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는 F가 확실합니다
“엄마, 호주(애착인형 이름)가 없어요!”
아이는 데이케어에 애착인형을 들고 다닌다. 호주에 사는 내 친구가 아이에게 선물한 인형이라 그냥 이름도 ‘호주’다. 아이는 호주를 가장 아끼며 낮잠 시간에도 안고 자고 때론 선생님이 활동시간에 특별 그룹 구성원으로 끼워주기도 한단다.
하원시간에는 라커에 넣어두는데 이날은 선생님이나 나나 아이 모두 인형을 들고 오는 걸 깜빡했다.
“어쩔 수 없지, 내일 가서 만나자. 그리고 꼭 집에 데려오자.”
솔직히 나는 저 말로 끝이다. 해결책 제시.
그런데 아이는 잠들기 전까지 계속 인형을 찾아댄다.
“엄마, 호주 보고 싶은데!”
“그래, 내일 가서 가져오자니까”
저런 유의 대화를 열두 번쯤하고 난 후, 잠자리에 누워 있는데 아이가 또 호주를 찾았다.
안 그래도 바로 잠에 들지 않아 짜증이 나는데 오후 내내 들은 인형 타령에 폭발했다.
“엄마, **이는 호주 안고 자고 싶어요”
“아 어쩌라고!!! 그렇게 호주가 소중하면 네가 잘 챙겼어야지”
언성을 높여 있는 대로 신경질을 낸 후 잠시 정적, 아이는 말했다.
“아니… 어쩌라는 게 아니라 **이는 호주가 없어서 슬프다구요.”
아..그렇지. 그래. 인형이 없어서 네가 허전하구나, 호주가 없어서 **이 속상하겠구나, 이렇게 말해주면 되는데 저런 모범 답안이 뒤늦게 머리를 친다.
이 에피소드를 친구들에게 말하니 다들 깔깔 웃는다.
“참 너답다. 애한테 어쩌라고 랰ㅋㅋㅋ”
사실 나는 자타공인 쌉T 성향이다. ‘우울해서 빵 샀어’ 테스트에서 ‘우울한데 왜 빵을 사?’ 하고 답했던 나.
그다지 궁금하지도 않아 아이에게 묻지도 않았는데, 남편이 우울해서 빵 샀다고 아이에게 말했더니 아이는 ‘아빠 우울해? **이 내일도 빵 사줄게’라고 답했단다.
아이가 감기에 걸려 기침을 한다고 말했을 때,
F성향의 엄마는 기침을 해서 힘들겠구나 하고 반응하고, T성향의 엄마는 기침약 줄게 하고 말한단다.
아니 감기에 걸려 기침을 하니까 당연히 약을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 어떻게 기침해서 힘들지?라는 말이 떠오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긴 애한테 ‘어쩌라고’ 샤우팅 하는 나로선 이를 수 없는 경지다.
사실 아이를 품고 기르면서 고민한 지점이 바로 이것이다. 어찌 보면 약간 냉정하기까지 한 나의 성격에 아이가 상처를 받으면 어떡하지?
남편 역시 현실적이고 해결 중심의 사고를 하긴 하지만 다정한 면이 있다. 반면 나는 공상과 상상을 질색하고 감정 중심적인 사람을 조금 힘들어한다.
친구가 연애 상담을 할 때 이러저러한 해결 방법을 제시해줬는데도 계속 징징거리면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않는 정도랄까.
생각의 속도가 빠르고 논리를 중시해 말싸움 하나는 끝내주는데, 이런 면이 육아와는 결이 맞지 않는다.
아이에게는 같은 말을 계속해야 하고, 때론 감정에도 공감해줘야 하니까.
이제 39개월에 접어든 아이는 감정이 풍부해지고 표현도 섬세해지는지 ‘엄마 나 삐졌어!’ ‘그렇게 하면 **이 슬프잖아!’ 하는 표현을 종종 한다.
낱말 카드 정리하고 밥 먹자는 나의 말에 정리 안 하고 먹을 거라는 고집에 그러면 밥을 줄 수 없다고 하니 아이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
“그럼 **이 엄마 사랑 못 해!”
타격 1도 없는 말에 뭐 그래라 하고 나는 화장실에 갔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렇게 말하게 두면 안 될 듯했다. 그렇게 이어진 나의 훈육 메시지.
말이라는 건 한번 하면 되돌릴 수 없는 거야. **이 정말 엄마 사랑 못 해?
있었던 일을 나란히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하던 밤, 내가 아이가 그날 잘못한 일을 들춰내며 짚어내자 아이가 대답했다.
“그래서 뭐?”
내가 종종 하는 말이고 분명 별 뜻 없이 따라한 것 같았지만 순간 화가 났다.
너 지금 예의 없게 엄마한테 그렇게 말하는 거야? 그 말이 맥락에 맞는 말이야? 어쩌구 저쩌구 묵묵히 듣고 있던 세 살 아이가 말했다.
“엄마 쪽으로 가서 내가 안아줄게요.”
논리적으로 따박따박 받아치는, 그냥 순간의 짜증을 쏟아내는 나를 녹여버리는 말이었다.
내게 와서 자그마한 손으로 토닥이는 아이를 안으며 생각했다.. 그래, 네가 나보다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