘게 산 네가 1년도 안 된 아기 좀 이해해 줘,라고 말하며 한 번 더 쓰다듬어 주고 눈맞춤할 수밖에. 친정엄마는 아기를 안고 와서 가만히 있는 리키의 털을 만지게 하면서 둘의 반응을 궁금해했다. 나 역시 둘이 친해져 다시 유럽으로 돌아가 넓은 공원에서 개와 애가 함께 뛰노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아기가 움직임이 많아지고 기어다니기 시작하면서 리키가 더더욱 싫어하는 것 같았지만.


개는 평생 산책시켜야 하고, 매일 똥을 주워줘야 할 것이고 보호자 없이는 사료나 물을 찾아먹을 수도 없다. 그에 반해 아이는 돌이 지나자 '물'이라고 말하며 물통을 찾아 고개를 젖혀 물을 마시고 '맘마'하고 밥도 찾을 줄 알고 기저귀는 길어봤자 3년을 찬 후 대소변을 가리게 될 줄 알 것이다. 점점 표현도 늘고 자아라는 게 생기며 자기주장을 펼치겠지. 개가 말없이 평생을 보호자 곁에서 머무는 반면 애는 점점 보호자로부터 독립해가는 존재다. 애와 개가 인생과 견생의 한 순간을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은 짧은 순간으로 만족해야 했다. 리키는 종양이 재발해 크기가 커졌고 온몸에 전이돼 수의사로부터 비행기를 탈 수 없을 거란 진단을 받았다. 자유자재로 기어다니고 조금씩 서서 걸으려는 아이는 아파서 누워 있는 리키를 만만한 털뭉치쯤으로 여기는지 함부로 대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가슴 아팠다. 견생 말년은 아이 때문에 꽤 괴로웠을 것이다.


리키는 아파하다가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나는 많이 울었다. 리키를 그렇게 보내고 펫로스 증후군이 올 새도 없이 아이를 키우며 바쁜 일상을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를 안고 "자장자장 우리 아기 멍멍 리키 짖지 마라" 하고 개사한 자장가를 무심코 부르다 눈물을 줄줄 흘렸다. 리키의 빈자리는 이따금씩 가슴을 쳤다. 아이는 공원에서 놀고 있는 개를 보면 고함지르며 따라가며 좋아한다. 책에 나오는 강아지 그림을 가리키며 앙앙 하며 소리 내는 아이 마음속엔 리키가 있음을 확신한다. 아이가 좀더 자라면 리키와 함께 찍은 귀한 투샷 사진을 보여주며 기억하게 할 것이다. 가끔 슬프고 이따금 리키가 사무치게 보고 싶다가도 아이가 있어 슬픔과 아픔을 억누르고 때론 리키를 잊고 지내기도 한다. 절대라는 말을 경계하는 편이지만, 개와 애를 함께 키우는 일은 내 인생에 다신 없을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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