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웃어.”
그 말을 들은 뒤에도 비행은 계속됐다.
나는 다시 통로를 걸었다.
카트를 밀고 컵을 치우고, 다음 요청을 처리했다.
특별히 달라진 건 없었다. 다만 내가 조금 조용해졌을 뿐이었다.
서비스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물을 드리면 다른 것이 따라왔고,
한 사람의 요청이 끝나기 전에 또 다른 호출이 이어졌다.
“이거.”
“지금.”
“여기.”
나는 한 번에 한 사람씩 상대하고 있었지만,
손님들 모두가 동시에 나를 부르고 있었다.
잠시 후 한 남자가 나를 급하게 불렀다.
“캔 아이 와이프 유? 와이프 유?”
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 되물었다.
‘나를 와이프 삼는다고..? 하 씨’
“Excuse me?”
그는 조금 더 또박또박 말했다.
“와. 이. 파. 이?”
잠시 뒤 나는 알게 됐다.
그가 원한 것은 와이파이 비밀번호였다.
나는 안내를 해 주었고,
그는 고개를 숙여 고맙다고 말했다.
그날 비행에서 내가 유일하게 미안함을 느낀 순간이었다.
조금 뒤, 한 부부가 여권을 들고 나를 불렀다.
“우리는 캐나다 사람이에요.
자리 좀 바꿔줄 수 있을까요.”
그들의 표정은 여행을 부탁하는 얼굴이라기보다
견디기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얼굴에 가까웠다.
나는 좌석 상황을 확인했지만 바꿔줄 수 있는 자리는 없었다.
규정을 설명하자 그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갤리 쪽에서 잠깐 숨을 고르고 있을 때
한 승객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었고,
나는 한국에서 왔다고 답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 다른 질문을 이어갔다.
다큐멘터리에서 본 이야기를 꺼내며 이해되지 않는 점이 많다고 말했다.
“한국은 이기적인 나라야, 왜 불쌍한 북한을 돕지 않아?”
“북한은 아름다운 나라인데.. “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항공기 안에 있었고
그는 승객이었다.
우리 회사 규정상 항공기 안에서는 정치나 역사에 대한 견해를 밝힐 수 없다.
대화를 정리하려 했지만 질문은 이어졌다.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이런 일을 왜 하냐는 말까지 따라왔다.
내가 물었다.
”너는 직업이 뭐야?”
그가 대답했다.
“포커게임 해”
직업에 귀천은 없다지만, 그 순간 있다고 느꼈다.
이 사람을 갤리(승무원들의 일하는 공간)에서 내쫓기 위해
나는 인터폰으로 기장에게 연락해
안전벨트 사인을 요청했다.
벨트 사인이 켜지자
나는 그에게 자리로 돌아가 달라고 말했다.
그는 아쉬운 표정으로 돌아갔다.
창밖은 여전히 어두웠고
기내 시계는 생각보다 천천히 움직였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느꼈다.
하늘 위에서
시간이 흐르지 않는 순간도 있다.
아직 도착까지는 멀었다.
다음 화 예고
착륙 후의 이야기
노란 물의 정체
아침에 벌컥 열린 방문
그리고 퇴근 이후 찾아온 공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