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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희 Jan 21. 2021

마약과의 전쟁, 한국은 과연?

넷플릭스 오리지널 '크랙의 시대: 코카인에 물들다'를 보고 쓰다

*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한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크랙의 시대: 코카인에 물들다'


한국은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니다. 한때 미국과 남미 국가로부터 들려오는 마약 관련 뉴스를 보고 사람들은 '그래도 우리나라는 마약이 없어서 참 다행이다'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경찰이 마약 단속을 통해 공급자와 구매자를 잡았다는 소식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과거 재벌가 사람들과 연예인, 운동선수에만 국한되던 마약 사범이 이제는 일반인에게도 확산되기 시작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에 검거된 마약 사범은 지난 2018년 7,905명에서 2019년 1만 411명, 2020년 1만 2,209명으로 갈수록 늘고 있다. 2년 동안 54.4%나 급증했다. 경찰 등 정부 기관이 지난해 10월 23일부터 12월 31일까지 2개월 동안 합동 단속으로 검거한 마약 사범은 2,460명에 달했다. 전년 같은 기간의 1,448명과 비교하면 82.3% 늘었다. 과거와 달리 텔레그램 같은 메신저와 해외 SNS, 다크 웹 등의 경로를 통해 편리하게 마약을 주문하고 수령할 수 있는 유통 환경이 조성되었고,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거래가 늘어남에 따라 경찰의 추적 역시 어려워졌기 때문에 마약은 과거보다 더 은밀하고도 간편하게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 이러한 통계의 이유였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1&aid=0003857377



오늘 소개할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크랙의 시대: 코카인에 물들다'는 7, 80년대 미국 사회에 마약이 흘러들어와서 어떤 문제를 일으켰는지, 또 이를 이용해서 누가 어떤 부당한 이익을 얻었는지 조명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보다 몇십 년 먼저 마약으로 인한 각종 사회적 문제를 겪은 나라다. 당시 중앙아메리카 국가의 내전과 대형 마약 카르텔의 성장, 그리고 미국 정부의 안일한 대처는 미국을 세계 최고의 마약 소비처로 부상하게 만들었다. 이 영상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 번째는 마약이 미국 사회 속의 가난한 지역을 어떻게 망쳤는지, 두 번째는 미국 정부가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어떻게 활용했는지,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마약 퇴치 과정 속에서 발생한 인종 차별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 지다.




일반적인 분말 형식의 코카인과 이를 고체로 만들어 복용하기 편리하게 만든 크랙(Crack)


1. 코카인과 크랙은 미국 사회를 어떻게 망쳤을까?

사실 코카인은 너무 비싸서 일반 사람들은 살 수도 없는 마약이었고, 그래서 처음에는 유명 운동선수나 할리우드의 셀러브리티, 혹은 월 스트리트에서 일하는 화이트 칼라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일에 집중하기 위해 사용하는 약물일 뿐이었다. 게다가 영화 '스카페이스'의 주인공들이 100달러 지폐로 코카인을 흡입하는 것이 유행하게 되면서 코카인은 '부자들만 하는 약물'이라는 이미지가 박히게 되었다. 그러나 염산 코카인 결정에서 산 이온을 제거하고, 여기에 위화제를 섞어서 코카인의 각성 효과는 유지하면서도 가격은 낮춘 '크랙'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한다. 심지어 증기를 흡입하는 식의 크랙은 가루 코카인보다도 효과가 금방 나타났고, 또 고체라는 특징 덕분에 유통이 편리했기에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 수 있었다.



