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날의 검을 다루는 사람들

김웅 작가의 '검사내전' 읽고 쓰다.

by ABB

내가 미디어에서 접하는 검사는 대부분 권력의 상징, 부패의 중심 같은 느낌을 주는 역할이 대부분이었다. 아니면 정의로운 검사 한 명이 검찰의 비리에 맞서 싸운다든지 하는 내용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5년마다 대통령이 바뀌고, 바뀐 정권에 따라 여러 검사 출신 인사들이 정부의 요직을 차지하거나 국회의원으로 출마했다는 뉴스를 많이 봐서 그런지 대중들이 검사를 보는 시선은 그리 좋지 않을 듯싶다.



그렇기 때문에 김웅 검사의 이번 에세이는 내가 몰랐던 검사와 형사법의 세계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책이다. 사람은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대상이나 나보다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에게 막연한 두려움이나 동경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편견이 쉽게 생겨날 수 있는데, 이번 기회에 나의 검사와 검찰 그리고 법에 대한 편견과 궁금증을 해소시켜 줄 수 있는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법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었다. 필자가 법과 재판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과연 법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분쟁 해결 방법인가? 책에서 필자는 법에 의한 분쟁 해결이 또 다른 분쟁과 갈등을 만들고, 재판이라는 것도 대중의 욕구와 분노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한다. 법이 기본적으로 이분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이기에 발생하는 일이지만, 대중은 경계에 위치하는 것에 대한 공포 역시 가지고 있기에 법을 포기할 수는 없다. 마치 저울과 같은 법이 책임이 더 무거운 쪽에게 모든 것을 짊어지게 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운 저자는 그래서 하나의 대안을 소개한다.



형사조정 제도는 검사가 처분하기 전에 당사자의 신청 혹은 직권으로 형사조정위원회라는 곳에 합의 조정을 의뢰하는 제도이다. 그곳에서는 조정위원들이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합의를 이끌어내려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애초에 합의로 끝날 일이었으면 형사소송까지 갔을까 싶지만, 생각보다 위원회의 조정률이 높아서 놀랐다. 이 제도를 잘 활용하면 가해자는 재판에서 구형 받은 것보다는 처벌이 덜할 것이고, 피해자도 재산적 피해를 보전하거나 민사소송을 진행하는 데서 오는 여러 불편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제도는 결국 회복적 사법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언급된 것 같다. 회복적 사법에 대해서 검색하던 중 나는 천종호 판사님의 회복적 사법론에 대한 짧은 칼럼을 읽을 수 있었다. 정말 간단히 말하자면, 당사자가 원하는 상태로 돌아가거나 보상을 받거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인 ‘회복적 측면’을 범죄에 대한 대응에서 강조하는 것이 회복적 사법론이라는 것이다. 학교폭력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가해자에게 피해 변상 및 화해를 권고하고, 이를 진심으로 이행할 경우 처벌의 경감을 고려하는 것은 회복적 사법론을 반영하는 사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 형사 사법에 대한 염증이 회복적 사법으로 이어지는 일은 어쩌면 필연일지도 모른다. 적법절차와 증거재판주의는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방지해주는 역할을 하였으나, 제대로 범죄자를 처벌하지도 못하고 재범률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형벌권을 손에 쥔 국가는 스스로의 권력만 더 강화시켰다. 때문에 필자는 회복적 사법이 이제라도 도입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미국의 여러 주에서 회복적 사법론에 입각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주 검찰의 감독 하에 진행된다는 사실을 근거로 법을 다루는 기술자들의 힘을 시민들에게 나눠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기존의 응보적 사법을 버릴 수는 없다. 절차와 원칙이 무너질 수 있는 조건 하에서 실시하는 회복적 사법은 피고인의 인권을 침해할 수도 있고, 피해자가 형사재판에서는 줄 수 없는 과도한 부담을 피고인에게 지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무슨 일이든 고소해서 끝까지 가보자는 국민 정서도 한몫한다는 필자의 말을 우리나라에서 미국과 같은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을 정착시키는데 어려움을 주는 근거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현직 검사가 사회가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공권력 기관이 아닌 시민들이 권력을 잡아야 한다는 말을 한다는 것은 놀랍다. 시민들이 모여서 문제를 해결하고 검찰권의 비대화와 국가의 부당한 간섭을 막아야 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아직까지 법에 있어서는 이를 다루는 사람들의 엘리트주의가 극심한 한국에서 이는 과연 실현 가능한 일일까. 늘어나는 고소와 그에 따른 검찰력의 강화는 결국 시민 스스로의 힘을 포기하는 셈이 될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그의 말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이전 02화"사랑하죠,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