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아일기

오해를 즐기기로 함

by ama

주재원 남편을 따라 유럽에 사는 나는 지인들로부터 종종 부러움을 받곤 한다. 저마다 관점에 따라 부러워하는 포인트가 다른데, 아이 없이 둘이 살 때는 자유로움을, 아이가 생기고는 유럽에서의 육아를, 각 집안의 며느리인 엄마들에겐 시가와의 왕래가 잦지 않다는 것, 쉬는 날마다 유럽 곳곳을 여행 다니는 것 등이다.

물론 결혼 생각이 없던 나를 꼬신(?) 전 남친 현 남편의 주재원 발령은 부러워할 만하다는 걸 인정한다. 월세를 지원해주고 차와 주유비가 지급되며 아이 교육비까지 받을 수 있다. 한국에 비해 의료 시스템이 별로이긴 해도 어쨌든 회사에서 보험으로 병원비를 커버해준다. 남편과 나 모두 우리가 젊을 때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었고 이곳에서 사는 동안 아이가 생기고 어린 시절을 지낼 수 있게 하는 것에 만족한다.

정말 감사하게도 별 이벤트 없이 건강히 태어난 아이는 이곳에서 병원 한 번 가지 않고 튼튼히 자라고 있다. 아이가 발달 단계에 맞게 제 시기에 커주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아이를 키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아이는 걱정거리 하나 만들지 않고 약간 이른 시기에 발달을 해내며 잘 커주고 있다. 난임을 겪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연 임신과 건강한 아이의 육아는 부러움 그 자체다.


약간 시니컬한 성격이라서 그럴까, 처음엔 누군가 나를 부러워하는 게 낯부끄럽고 그렇지 않은 면을 내보이고 싶었다. 누군가의 칭찬에 ‘아유 아니에요’ 하는 말이 겸손으로 여겨지는 것처럼.

투정을 좀 부려보자면, 남의 돈 쉽게 벌 순 없는지라 많은 혜택이 주어지는 만큼 업무가 과중한 남편은 항상 일하느라 바쁘다. 해외 땅에 있어도 한국 회사이기에 야근과 회식이 많아 우리는 거의 주말 부부에 가까운 일상을 보낸다. 고로 주중에 아이를 케어하는 일은 오롯이 엄마의 몫이다. 아이를 데이케어에 보내면서 훨씬 수월해졌지만 아이가 아프거나 봄여름가을겨울 방학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유럽에서 선생님은 정말 할 만한 듯하다. 방학이 정말 많다.) 내 몸이 아파도 울면서 아이를 봐야 하고, 아이 픽업 시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기관에 데리러 갈 사람은 나뿐이다. 가끔 찬스를 쓸 친정도 없고 아이를 부탁할 만큼 가까운 친구도 없다. 그리고 직장을 관두고 남편을 따라온 나는 커리어가 끊겼다. 영어가 아닌 현지 언어를 전혀 못하기에 이곳에서 접시를 닦거나 청소하는 일도 불가능하다. 말을 알아 들어야 허드렛일이라도 할 것이 아닌가! 출산과 육아를 겪은 여성은 호르몬과 뇌의 작용으로 사회성이 떨어진다는데,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니 사회적 자아는 사라지는 느낌이다. 가사노동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건 아니지만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일 말고 좀더 고차원적인 생각과 활동, 그리고 돈을 벌고 싶다.


대학 시절 동기들 사이에서 내가 부잣집 딸이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지방에서 상경해 기숙사에 살지도 않고 집을 구해 혼자 자취를 하며 매일매일 다른 옷을 입고 다녀서 그랬다고 한다. 기숙사는 지원했다가 떨어졌고 사촌언니들로부터 물려받은 옷과 동대문에서 싸게 산 옷을 잘 돌려 입은 건데도 말이다. 부모님이 대학교 학비와 월세를 지원해주실 정도이지 결코 부자는 아니었지만 나는 그 소문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스무 살에 처음 혼자 살게 된 서울 땅에서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는 것보단 차라리 오해 속에서 사는 편이 안전했다. 그렇다고 내가 부자 행세를 하며 호의호식한 것도 아니고 과외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고 남부럽지 않게 대학생활을 즐겼다. 엄마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나를 최고로 키우진 못해도 최선을 다했다는 그 사랑이 내 자산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난 부잣집 딸이 맞았다.

한국에선 살기 어려울 리버뷰 동네

결혼식 날, 아버지의 축사 중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너희들의 선택이 지금 이 자리를 만들었다.” 그 말처럼 이 모든 건 내 선택의 결과다. 물론 인생의 순풍을 만나 변수 없이 내 선택대로 살 수 있는 건 축복이겠지만. 지금 생활이 정말 못 견디겠다면 다른 선택지도 있다. 유럽생활이 힘에 부친다면 한국에 돌아갈 수도 있고 아니면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해 이곳에 모시고 와서 함께 살 수도 있다. 워킹맘들이 갖는 아이에 대한 죄책감과 부채감 없이 온전히 아이의 어린 시절에 집중할 수 있는 건 큰 장점이다. 무엇보다 아이는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유럽 소도시로 훌쩍 가족여행을 떠나 즐길 수 있다. 힘든 점과 좋은 점을 저울질해서 더 나은 쪽으로 기울여 살고 있는 건 내 선택이다. 그럼에도 가끔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나, 하는 회의감이 찾아오면 우리 여행 사진과 내가 쓴 글, 내가 한 운동을 되짚어본다. 누가 가져가거나 쉬이 사라지지 않을 그런 단단한 것들로 채워진 나는 타인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다. 누가 날 좀 오해하면 어때. 게다가 나쁜 쪽도 아니고 날 부러워한다는데. 나를 향한 칭찬에 ‘Thank you!’ 하고 답할 여유가 생긴 것처럼 부풀려진 행복에 관한 오해도 즐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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