게다가 마피아의 영향을 받지 않고도 누구나 크랙을 팔 수 있다는 점은 이 새로운 약물의 확산을 부추기는 일등 공신이었다. 사실 크랙 이전의 마약 판매는 어느 동네를 장악한 마피아의 몫이었고, 그래서 그들을 잘 아는 누군가의 소개를 받아야만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크랙은 마피아 같은 중간자가 존재하지 않아서 마치 동네 구멍가게처럼 코카인을 구매하여 크랙을 제조하고, 이를 팔 수 있었다. 게다가 크랙이 등장했던 시기는 일자리가 부족했기에 크랙 소매상의 숫자는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일반적인 일자리보다 같은 시간에 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고, 이를 원하는 사람들은 넘쳐날 뿐만 아니라, 경찰마저 마약의 영향력을 무시하거나 마약상들의 뒷돈을 받고 눈감아주는 상황이라면 누가 이를 거절할 수 있을까. 결국 가난했던 사람들은 마약을 팔아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고, 학교에 나가기보다는 마약상이 되는 길을 택하는 아이들은 점점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구역 경쟁이 점차 심화되면서 유혈 사태까지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약 소매상들은 자신의 구역을 지키기 위해 총기를 구매해서 상대를 위협했고, 그 과정에서 다른 마약상뿐만 아니라 무고한 시민까지 목숨을 잃었다. 다큐멘터리는 마약이 흑인 사회가 처한 문제와도 연관되어있다고 주장한다. 인종 차별과 일자리 문제로 인해 상대적으로 가난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흑인 사회의 젊은이들이 마약상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들은 당장 어제까지만 해도 이야기를 나눴던 친구나 가족들을 잃었다. 또한 마약상들도 어느 순간부터 폭력에 익숙해져서 감정적으로 무뎌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마약 소비자 역시 강력한 크랙의 환각으로 인해 건강을 잃었고, 심지어 크랙을 사려고 몸까지 파는 여성들까지 등장하면서 사태는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이란-콘트라 스캔들의 핵심 인물이었던 올리버 노스와 레이건 대통령
2. 마약 문제와 정치의 불편한 동거

레이건 정부는 출범 당시 마약뿐만 아니라 중앙아메리카의 내전에도 관여하고 있었다. 그래서 니카라과의 사회주의 정권인 산디니스타 정부가 들어서자 미국은 콘트라 반군 지원을 결정했으며, 이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미국은 이라크와 전쟁 중이었던 이란에게 미사일을 비롯한 무기를 팔고 인질과 판매대금을 받았다. 또한, 이 과정에 관여한 CIA는 콘트라 반군이 현지의 코카인 재배 농가의 물건을 비자금 조성을 위해 자국으로 밀수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정부가 일종의 마약상이 되어 국민에게 마약을 판 것이었다. 이 때문에 다큐멘터리의 인터뷰이는 낸시 레이건 여사가 진행하던 마약 퇴치 캠페인 'JUST SAY NO'를 사람들은 위선적이라고 평가했고, 실제로 이 사실이 폭로되자 레이건 정부의 도덕성은 심각한 타격을 받고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다.



이란과 미국, 니카라과의 삼각관계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린 인물은 NSC에서 근무하던 미군 장교 올리버 노스였다. 미국 정부의 지원금을 콘트라 반군에게 보낼 수 없게 했던 볼랜드 법안은, 그가 이런 불법적인 계획을 수립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나중에 모든 것이 언론에 의해 발각되어 레이건 대통령은 탄핵당할 뻔하고 올리버 노스를 포함한 관련 책임자들은 모두 처벌받았지만, 정작 레이건 정부의 부통령이었던 부시가 다음 대통령이 되면서 그들은 모두 사면되었다. 이란-콘트라 사건은 잘못된 대외적 개입과 그 영향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다. 레이건 정부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민주주의의 대표로 자처하던 미국의 정치적 도덕성은 극심하게 훼손되었으며, 미국 사회의 저소득층은 마약으로 인해 갱단과 조직범죄로 고통받고 있고, 외교 면에서는 적대적인 국가만 늘어나게 한 결과를 초래했다.




