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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희 Jul 04. 2020

이 배우의 스펙트럼은 어디까지인가

배우 '로버트 드 니로'

  언젠가 TV 프로그램에서 어떤 중년 배우가 자신의 직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사람들은 나이 먹는 것을 두려워하고 그리 반기지 않지만, 배우는 오히려 나이를 먹는 것을 기다리는 직업이라고. 나이가 들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연기의 스펙트럼도 다양해지고, 더 깊어진다는 것이라는 뜻인 것 같았다. 정말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쭉 보면 젊은 시절의 그와 나이를 먹은 뒤의 그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마치 다른 사람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그는 대중들에게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좋아하는 배우인 로버트 드 니로의 모습은 어떻게 변했을까? 물론 팬들이 기억하는 그의 전성기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과 함께하던 시절일 것이다. ‘좋은 친구들’, ‘택시 드라이버’ 같은 갱스터 영화는 로버트 드 니로라는 배우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할아버지가 되었다고 해서 배우로서의 행보를 멈춘 것은 아니었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트럭을 몰고 적들을 암살하는 갱스터, 은퇴 이후의 새 삶을 찾아가는 시니어 인턴, 그리고 오랜 동반자인 아내를 떠나보낸 후 손자와 함께 파티를 즐기러 떠나는 철부지 없는 할아버지 역할까지, 로버트 드 니로는 자신이 맡은 영화마다 관객들이 상상할 수도 없던 역할로 스크린 속에서 열연했다. 나는 이런 그의 모습을 세 영화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1. 아이리시맨(2019)

  알 파치노, 조 페시와 함께한 마틴 스코세이지의 영화 ‘아이리시맨’에서 팬들은 그에게 더 이상 과거의 비토 콜레오네와 트래비스 비클을 기대할 수 없었다. 나는 처음에 고령의 세 배우가 과연 갱스터 영화 특유의 폭력적이고 투박한 액션을 소화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을 했었다. ‘택시 드라이버’와 ‘좋은 친구들’의 로버트 드 니로가 강렬하게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있었기에 오히려 이번 영화가 실망을 안겨주진 않을지 우려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생각은 나의 기우였다. 러닝 타임 내내, 부드럽게 흘러가는 암살 장면과 대화들은 과거의 잔인함 없이도 관객들에게 새로운 긴장감을 안겨줄 수 있다는 사실을 감독과 배우들은 깨닫게 해 줬다. ‘노장은 죽지 않는다’라는 일종의 선언을 로버트 드 니로는 팬들에게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2. 인턴(2015)

  총 한 방과 자동차 폭발로 모든 불만을 잠재우던 과격한 뉴욕의 마피아이자 갱스터였던 로버트 드 니로가 IT 회사의 새로운 시니어 인턴으로 변신했다. 가방도, 넥타이도 모두 옛날에만 쓸 것 같았던 것들로 가지고 다니는 새로운 인턴 ‘벤 휘태커’는 과거 자신이 일했던 직장 건물로 다시 출근해서 새로운 직원들과 젊은 사장과 함께 즐거운 도전을 이어간다. ‘인턴’에서 그의 연기가 인상 깊었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바로 그의 모습 속에서 ‘꼰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에 그가 출근해서 자기 책상에 물건을 올려둘 때 다른 젊은 직원은 노트북을 올려두지만, 그는 만년필 같은 옛날에나 쓸 것 같은 물건들을 올려둔다. 이처럼 세대 차이가 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오히려 영화 내내 위기 상황이 찾아올 때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직원들이 아닌 벤이다. 그가 선을 넘지 않고 건네는 유쾌한 유머와 매너, 그리고 시의적절한 조언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이상적인 ‘어른’이 되는지 알려주는 듯하다.



3. 오 마이 그랜파

  인턴에서 진중하고 사려 깊은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 로버트 드 니로가 이번에는 각종 성드립을 치며 ‘왕년에 좀 놀아본’ 듯한 패기를 내뿜는 할아버지로 등장했다. ‘오 마이 그랜파’에서 그는 아내를 잃고 난 뒤 자신의 욕망을 모두 실현하기 위해 물불 안 가리는 ‘딕 켈리’로 열연했다. 영화의 첫 장면은 오랫동안 함께한 아내를 장례식에서 떠나보내는 모습이다. 이때까지 관객들은 그가 그저 아내를 잃은 평범하고 슬픈 할아버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함께 여행을 떠나기 위해 집으로 간 손자의 눈앞에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지금까지와는 정반대이다. 교수와 함께 하룻밤을 자는 것이 소원인 여자를 꼬시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따라간 해변에서, 두 사람은 온갖 기행을 벌이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역시 이전 영화들에서 조 페시랑 같이 마피아 영화 찍은 짬 탓인지는 몰라도, 로버트 드 니로는 인턴에서 못한 드립과 욕을 이번 영화에 쏟아부었다. 그가 작정하고 코미디 영화에서 고삐가 풀리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한 분들은 이 영화를 앞의 작품들보다 먼저 관람해도 좋을 것이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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