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눈을 돌리지 말라는 말
비행 경력 몇 년 차였을까.
그날 나는 처음 가보는 아프리카의 한 도시로 향하는 비행에 배정됐다.
회사에서는 같은 나라의 다른 도시가 워낙 악명 높아서
“여긴 좀 다를 거야”라는 말이 따라붙던 곳.
게다가 호텔도 힐튼이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조금은 안심한 채로 출근했다.
브리핑룸에 들어갔다.
25년 차 사무장님이 노래를 크게 틀어두고
벽에 귀여운 그림들을 하나둘 붙이고 계셨다.
'…되게 독특한 분이시네.'
그렇게 생각한 것도 잠시,
그날의 브리핑은 내가 알던 방식과 완전히 달랐다.
"이 상황이면, 너는 어떤 생각이 들어?"
정답을 알려주는 브리핑이 아니라
계속 질문을 던지는, 토론 같은 브리핑이었다.
그리고 사무장님은 딱 두 가지만을 유난히 강조하셨다.
"승무원은 승객을 가르치면 안 된다."
"그리고 비행 중에, 눈을 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단 한 번도."
나는 브리핑 노트에
'눈 돌리기 절대 금지'
밑줄, 동그라미, 별표까지 쳐가며 적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문장이 그날 내 인내심의 기준점이 될 줄은.
버스를 타고 비행기로 이동하는 중,
사무장님은 또 한 번 우리를 붙잡았다.
“손님들이 조금 편하게 사람을 부를 수 있어요.
강아지 부르듯이 ‘츳츳’ 하기도 하고요.
그건 그분들의 문화니까, 오펜시브하게 받아들이지 말아요.”
‘…어떤 비행이길래 이렇게 설명이 많지?’
그때부터 조금 불길했다.
보딩이 시작됐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됐다.
설명에는 이유가 있다는 걸.
한국인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꽤 강한 체취가 기내를 채우기 시작했다.
이건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처음 겪는 공기였다.
손님들은 정말 자유로웠다.
너무 자유로워서,
사람을 부를 때도 거리낌이 없었다.
“츳츳.”
“헤이.”
“이거.”
“지금.”
원래 나는 꽤 친절한 편인데,
내 상황은 아무도 고려하지 않은 채
모든 요구가 동시에 쏟아지니
감정이 빠르게 마모되기 시작했다.
이륙 전, 점프시트에 앉았다.
비상구 좌석에 앉은 몇몇 손님이
불편할 정도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는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마치 매직아이 하듯
왼쪽 눈은 왼쪽, 오른쪽 눈은 오른쪽을 보고 있었다.
사무장님 말씀이 머릿속에서 울렸다.
눈 돌리지 말기(밑줄, 동그라미, 별표)
이륙 후, 나는 거의 뛰다시피 부사무장에게 갔다.
“저… 이 비행,
마스크 없이는 못 하겠습니다.”
냄새 때문만은 아니었다.
기침하는 승객이 너무 많았고,
이 좁은 공간에서 공기를 나눈다는 게
갑자기 너무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서비스는… 솔직히 말해
내 인내심의 한계를 테스트하는 시간이었다.
손목을 붙잡고 놓지 않는 사람.
밥을 먹고 있는데
“끊기지 않고 계속 먹고 싶으니
당장 다음 기내식을 대기시켜”라는 사람.
내 진주 귀걸이가 진짜냐며
직접 보고 싶다고 빼서 증명하라는 사람.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느꼈다.
'아, 지금 나는 이들의 시녀다.'
웃음은 사라졌고,
표정은 굳어버렸다.
그때 한 남자가 말했다.
“웃어. 넌 승무원인데 왜 이렇게 웃지를 않아?
어이, 맥주나 더 가져와.”
그 말에,
내 이성이 잠깐 로그아웃됐다.
이 비행에서
눈을 돌리지 말라던 사무장님이
3만 번은 넘게
눈알을 굴리시는 모습을 나는 모르는체 했다 .
그리고 나는 그날 깨달았다.
비행은
항상 같은 하늘을 나는 일이 아니라는 걸.
다음 화 예고
“와이파이”를 “와이프 유?”로 들었던 순간
캐나다 여권을 들고 탈출을 요청한 부부
힐튼 호텔, 노란 물, 그리고 잠기지 않은 방문
그리고… 이 비행이 내 몸에 남긴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