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죠, 오늘도."

김금희의 '너무 한낮의 연애' 읽고 쓰다.

by ABB

'불가해'라는 단어는 '이해할 수 없음'이라는 뜻을 가진 명사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불가해'라는 단어에 아주 적절한 대상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니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감정이었다. 100%의 완전한 행복함과 불안함, 기쁨과 슬픔이라는 것은 어쩌면 거짓말이 아닐까.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서 '그때 우리는 정말 행복했지'라고 말하는 것일 수도 있겠네, 싶었다.



그리고 사람의 태도가 있다. 한평생 열심히 뭔가를 해서 이뤄낸 사람들을 생활의 달인에서 보면 저렇게까지 사는 인생도 있구나 하고 감탄하게 된다. 자신이 설정한 최고의 목적과 가치를 설정하고 이루기 위해 사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심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그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그가 가진 집념과 열정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냥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지 하고 넘어가는 것 같다.



이 두 가지는 '불가해'하다는 그 자체의 특성으로 인해 사람 간의 이해관계에 있어서 갈등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소설집 '너무 한낮의 연애'에 제일 먼저 수록되어 있는 '너무 한낮의 연애'는 감정과 삶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의 첫 번째 하이라이트는 양희가 필용에게 고백하는 장면이다. 맥도날드에서 양희는 '선배, 나 선배 사랑하는데'라며 느닷없이 고백을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이냐는 필용에 말에 그건 모르겠고 앞으로 알 수도 없으며 알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재밌는 점은 그런 무심한 고백에도 필용은 오히려 매달리는 입장으로서 그녀를 대한다. 그는 자신을 놀리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녀가 오늘도 그를 사랑하는 것 같다는 말에 이해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낀다. 그런데 장마가 오는 날 양희는 역시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먹다가 깜박 잊을 뻔했다는 투로 그에게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필용은 그런 양희에게 저주에 가까운 폭언을 쏟아낸다.



두 번째 하이라이트 장면은 문산에서의 일이다. 그렇게 필용의 폭언들로 상처를 받은 양희는 고향인 문산으로 내려갔고, 그는 그녀를 따라 내려간다. 그곳에서 필용은 심한 말을 했던 것을 사과하지만, 양희는 그저 동네 어귀의 나무나 보라는 말로 답한다. '언제 봐도 나무 앞에서는 부끄럽질 않으니까, 비웃질 않으니까 나무나 보라고요.' 필용은 그 말을 듣고 사랑이 끝났음을 깨닫는다, 그 순간만큼은.



그 나무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필용이 찾아간 극장에서 다시 나타난다. 필용은 평범한 회사원이 되었고, 그가 우연히 들어간 점심의 극장에서는 양희가 연극을 하고 있었다. 양희는 '두 팔을 들어 어깨너비가 넘게 벌린 후', '그 어느 밤의 느티나무처럼, 바람을 타듯 팔을 조금씩 조금씩 흔들'며 극을 마무리 지었다. 16년 전의 그 나무를 다시 본 필용은 극장에서 나온 후 눈물을 닦으며 비로소 '시간이 지나도 어떤 것은 아주 없음이 되는 게 아니라 있지 않음의 상태로 남아있음'을 알게 된다.



'양희'라는 인물은 소설 내내 특이한 분위기를 발산하며 그 존재감을 과시한다. 감정을 대하는 특유의 태도와 그에 따른 그녀의 말들은 소설을 덮고 나서도 여운을 가시지 못하게 한다. 그녀의 고백은 무심함 그 자체였다. 그 무심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그녀의 삶을 지탱하는 하나의 태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감정에 깊이 빠져드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양희는 감정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자신의 감정이라는 것은 스스로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저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다. 우연함으로 시작된 사랑이 이유 없이 끝나는 것임을 알지 못했던 필용은 양희에게 상처를 줬다.



문산에서 필용은 다시 만난 양희에게 사과하지만, 나무나 보라는 말을 듣고 헤어져야 함을 깨닫는다. 그녀가 그에게 던진 한 마디는 상당히 단호한 말투였다. 이 말을 건넨 지점에서 양희는 필용이 자신에게 마음이 떠났음을 알았던 것 같다. 이는 필용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양희는 그의 속물성에 대해 뭐라 하지도 않고, 원망하지도 않는다. 양희의 사랑은 무엇이었을까.



극장에서 만난 양희는 나무가 되어있었다. 자연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상처를 보호하려 했던 그녀는 이제 나무가 되어 두려움 없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존재로 변모해있었다. 어쩌면 과거 필용에게 건넨 말은 아마 자신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모든 상황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감정들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그저 무심하게 나를 바라보려는 그녀의 다짐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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