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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관 Jan 16. 2021

진정한 도시인으로 사는 방법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도시인처럼'을 보고 쓰다

*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도시인처럼(Pretend It's a City)'


도시는 하나의 무대이다. 그것은 브로드웨이에서 상연하는 작은 연극의 배경이 될 수도 있고, 혹은 현실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연극 속 장치로 작용할 수도 있다. 또, 문학에서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위해 도시를 설정하거나, 그것을 주인공의 성격과 정체성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다. 그래서 소설 '경이로운 도시'의 오노프레는 카탈루냐의 산골에서 부르주아가 가득한 바르셀로나를 꿈꾸며 인생의 비상을 다짐했고, '뉴욕 3부작'의 퀸은 스틸만을 추적하며 도시의 신비함과 상징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작가 중 한 명인 박완서 역시 소설 '그 남자네 집'에서 전쟁으로부터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서울의 변화상과 더불어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도시는 수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거대한 삶의 터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대에 따른 시민들의 자화상을 그대로 투영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1900년대 초반의 뉴욕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유럽과 아시아에서 건너오는 이민자들로 가득했던 당시의 뉴욕은 그야말로 인종의 용광로 그 자체였다. 영화 '갱스 오브 뉴욕'은 이러한 이민자들의 도시 뉴욕을 잘 묘사한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회기반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을뿐더러, 공권력의 남용과 각종 국제 깡패단의 등장으로 인해 뉴욕은 언제나 혼돈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비록 2차 세계대전의 종전 이후 미국은 괄목할 만한 경제적 성장을 이룩하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이라는 도시는 여전히 '불편함'으로 가득 찬 도시였다. 오늘의 주인공인 작가이자 배우, 대중 강연가 '프랜 리보위츠(Fran Lebowitz)' 역시 20살 때부터 이런 뉴욕에서 살며 산전수전 다 겪은 인물이다. 그녀는 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뉴저지에서 건너와 택시를 몰고 여러 신문에 칼럼을 기고하며 돈을 벌기 시작한다.




영화감독 마틴 스콜세지와 작가 프랜 리보위츠


그녀는 올해 70세가 되었지만, 20살에 처음 이사를 온 이래로 아직까지 뉴욕에 살고 있을 정도로 이 도시에 온갖 애증을 다 가지고 있는 뉴욕 토박이다. 살인적인 물가와 집세, 깡패들과 범죄자들, 그리고 더러운 집과 거리를 견뎌낸 그녀는 이제 작가로서, 또 강연자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다. 그뿐만 아니라 뉴욕이라는 도시는 그녀에게 수많은 예술가와 작가, 셀럽들과의 인연도 선사해주었다. 앤디 워홀이 그녀를 '인터뷰'지의 칼럼니스트로 고용하기도 했으며, 그 외에도 칼럼을 쓰며 만난 유명 사진가와 친분을 쌓기도 했고, 강연자의 삶을 시작한 이후에는 데이비드 레터맨의 레이트 나이트 쇼 같은 각종 TV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인지도를 쌓기도 했다. 게다가 그녀는 여러 칼럼과 에세이 덕분에 '냉소적이지만 날카롭고 유머가 넘치는' 작가라는 평판과 함께 대중들에게도 사랑받는 뉴욕의 대표적인 작가로 우뚝 섰다.



재미있는 점은 프랜이 배우로서 스크린에 등장한 적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자신을 주연으로 한 다큐멘터리나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같은 영화의 단역으로 출연했는데, 그녀는 여기서 영화감독 마틴 스콜세지와도 인연을 맺게 된다. 오늘 소개하는 작품 '도시인처럼'은 이전작인 'Public Speaking'에 이어 다시 한번 마틴 스콜세지와 합을 맞춘 두 번째 다큐멘터리다. 총 7편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시리즈에서 그녀는 그와 함께 과거의 뉴욕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뉴욕만이 가지고 있었던 매력이 왜 사라져야만 했는지를 자신의 삶과 대조하면서 끊임없이 수다를 떤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바로 그녀가 매사에 불만이 가득하다는 사실이다. 지독한 개인주의적 성향의 뉴요커와 관광객을 위해 벤치를 없애고 이상한 조형물 같은 것을 타임 스퀘어에 설치하는 일, 유명 작가의 타일 작품을 지하철에 설치하고 정작 수리해야 할 부분을 수리하지 않는 일에 대해 프랜은 분노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일이 터지던 뉴욕을 회상하는 프랜 리보위츠


하지만 이런 행동은 그녀가 그만큼 뉴욕에 애정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실 다른 어느 국가의 메트로폴리스에 사는 사람들보다도 뉴요커들은 자신들의 도시에 대해 강력한 프라이드를 가지고 사는 것 같다. 웬즈데이 마틴의 평론인 '파크 애비뉴의 영장류: 뉴욕 0.1% 최상류 층의 특이 습성에 대한 인류학적 뒷담화'에 따르면 뉴요커는 각자 경험했던 시대와 장소에 따라 구분된다. 그에 따르면 뉴욕은 구역에 따라 왼쪽, 오른쪽, 위쪽, 그리고 아래쪽 주민으로 구분되는데, 뉴욕 특유의 복잡한 교통 체계와 비싼 요금 때문에 사람들 간의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아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극심한 이방인 혐오증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동부 힙합의 발상지인 뉴욕 출신의 래퍼들은 가사에서 자신을 '뉴욕'이 아닌 '브롱크스', '퀸즈' 같은 구역에서 왔다고 소개하는 일이 빈번하며, 다른 구역 출신 래퍼를 디스하는 일도 많다고 한다.