마약 퇴치 작전을 계기로 미국 교도소 내 재소자 인원은 크게 증가했다


3. 마약 퇴치 작전과 인종 차별 문제


크랙으로 인한 NBA 농구 선수 렌 바이어스와 미식축구 선수 돈 로저스의 사망은 언론이 크랙에 이전보다 더 많은 관심을 쏟게 된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언론의 과도한 취재 열은 곧 잘못된 정보와 통계를 바탕으로 한 보도로 이어졌고, 이는 '마약을 근절하자'라는 본래의 목적에 맞지 않게 흑인에 대한 편견만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특히 영화나 드라마, 음악 콘텐츠 역시 마약 중독에 빠진 흑인 여성이라는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차용함으로써 마약을 하는 것이 가장 악질적인 범죄라는 인식이 심어졌고, 이 때문에 정작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교도소로 수감되는 일이 일어나게 되었다. 물론 나라에서 불법으로 규정한 약물을 판매하거나 소지한 사람은 법에 따라 적절한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마약을 한 사람이 다시 그것에 손대지 않도록 교육하고 치료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당시 미국 사회는 과도한 처벌에만 관심이 있었고 정작 그들을 치료하는 것에는 무관심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흑인 사회는 마약을 뿌리 뽑기 위한 캠페인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언론은 대중들의 관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계속 마약의 유해성을 주제로 보도하고 있었다. 어떤 정치인이 이러한 시류에 편승하지 않을까? 유권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한 의회의 상, 하원 의원들은 너도 나도 마약 퇴치를 위한 법안 제정에 착수했고, 결국 단 4주 만에 레이건 대통령의 서명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본래 목표를 잊어버린 이 법안은 크랙 1g을 소지하는 것과 코카인 100g을 가지고 있는 것에 같은 형량을 설정하거나, 강력한 최소 형량을 정함으로써 마약상은 제대로 잡지도 못하고 오히려 교도소 포화 상태만 초래했다. 게다가 크랙 사용자의 2/3이 백인임에도 불구하고 1988년 마약 남용 방지법이 통과되고 1994년 클린턴의 범죄 법안이 통과된 사이엔 LA에서 단 한 명의 백인도 크랙 관련 법안으로 유죄 판결을 받지 않았다. 반면 같은 시기 흑인 재소자는 16,600명에서 134,000명으로 약 707% 증가했기에, 인터뷰이는 이것이 검찰의 노골적인 인종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국내 마약 사범의 숫자는 점점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2019년에 발생했던 버닝썬 사건은 단순 폭행에서 마약류 투약과 유통, 성범죄, 경찰 유착 등으로 의혹이 번졌다. 당장 클럽 직원이 어느 국회의원의 사위와 함께 마약을 투약하다 구속되기도 했으며, 그 외에도 강남 클럽에 있었던 많은 마약 사용자들이 경찰의 수사 끝에 '약물 피해 관련 불법 촬영물 게시', '마약류 판매 광고 게시' 등의 혐의로 검거되었다. 아직까지 위와 같은 인종 차별이나 언론의 과도한 관심으로 인한 잘못된 정보 인용 등의 문제는 한국에서 크게 대두되지 않았더라도, 만약 일반인들도 거리에서 마약을 쉽게 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고 하면 한국 사회는 1970, 80년대 미국 사회와 같이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약물 중독 문제와 관련 범죄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5&aid=0003016156


그리고 이는 어느 정도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거리에서 대놓고 지나가는 운전자에게 마약을 팔던 젊은이들은 이제 더 넓고 은밀한 무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인터넷이나 대형 클럽, 유흥 주점에서 처음 마약을 접한 이들이 단순한 소비자로 남는 것이 아닌 중간 판매자로 변모하여 다시 마약을 파는 다단계 수법은 시장의 규모를 점점 키워가고 있었다. 우리는 어쩌면 한국이라는 무대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다큐멘터리의 시작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만약 정부와 경찰이 미국의 과거를 자성의 계기로 삼지 않는다면. 한국은 상상하지도 못할 많은 자금과 인력, 그리고 시간을 투자해서 마약과 긴 싸움을 이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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