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사우디아라비아의 모습들
이방인의 시선으로 보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모습은 대부분 다음의 세 가지 주제에 따라 정해지는 것 같다. 첫 번째는 바로 오일머니. 사우디아라비아의 왕가 소유인 대표적 국영기업 ‘아람코’는 오늘날까지도 막대한 석유 수입을 바탕으로 전 세계 제일의 석유화학 및 정유사로 성장했고, 세계 석유 가격을 결정짓는 중요한 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비록 최근 미국의 셰일가스 개발로 인해 그들의 위상이 점차 흔들리고 있는 데다가 가격에 대한 치킨 게임으로 인해 사우디가 한 방 먹었다고들 하지만, 아직도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 수출국 기구(OPEC)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이를 기반으로 전 세계 석유 시장에서 흔들림 없는 강자로 자리 잡고 있다.
두 번째 키워드는 ‘미국’이다. 아랍 세계의 대표적인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이자 메카와 메디나라는 이슬람 성지의 수호자를 표방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 사상중에서도 가장 수구적인 태도를 지향하는 국가이다. 따라서 이런 사상을 중심으로 삼고 활동하고 있는 각종 테러단체의 출발이 바로 사우디아라비아라는 주장이 많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만큼 아랍 세계에서 미국과 관계 유지가 필연적인 국가도 거의 없을 것이다. 사우디 왕실에서는 이슬람의 시아파가 대부분인 이웃 나라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은 시리아 내전이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같은 골치아픈 중동 문제에 대한 협력을 필요로 하기에 두 나라는 쉽게 외교 관계를 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바로 이슬람 근본주의 ‘와하비즘’이다. 전 세계에서 몇 안되는 왕정국가이자 다른 종파를 배척하는 이슬람 극단주의 국가, 그리고 아직도 중세 스타일의 이슬람 율법을 따르고 있는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이 아닌 다른 문화나 사상들을 극도로 배격하며 지나치게 수구적인 태도인 와하비즘을 중심으로 한, 다른 나라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사회적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당연히? 종교의 자유가 부재할 뿐만 아니라, 예로부터 이어져 온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에 따라 범죄에 대한 형벌을 결정한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충격적인 점은 바로 고대 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참수형이나 태형이 아직도 형벌의 한 종류로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대표적으로 성범죄나 살인을 저지른 중범죄자는 사형이나 신체 절단, 그리고 십자가형을 선고하고 상대적으로 죄질이 가벼우면 태형(우리가 아는 매질)을 선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런 구형은 같은 21세기를 살아가는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충격 그 자체였다.
그래서 사우디아라비아는 다른 아랍 국가에서도 지속적인 풍자의 대상이 된다고 한다. 주로 돈만 많고 속은 꽉 막힌 주제에 왕초 역할을 자처하지만 정작 문제가 생기면 제대로 대처하지도 못하는 나라라고 놀린다는데, 실제로 이집트에서는 이런 사우디아라비아의 모습을 풍자한 코미디 연극이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물론 성직자들은 좋아할 리가 없겠지만, 이집트를 비롯한 다른 아랍 국가들의 '꼴좋다' 는 반응을 보면 이런 인식은 비단 한 나라만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오늘 소개할 6편의 사우디아라비아 단편 영화 시리즈 ‘SIX WINDOWS in the DESERT(사막의 여섯 창문)’는 사람들에게 사우디아라비아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과 그것이 불러일으키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도발적인 방법으로 화두를 던진다. 영화의 감독은 오늘날까지 극단적인 와하비즘이 팽배한 사회에 존재하는 지독한 여성 차별과 외국인 노동자 문제, 그리고 가족 구조에 대한 문제를 유쾌하게, 때로는 진지한 시선과 함께 풀어놓고 있다.
먼저, 시각 장애인이었던 어느 남자의 이야기와 내용을 빌미로 연극 도중에 난입했던 이슬람 보수주의자들의 실제 난동 사건을 병치시켜 전개하고 있는 첫 번째 영화 ‘와사티 버스’는 뒤이어 나오는 영화들 속 사우디 사회의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슬람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지만 다양한 나라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 역시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여 다문화 국가라고도 말할 수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최근 왕실의 새로운 정책 기조에 의해 다양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변화는 기존의 종교적 보수 세력의 반발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잿가루를 실수로 눈에 비벼 실명되었던 어느 남자가 연극에서 일어난 싸움 때문에 날아드는 슬리퍼에 맞았다가 알라의 은총으로 시신경이 다시 자극을 받아 시력을 되찾았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둘러싸고 있는 이슬람 사회의 생활 방식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종교관을 보여주는 장면들을 보면, 우리는 영화 '와사티 버스'가 사우디아라비아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알려주는 일종의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시리즈 중 내게 있어 가장 인상 깊었던 편들은 총 3편이었는데, 바로 사우디 사회 속 외국인 노동자의 모습을 다룬 ‘수미야티가 지옥에 갈까요?’, 남녀의 데이트를 금지하는 현실을 풍자한 ‘8월 27일’, 그리고 여성의 사회 참여를 문제시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세태를 다룬 ‘커튼 사이로’이다. 먼저, ‘수미야티가 지옥에 갈까요?’는 어느 사우디아라비아 가정의 가정부로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수미야티’의 현실을 주요섭의 단편 소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처럼 아이의 시점으로 바라본 영화이다. 러시아에서 온 그녀는 집에 돈을 보내기 위해 매일 열심히 일하지만, 노력은 주목받지 못하고 가끔씩 작은 사고들만 눈에 띄게 되어 주인에게 질책을 받고 힘들어한다. 그녀는 가정집 어린 아이가 가지고 노는 파란색 병아리에 비유되는데, 병아리는 내내 아이에게 악의 없는 놀이의 희생양이 되어 고통받다가 차가운 땅에 묻힌다. 이는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수미야티의 모습과 비교된다.
