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을 바라보며 희망을 꿈꾼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 읽고 쓰다.

by ABB

내가 평생 동안 신념을 가지고 해왔던 일이 통째로 부정당한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할 수 있을까? 이를 받아들이고 체념할까? 아니면 같은 태도로 이 일을 끝까지 해나갈까? 설령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스스로 알면서도? 오늘 내가 말할 소설의 주인공인 스티븐스 역시 이러한 고민을 했던 인물이다. 그는 젊었을 적 영국의 신사인 달링턴 씨의 저택의 집사로 일하기 시작해 평생 동안 그곳에서 일한다. 나중에 자신의 주인이 세상을 떠나고, 자기도 나이를 꽤나 먹은 스티븐스는 미국인 주인인 패러데이의 배려로 6일간 여행을 떠난다. 이 소설은 대부분 영국을 돌면서 그가 하는 과거 회상이 주를 이루고 있다.



스티븐스는 다른 저택의 집사들에게 절대 뒤지지 않는, 이른바 1등급 집사라고 할 수 있었다. 그의 관리 아래서 저택의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잃지 않고 빛나고 있었고, 그가 관리하는 사람들 역시 스티븐스 덕에 최고의 인력이 되어있었다. 이런 사실은 그가 여행을 다니면서 회상한 과거의 일들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진정한 집사란 무엇인가, 최고의 집사가 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 일반적인 집사와 위대한 집사를 구분 짓는 품위라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등등, 스티븐스는 소설 내내 이를 끊임없이 독자들에게 이를 상기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설득당할 수밖에 없었다. 달링턴 경의 명령으로 그가 유대인 하녀들을 해고해야 한다는 말을 켄턴 양에게 할 때도, 위대한 집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친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할 때도, 켄턴 양에게 사사로운 감정을 품고 있었을 때도. 결국 그녀를 떠나보낸 그에 대해서 나는 설득당해버렸던 것이다. 그의 기준에 의하면, 그는 위대한 집사였다. 작품 뒤에 나오는 해설에 말에 따른 “사적인 실존을 위해 전문가적인 실존을 포기하지 않았다.”라는 말을 근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충성심을 보내던 달링턴 경은 나치 지지자였다. 그는 영국 신사 다운 따뜻한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오히려 그런 성격 때문에 히틀러에게 이용당한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해 독일은 전쟁 배상의 책임을 지고 있었는데, 달링턴 경의 저택에서 그 조약에 대한 유럽의 여러 명사들의 논의가 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베르사유 조약의 주요 골자인 독일의 배상금은 나중에 경감되었고, 독일이 조약을 파기하면서 이는 제2차 세계대전의 배경이 된다.



달링턴 경의 저택에서 집사로 일하던 스티븐스는 간접적으로나마 자신이 큰일을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세계의 운명을 결정짓는 훌륭한 신사들 밑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자신도 미약하게나마 영향을 준다는 논리인 것 같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달링턴 경의 저택에서 일어났던 여러 회담이 전쟁을 일어나게 하는 많은 원인들 중 하나였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스티븐스는 어리석은 주인의 결정에 대한 책임과 일정한 비난 역시 나눠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 있다.



스티븐스는 오랜 시간 거대한 저택의 집사로서 훌륭하게 일을 수행해왔다. 그의 경력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인간으로서의 알맹이는 없었다. 스티븐스가 소설 내내 말했던 집사의 품위는 껍데기에 불과했다. 여행의 목적이었던 캔턴과의 재회 후 이야기를 나눌 때, 그녀는 고통스럽지만 그녀의 인생을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 켄턴이 다시 달링턴 홀에서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추측을 하던 스티븐스와는 확연히 다른 차이를 보여준다.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고 살아온 그녀는 그와 다르게 과거를 편안히 돌아볼 수 있었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어느 노인과 스티븐스의 대화, 그리고 독백으로 마무리된다. 인생의 편안한 저녁을 보내고 있는 켄턴과 달리, 스티븐스는 새 미국인 주인을 위한 미국식 농담에 대해 생각한다. 그는 스스로 농담에 대해서 아직도 부족하다고 느끼면서, 다시 저택으로 돌아가면 농담 실력을 길러야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그가 부족했던 것은 사태 인식 능력이 아니었을까? 비밀 회담이 있던 날 카디널 씨가 그에게 달링턴 경은 히틀러에게 이용당하는 것이라고 말해주지만, 충직한 집사였던 그는 단지 ‘나리의 훌륭한 판단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노년의 스티븐스에게 있어서 이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간 나날일 뿐이다. 그와 대화한 노인은 그에게 지나간 나날보다 앞으로의 나날이 더 중요하다고 충고한다. 인생의 황혼을 보내고 있는 스티븐스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소설의 마무리가 약간 아쉽긴 하지만, 나는 그가 구시대적인 계급을 벗어나 진정한 소통의 길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뒤늦게나마 알맹이를 채우고, 과거를 편안히 바라볼 수 있도록 그를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