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의 '연필로 쓰기'를 읽고 쓰다.
김훈 작가의 새 에세이를 읽었다. 그는 '칼의 노래'나 '남한산성' 같은 소설을 쓰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전거 여행'이나 '라면을 끓이며'라는 에세이를 쓰기도 한다. 나는 글쓰기가 그에게 있어 어떤 의미인지 생각했다. 이번 에세이의 제목은 '연필로 쓰기'였다. 연필은 글쓰기를 하는데 필요한 도구 중 하나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 연필로 글을 쓰는 작가가 몇이나 될까? 당장 우리 주변을 둘러봐도 노트북이나 데스크톱을 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필기구를 쓰더라도 연필이 아닌 깔끔한 볼펜을 쓰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원고지로 글을 쓰는 사람은 더욱 없고. 그런데도 아직까지 김훈 작가는 연필과 지우개를 쓴다. 연필을 쓰다가 짧아지면 칼로 깎고 다시 쓴다. 잘못 쓴 곳이 있으면 지우개로 지우고, 남은 쓰레기를 통에 버린다. 이 모든 행위의 근거를 어디서부터 설명할 수 있을까.
연필은 내 밥벌이의 도구다.
글자는 나의 실핏줄이다.
연필을 쥐고 글을 쓸 때
나는 내 연필이 구석기 사내의 주먹도끼,
대장장이의 망치, 뱃사공의 노를
닮기를 바란다.
지우개 가루가 책상 위에
눈처럼 쌓이면
내 하루는 다 지나갔다.
밤에는 글을 쓰지 말자.
밤에는 밤을 맞자.
김훈, 연필로 쓰기 中
작가는 자신의 연필을 주먹도끼, 망치, 뱃사공의 노와 닮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모든 도구들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밥벌이의 도구였고, 연필도 작가에게 있어서 다를 바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글은 성실하고 치열하다. 단순한 조사 하나까지 꾹꾹 눌러쓴 그의 산문은 백스페이스로 쉽게 지울 수 있는 다른 글과는 분명 달랐으며, 새벽부터 한결같이 일하러 나가는 모든 노동자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일종의 숭고함까지 느껴지기도 했다. 글솜씨를 다른 사람들에게 뽐내기 위한 글과 밥벌이로 삼아야 하는 글의 차이는 그 점에서 나올 것이다.
이번 작품에서 특히 좋았던 글은 '할매는 몸으로 시를 쓴다' 편이었다. 어렸을 때 글을 깨치지 못하고 일을 하다가, 나이가 들고 늦게나마 한글을 배우신 할머니들은 시를 쓰기 시작했다. 여기서 신기한 점은 할머니들이 쓰셨던 글들은 그저 단순한 사건의 나열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도 기존 작품들과는 다른 종류의 감동을 주는 시가 탄생한다는 것이다. 전쟁과 독재의 시대를 지나 보내고, 사회의 억압을 온몸으로 받으며 세월을 보내신 할머니들에게서는 시가 배어 나왔다.
예전에 감동을 주는 글이 모두 작가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하루하루 삶의 작은 파편들을 연필로 종이 속에 눌러 담는 작가나, 글은 짓는 것이 아닌 온몸에서 흘러나오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시는 할머니들을 보면 내 글은 온통 가식처럼 보인다. 아무리 세련된 문체와 뜨거운 주제를 가지고도 그들만큼의 감동을 줄 수 없는 까닭은, 아마 그런 것들의 부재가 이유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