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나 만나지 않는다
외국에서 살다 보면 한국인 커뮤니티가 아주 좁다는 걸 체감하게 된다. 처음 이곳에 와서 사귀게 된 친구가 내게 해준 말이 있다. "언니, 한인 사회에서 내 이름이 오르내리지 않는 게 최고야."
해외 생활 초반 아이라는 입장권이 없었기에 한인 사회 중에도 가장 진입 장벽이 낮은 엄마들 모임에 끼지 못했다. 크게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딱히 한인 모임에 나가서 불특정 소수를 만나기도 피곤했다. 무작위로 또래를 만나는 고등학생 시절을 지나 대학생활, 직장생활 동안 내 취향대로 만나오던 사람들과 결이 다른 사람을 알아가고 나를 알게 하는 일이 소모되는 정신력, 체력에 비해 큰 성과가 없었다. 까놓고 말해 알게 된 몇몇이 너무 별로였다.
아이가 생긴 지금도 나는 엄마 모임에 나가지 않는다. 내 아이 또래를 키우는 사람들이 있고, 모여서 육아 정보도 나누며 외국 생활의 외로움을 달래려는 모임의 취지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나란 사람은 그리 둥글지 못해서, 아니 솔직히 말해 나는 까다롭고 어려운 사람이라 그리 어울리고 싶지 않다. 비단 외국에서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맘카페나 엄마들 모임은 끈끈한 걸로 알고 있다. 임신 기간에 지역 맘카페 가입하려다 인증절차가 귀찮아 포기한 1인으로 할 말은 아니지만, 그 끈끈함이 부담스럽고 싫다.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알게 되는 시시콜콜한 집안 상황과 더불어 저마다 다른 아이의 발달 수준을 비교하게 된다. 남에게 큰 관심이 없는 나로썬 그것은 알기 싫다 유의 주제들, 내 아이가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상대의 기분을 배려하는 상황이 피곤해졌다. 나누는 육아 정보라고 해봤자 거기서 거기인 고만고만한 사람들을 만날 수록 애써 지양하는 생각들, '저 아인 이렇게 하던데 왜 내 애는 못하지' 하는 비교와 나는 그렇게까진 못해주는데 모성애가 부족한 엄마인 건가 하는 자책까지 이어졌다.
친구라는 개념이 없는 나이인 아이는 또래를 만나도 같이 놀지 않았고, 장난감 뺏기나 행여 밀치기라도 하면 미안해해야 하고 "I'm sorry" 로 끝나는 익명의 아이와 달리 아는 집 아이는 혹시 상처가 나지 않았는지 뒷수습도 해야 한다. 애는 그래도 되지만 어른인 부모는 그러면 안 되니까. 그리하여 나는 아이가 친구를 아는 나이가 된다고 해도 친구를 만들어주는 노력을 하진 않으려 한다. 나와 어울려 놀았던 친구, 지금까지 친한 친구들은 부모가 맺어준 아이들이 아니라 학교에서, 사회에서 내 취향에 맞게 사귄 사람들이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말을 좌우명처럼 되새긴다. 엄마들 간에도 그 거리를 유지하며 살고 싶다. 심지어 아이에게도 그 거리감을 조성하고 있다. 나는 나, 너는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