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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희 Apr 20. 2020

박평식이 9점을 준 바로 그 영화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보고 쓰다.


요즘 꿈을 가진다는 것이 예전처럼 쉽지 않다는 사실을 느낀 적이 있었다. 나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둥, 혹은 스티브 잡스 같은 CEO가 되어 세상을 바꾸겠다는 다짐을 초등학교 다닐 때 곧장 했지만, 누가 지금의 나한테 꿈이 뭐냐고 다시 물어본다면 못 할 것 같다. 매년 시간은 가고, 내 마음속의 이야기보다 주변의 소문들을 듣다 보면 그런 생각은 더 강해졌다. 이 나이가 되도록 졸업을 못하고, 취업을 못하면 나중에 점점 더 살기 힘들어질 거야.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친구들과 자주 나눴다. 그러면서 동시에 사회 속에는 틀을 깨는 사람들도 여럿 있지만, 그 안에서도 행복하게 지내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어느 방향으로 가든,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런 틀을 깨느냐, 깨지 않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가 신경 써야 할 것은 그저 내 선택들에 대해서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나는 내가 과감히 틀을 깨며 살아가는 유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지금까지 그런 인생의 틀 속에서 내가 한 선택들에 책임을 졌다. 일상 속 작은 일이든, 아니면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나름대로 큰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난 언제나 선택을 해야 했고, 그렇게 돌아온 결과들은 내 삶을 구성했다. 반면 영화 속 주인공 매기의 경우, 주변의 부정적 시선과 사회적 편견이라는 틀을 깨고 복싱 선수라는 꿈을 이뤘다. 하지만 지독한 삶은 그녀를 쉽게 놔주지 않았다. 챔피언 결정전에 출전한 그녀에게 상대방의 반칙으로 인한 전신마비가 왔기 때문이다. 영원히 병원 신세를 져야 하는 상황. 더 이상 복싱을 할 수 없고, 이전과 같은 평범한 삶을 살 수도 없는 그녀의 운명은 가혹하지만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었다.



결국 매기는 트레이너에게 자신의 목숨을 유지하는 모든 장치들을 떼어달라고 요청한다. 늦은 나이에 복싱을 할 수 있었고,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모두 경험했으니 후회는 없다고 말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트레이너이자 친구인 프랭키에게 애원한다. 영화는 제자의 마지막 소원을 이뤄준 트레이너의 쓸쓸한 뒷모습을 비추면서 막을 내린다. 고혈을 빨아먹는, 가족이라고 할 수도 없는 사람들을 부양하기 위해 보낸 그녀의 모든 고통스러운 시간들은 트레이너의 도움과 주인공의 피땀 어린 노력 덕분에 빛나는 순간들로 보상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죽음이라는 마지막 선택은 그녀에게 포기가 아닌, 그녀가 언제나 내리던 스스로의 결정으로서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타인의 삶을 마음대로 재단하고 평가해버린다. 모든 사람들은 내가 안 보이는 곳에서 각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아직도 피땀 흘리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비록 그 결과들이 모두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그들이 거쳐갔을 과정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 선택은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고, 뒤따라 오는 책임감이라는 무거운 바위를 지고 산을 올라가는 시지프스와 같은 삶은, 바로 그 선택을 한 사람만이 살아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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