또한, 샤론 주킨의 '무방비 도시: 왜 도시는 영혼을 잃었는가'에서 작가는 도시의 진정성(Authenticity)에 대해 설명하며, 뉴욕에 대한 세대 간의 시선의 차이와 차별화된 경험은 뉴욕에 대한 오리지널리티, 기원을 중요시하는 이들과 새로운 변화를 대표하는 시민들의 긴장관계를 형성하여 도시를 재밌게 만들어왔다고 주장한다. 프랜은 70년대에 뉴저지에서 뉴욕으로 건너와서 살기 시작한 인물이다. 그녀는 전 세계의 자금이 흘러들어와서 점차 변화하기 시작하는 도시의 모습을 보고 자란 세대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시절이 프랜만이 가지고 있는 '뉴욕의 기원'이 되어 현재의 뉴욕과 끊임없이 갈등한다. 하지만 그것 역시 뉴욕의 특징이기에 프랜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작가, 여성, 레즈비언이라는 그녀의 삶을 구성하는 수많은 정체성을 받아들여준 뉴욕이기 때문이다.




뉴욕은 여전히 불편하고 더럽지만, 모든 것을 받아주기에 사랑할 수밖에 없는 도시였다.


도시와 시민은 서로를 투영한다. 뉴욕과 뉴요커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녀가 성장하며 겪었던 도시 속 체험은 본래 타고난 유머스러운 기질에 변하지 않을 성격과 섞였고, 그렇게 다양한 정체성이 혼합된 특별한 자아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은 오리지널리티와 변화를 모두 포용하려는 뉴욕의 얼굴과도 비슷하게 보인다. 혹자는 이 다큐멘터리의 시선이 우디 앨런의 영화와도 비슷하다고 느낀다. 그들이 그렇게 느낀 이유는 아마도 그의 영화적 표현 방식 때문이 아닐까.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미드나잇 인 파리'에 나타나는 거의 모든 인물이 파리를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도시'라고 표현한 점은 아마 우디 앨런이 뉴욕을 바라보는 방법과 거의 흡사했다.



예를 들자면 그의 다른 작품 '맨해튼(MANHATTAN)에서 그려지는 뉴욕 남자의 찌질한 사랑 이야기는 동시에 뉴욕이라는 도시의 이미지를 관객들의 머릿속에 새기기 충분한 영화였다. 전체적인 영화의 우울한 분위기와 유치하고 건조한 인물들의 삶은 그들이 활동하고 있는 무대에 대한 일종의 환상을 심어주었고, 그것이 마치 모든 메트로폴리스에 사는 도시인들의 모습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보통 파리가 예술가와 낭만의 도시이고, 뉴욕은 냉소와 혼돈의 도시인 것처럼 묘사하는 일은 사실의 진위를 가리고 모든 장면에 시시비비를 따지는 일보다는 훨씬 매력적이다. 비록 지금의 우디 앨런은 범죄자일지언정, 적어도 이 일에 대해서는 천재였다. 물론 마틴 스콜세지는 그처럼 범죄자는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연출한 영화를 볼 때마다, 도시를 묘사하는 점에 있어서는 방법은 다르지만 우디 앨런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뉴욕은 모두에게 각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프랜 리보위츠의 뉴욕은 마틴 스콜세지 영화에 나오는 마피아, 갱들의 뉴욕과는 사뭇 거리가 있다. 하지만 그들과 같은 이민자로서, 프랜 리보위츠는 자신의 재능을 믿고 혼란 속의 뉴욕으로 몸을 던졌다. 여전히 더럽고 모든 것이 뒤죽박죽인 데다가 마음에 안 드는 것도 수두룩 빽빽할 테지만, 그래도 뉴욕이라는 도시는 젊은 날의 프랜처럼 성공을 꿈꾸고 미약한 재능이나마 시험받고자 하는 모든 용감한 이들의 무대로 오늘날까지 남아있다. 그들은 지금도 마치 도시인처럼 다른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치며 횡단보도를 건너고 택시를 잡는다. 점차 부조리를 냉소와 유머로 받아칠 줄 알게 되고, 또 자신의 세상을 넓히고자 분투하는 모든 이들에게 뉴욕은 언제나 매력적인 도시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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