그녀는 아이가 위로한답시고 준 작은 장난감을 모아뒀다가 마지막에 주인에게 도둑으로 몰려 오해를 사게 되고, 이는 스트레스를 받아 실수로 변을 보는 병아리의 모습과 겹쳐지게 된다. 아이는 영화 초반부에 '수미야티가 이슬람을 믿지 않으니 율법에 나온 대로 지옥에 가게 되냐'는 질문에 아무런 답을 받지 못하는데, 카메라는 대답을 하지 않는 다른 가족 구성원들을 우스꽝스럽게 조명하며 그들의 가식적이고 모순적인 모습을 강조했다. 실제로 사우디아라비아는 인도를 비롯한 여러 국가로부터 일하러 오는 노동자들이 전체 노동인구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 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수미야티처럼 노동자에게 보장해야 할 기본적인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으며, 이슬람교도가 아니라는 이유로 상당한 노동 착취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석유 산업 덕분에 빠르게 부국이 된 사우디지만 급속한 성장이라는 밝은 빛은 엄격한 와하비즘과 더불어 수많은 '수미야티'를 만들어냈고, 이는 사우디 사회의 짙은 그림자로 남게 되었다.
이는 비단 노동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18년까지 여성의 운전을 금지했을 정도로 여성 차별 문제가 심각한 국가이다. ‘8월 27일’과 ‘커튼 사이로’는 이런 사우디아라비아 사회 속 여성 인권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는 일종의 코미디이자 부조리극이다. 부부가 아닌 이상 여자가 이성과 데이트를 하는 것이 금지된 사회 속에서, 남녀 주인공은 몰래 어느 룸카페에서 만나 데이트를 즐기게 된다. 대화 중간에 잠시 들린 화장실에서 남자는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나 의심을 받게 되지만 알고 보니 그 사람도 몰래 데이트를 하러 왔다는 내용의 영화 ‘8월 27일’은, 우리에게 실소를 자아내게 만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랑이라는 인간의 본능을 억제하는 종교적 제도의 사회적 부조리를 폭로하고 있다. 영화 ‘커튼 사이로’ 역시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어느 여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환자들의 괴롭힘과 동료들과의 어색한 관계 속에서도 일터에 나와 일하는 그녀의 모습이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 여자는 집안에 충실해야 한다는 이슬람 율법에 기인한 주변인들의 시선이 주인공을 관통하여 나에게까지 전달되고 있기 때문일까? 난 이 두 편이 감독으로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만든 일종의 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부부가 아닌 남녀가 데이트를 했다는 이유로 태형에 처하는 국가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작년부터 사우디아라비아 당국은 한국을 포함한 49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관광비자를 발급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유튜브에 ‘사우디 여행’이라고 검색하면 한국의 여행 유튜버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를 비롯한 여러 도시를 여행한 영상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 영상 속에는 여행자를 친절하게 대하는 사람들과 휘황찬란한 건물을 중심으로 멋진 야경을 자랑하는 리야드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나는 처음에 이 글을 쓰면서 스스로 편협한 시각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자문을 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 있는 고질적인 이슬람 율법의 병폐로 인해 고통받았고, 또 지금도 받고 있는 사람들 역시 사우디아라비아 사회의 무시할 수 없는 모습이자 개선되어야 할 현실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종교적 자유가 보장되어있는 대한민국 사람이자 아랍 국가의 이방인인 내가 그들을 판단하기에는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대한 경험이나 지적인 수준이 한참 부족할 것이다. 그러나 개인보다 종교가 우선인 사회 속에서 인간은 행복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서, '사우디아라비아 국민들은 지금 상황에 만족하고 있을까?' 라는 질문을 멈출 수 없었다.
지난 2011년 중동을 뒤흔든 아랍 세계 속 혁명의 불길은 독재 정권 타도와 경제 발전, 그리고 인권 존중이라는 기치 아래 수많은 부패한 정부를 쓰러뜨렸다. 그리고 이는 사우디아라비아도 예외가 아니었다. 시위대는 입헌군주제, 여성 인권 보호, 정치범 석방이라는 요구로 민주화 인사들과 함께 대규모 시위에 나섰고, 각 계층에서도 민주화를 요구하는 서한이나 탄원서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당시 국왕은 국민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공공시설 확충이나 의료, 교육 개선에 많은 자금을 투자하기로 약속하고, 여성 참정권을 인정하는 등의 노력으로 겨우 위기를 넘길 수 있었으나, 그때 사그라들었던 여러 민주화 시위와 자유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불만은 언젠가 또 한 번 사우디 사회를 뒤흔들 폭탄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물론 그것이 언제 터질지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사회의 지배 세력이 보장한 어설픈 자유는 언젠가 그들을 역으로 집어삼킬 수 있다는 점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그러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