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가장 빨리 어른으로 만든 비행 5️⃣

5편, 문 너머의 발소리

by 비트윈랜딩

노크 소리.

문 열리는 소리.


그리고 들렸다.


“하우~~ 스 키~핑!!”


나는 눈을 떴다.


그 소리는 옆방이 아니라
내 방문이었다.




복도는 ㄱ자 구조였다.
문을 열어도 방 안이 바로 보이지 않는 형태.
그래서 나는 그들을 보지 못했고,
그들도 나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대신,


잠깐의 정적.


그리고 낮게 속삭이는 소리.


“Someone is in here.”


그다음엔 뛰는 소리였다.


진짜로, run 하는 소리.


복도를 급하게 달려가는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나는 침낭 안에서 그대로 굳어 있었다.


만약 내가 조금 더 깊이 잤다면.
만약 그들이 안쪽까지 들어왔다면.


그 생각이 천천히 올라왔다.


나는 항상 호텔에 도착하면
방문 고리를 먼저 걸었다.
그게 습관이었다.


그날은 못 했다.


너무 피곤해서
기절하듯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방 안의 냄새, 노란 물, 작동하지 않는 에어컨.
신경 쓸 게 너무 많았고
문고리까지는 가지 못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었다.




리셉션에 전화를 걸어
방금 들어온 사람들이 직원이 맞는지 확인했다.
맞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들도 놀랐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방 안 어딘가에서
사람 인기척이 느껴졌을 테니까.


하지만 그들의 당황과는 다르게
나는 그날 밤
진짜 공포를 느꼈다.


문 하나가
얼마나 큰 경계선인지
그날 처음 알았다.




다음 날 우리는 또 다른 도시로 향했다.


사람들은 승무원이 한 도시에 도착하면
그곳에서 쉬었다가 베이스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은 맞다.


하지만 가끔,
도착한 나라 안에서 다른 도시를 한 번 더 찍고 오는 일정이 있다.
우리는 그걸 셔틀 비행이라고 부른다.


오늘은 그 셔틀 턴을 하고
다시 이 호텔로 돌아와 쉬는 스케줄이었다.




잠을 찝찝하게 잔 채
다시 유니폼을 입었다.


거울 속 얼굴은 어색했다.
충혈된 눈, 칙칙한 피부.
표정은 이미 지쳐 있었다.


호텔에서 다시 브리핑이 열렸다.
부사무장은 노트를 들고
호텔에서 문제 있었던 부분을 적기 시작했다.


승무원들은 저마다 불만을 쏟아냈다.
그 시간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우리는
어제 타고 왔던 그 비행기로 다시 향했다.


짧은 턴이었다.
하지만 몸은 짧게 느끼지 않았다.


손님들이 하나둘씩 탑승했다.


어제와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좌석벨트를 매는 법을 묻는 승객,
화장실 문을 잠그는 법을 모르는 승객,
변기 커버를 보고 “이게 뭐냐”라고 묻는 승객,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승객들.


처음 비행기를 타본 듯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면 안 되는데
지친 내 감정이 먼저 반응했다.


‘오늘도 쉽지 않겠구나.’




그때 부사무장이 내 어깨를 살짝 잡았다.


비밀 이야기라도 하듯 낮은 목소리였다.


“여기 탄 어린 여자아이들 보이지?
사우디 쪽으로 내니(Nanny)로 일하러 가는 거래.
너무 어리고… 너무 말랐어.”


순간, 마음이 멈췄다.


방금까지 품고 있던 짜증이
작아졌다.


내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이 아이들에게는 당연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승무원이라는 직업은 그렇다.


어느 날은 세상에서 가장 잘 사는 사람들을 태우고,
어느 날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태운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반복되는 질문과 설명 속에서
나는 종종 그 사실을 잊는다.


그날, 부사무장의 한마디가
잠깐이나마 나를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나는 다시 같은 설명을 반복했다.


천천히.
또박또박.
감정은 빼고.




브리핑 때 들었던 사무장의 말이 떠올랐다.


"눈을 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단 한 번도."


눈을 돌리지 않는다는 건
강해지는 게 아니라
지친 상태에서도 태도를 잃지 않는 것.


그게 승무원의 덕목이라는 걸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다음 화 예고

착륙 후 들어온 클리닝 팀.
“뛰지 말아 주세요.”라고 했다가
3초 만에
마음을 바꾼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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