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빛바랜 돼지들의 마지막 낭만과 추억들.

영화 '붉은 돼지'를 보고 쓰다.

by 한관

마침내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들을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이웃집 토토로’부터 ‘마녀 배달부 키키’, ‘천공의 성 라퓨타’까지,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만든 작품들이 발표된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난 기대감을 감출 수 없었다. 나는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지브리 것만은 몇 번씩 되돌려보곤 했기 때문이다. 사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추구하는 세계관, 그리고 인물들과 영화적 요소들은 이후 출시된 다른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영화와 드라마, 게임에까지 영향을 미쳤기에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작품들이다. 그래서 내가 아는 영화나 게임들이 지브리 작품들 중 무엇을 패러디했는지 찾아보는 것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였다.



이번에 소개할 ‘붉은 돼지’는 그 작품들 속에서도 특히 돋보이는 영화였다. 어린이를 위한 우화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그 어린이들을 키우는 어른들을 위한 영화였다. 작중 배경은 1차 세계 대전 이후의 이탈리아 아드리아나 해(海)이다. 주인공인 포르코 로소는 전쟁에서 전투기 조종사로 복무했지만, 전우들을 잃은 후 공적을 처리하고 돈을 받는 현상금 사냥꾼으로 살아간다. 전우를 먼저 보내고 혼자 살아남았다는 자책 때문이었는지, 포르코는 공적들을 잡을 때도 그들을 죽이지는 않는다. 지독히도 염세주의적인 면모를 보이는 그가 낙으로 삼는 것은 아무도 살지 않는 자그마한 무인도에서 혼자 와인을 마시며 전화를 하거나, 오랜 친구 지나의 바에서 술 한 잔을 하는 것뿐이다.



포르코를 만나기만 하면 바다에 처박히는 공적들에겐 그런 모습이 좋게 보일 리가 없다. 그들은 미국인 파일럿 커티스를 고용해서 그를 처리하려 했고, 실제로 밀라노로 날아가는 그를 급습해 추락시키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운 좋게 살아남아 비행기를 수리한 포르코는 다시 공적과 커티스를 만나 결투를 벌이게 되고, 승리한다. 영화는 포르코의 비행기를 정비한 피오의 내레이션을 내보내며 마무리를 짓는다. 그녀는 훌륭한 정비사가 되고, 그녀에게 청혼하며 결투를 벌인 커티스는 할리우드로 넘어가 배우가 됐으며, 지나는 여전히 마담으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포르코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더 이상 현상금 사냥꾼으로 살아갈 수 없는 시대가 되었음에도 그는 자유롭게 비행기로 하늘을 날았을까, 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여기서 잠깐 우리는 영화의 배경으로 나온 이탈리아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인공인 포르코는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해 공군으로 복무하다가 전역했다. 그 당시 이탈리아는 전쟁이 끝난 후, 무솔리니의 등장으로 나라 전체에 파시즘의 기운이 퍼지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군대 역시 파시즘으로 물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영화에서는 비행기를 수리하는 동안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있던 포르코에게 군대의 높은 자리에 있는 옛 전우가 몰래 찾아와 공군으로 돌아오라고 설득하는 장면이 있다. 포르코는 그런 제의를 거절하며 파시즘을 향한 부정적인 태도를 서슴없이 드러낸다.


낯선 돼지에게서 로버트 드 니로의 향기가 난다.


사실 그는 영화 내내 파시즘을 비판하고 자유를 추구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현상금 사냥꾼이라는 무법자 같은 모습과,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람은 죽이지 않겠다는 철칙을 지키는 신사적 파일럿의 이미지가 섞인 포르코라는 인물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를 가장 매력적인 인물로 만드는 말은 바로 ‘날지 않는 돼지는 그냥 돼지일 뿐이야.’라는 대사다. 포르코는 사실 돼지다. 전쟁 후에 마법으로 인해 돼지가 되었다고 언급될 뿐, 영화는 전후 사정을 디테일하게 파고들지 않는다. 다만 돼지가 된 후에도 포르코는 바다 위에서 비행정을 몰며 자유인의 삶을 살아간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돼지’ 포르코의 눈에 비친 인간의 모습은 자신보다 더 나을 것이 없어 보였다.



나는 이 영화를 파시즘을 향한 비판보다는 자유인이라는 주제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싶다. 물론 군국주의와 파시즘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포르코를 통해 언급했다는 해석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러 온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은 정치적 해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문득 감독이 의도하는 바를 표현하기 위해 당시 이탈리아의 역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영화를 제작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개봉되고 나서 지금까지, 이 작품에 대한 평가를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바로 ‘어른들이 더 좋아하는 만화’였다. 사람들은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점차 타협을 반복하며 ‘돼지’로 변해간다. 뱃살은 늘어만 가고, 턱살은 점점 쳐져만 간다. 영화 속 포르코는 빨간 비행기를 타고 넓고 푸른 하늘을 날면서, 공적을 소탕하고 현상금을 탄다. 바에서 자신을 향한 수군거림이 들리지만, 눈치 보지 않고 할 말을 한다. 영화 밖의 ‘날지 않는 돼지’들은 그렇게 ‘그냥 돼지’가 되어가는 자신을 되돌아본다. 한때 하늘을 나는 포르코처럼 당당했던 자신들을 회상하면서 동시에, 그를 그저 돼지라며 욕하는 사람들이 바로 지금의 자신들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관의 날지 않는 돼지들은 그의 마지막을 끝까지 좇게 된다. 이탈리아 정부의 명령으로 예전처럼 현상금 사냥을 할 수 없게 된 그는 나처럼 현실에 순응했을까? 아니면 끝까지 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자유로운 생활을 했을까? 영화 속의 하늘을 나는 붉은 돼지를 보는 사람들은 슬플 것 같다. 나는 다시 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며 그들은 아득한 향수와 낭만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빛바랜 추억을 되새길 뿐인 돼지들은 다시 한번 이 영화를 보며 꿈을 꿀 것이다. 백화점에서 뛰어내린 이상의 날개 같은 것이 자신들의 어깻죽지에서 피어나는 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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