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뚝 떨어진 가을아침이다.
며칠 사이에 사람들 옷차림이 달라졌다. 출근길에 바람이 차게 느껴져 양복 단추를 채우다가 문득 어린 시절 불렀던 노래가 떠올랐다.
아침 바람 찬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
우리 선생 계실 적에~ 엽서 한 장 써붙여서~
두리두리 말아서 우체통에 넣자!
아! 이 노래를 부르던 유년의 기억은 멀고 아득하기만 해서 이미 유실된 것 같았지만 무의식은 사라진 기억을 느닷없이 되돌려 놓는다.
오십 년이 넘는 세월은 기억들을 두서없이 거두어 가고 있다. 그러다가도 이렇게 한 줄 멜로디를 불쑥 던져 놓고는 추억을 더듬거리게 만든다.
엄마와 이모가 불러주던 이 노래를 딱딱 따라 부르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대략 47년의 세월이 흘러갔고, 나는 하루하루 늙어가고 죽어가는 중이다.
죽음을 받아들이면 삶은 윤택해진다. 마주하고 있는 순간순간이 반짝거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것 같다.
죽음을 향해 흐르고 있는 삶을 붙잡을 순 없지만, 기억에서 오래 머무르게 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색다른 경험을 해보는 것이다.
친구 6명이 모여 나흘 동안 후쿠오카 여행을 다녀왔다.
저마다의 개성을 지닌 친구들이 부산, 서울, 청주에서 각자 비행기를 타고, 낯선 풍경과 사람들이 존재하는 후쿠오카로 모였다. 친구들과는 마카오를 다녀온 지 8년 만의 해외여행이었다.
우리는 낯선 도시에서 술을 마시고 또 마셨다.
먹고 마시고 떠들어 댔고, 먹고 마시며 서로 낄낄거렸다. 각자의 삶에 관한 얘기도 있었지만 대개는 시답지 않은 이야기들이었다.
본래 친구들과의 대화는 쓸데없는 주제가 7할이 아니던가. 어쩌면 우리는 실없는 소리에 킥킥대려고 모인 것 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우리는 술잔을 수시로 부딪쳤다.
이야기에 술이 섞이는 것인지, 술에 이야기가 더해지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한 것은 대체로 후쿠오카에서의 시간들이 유쾌했다는 사실이다. 매일 숙취로 인해 피곤했지만, 서로에게 계산이 없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나흘간 친구들과 함께 하며 든 생각이 있다.
나는 사람들의 내면 깊은 곳에는 따듯하고 선한 마음이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막상 겉으로 표현되는 말과 행동은 사뭇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아마도 저만의 방식으로 타인을 배려하고 있기 때문이라 짐작해 본다. 이 과정에서 약간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어쨌든 상대는 그가 가진 방식으로 배려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에는 이걸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 같다. 제법 나이가 들고 보니, 저마다의 배려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이번 여행에서도 아닌 게 아니라 친구들은 제각각의 방식으로 서로를 배려하고 있음이 보였다. A는 A만의 방식으로, B 또한 그가 가진 고유한 언행으로 상대를 배려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관계가 깊고 오래되지 않은 이상, 그걸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은 만만한 일은 아닐 것 같다.
친구들의 서로 다른 배려를 보며 조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제라도 그걸 헤아릴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내 경우, 마음속에 있던 배려심이 겉으로 표출될 때면 밑바닥에 깔려 있는 일말의 따듯함이 순식간에 휘발되고 있음을 종종 느끼고 있다. 가까운 이들에게 보이는 내 언행은 습관적으로 직설적이며 투박하기 때문이다. 이걸 고쳐보고 싶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스스로를 평가할 때 잔정은 없지만 속정은 깊고 따듯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가까운 상대를 향한 언행은 그렇지 않다는 걸 생각하면 스스로에게 불만스럽다.
이는 타고난 성품 때문이기도 하고, 어릴 때부터 주변환경과 생활양식에 길들여졌기 때문이거나, 상대의 언행을 멋대로 곡해하면서 형성된 성격인 탓이 것도 같다.
하여 거칠고 투박한, 때로는 날카로운 언행을 보일 때가 자주 있는데, 가까운 이들을 대할 때 도드라진다. 특히 아내와 대화를 나눌 때 빈번하다. 이런 까닭에 아내에겐 늘 미안함을 가지고 있다. 아내에게 그 미안한 마음을 담아보려 하지만 이 조차 엉뚱한 방향으로 튈 때가 많다.
이런 습관을 고치기 위해 의식적인 연습이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 적어도 가까운 이들에게는 따듯함을 담고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기 때문이다.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나마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는다.
각자 다른 곳에서 출발해 같은 장소에 집결해 있지만 결국 우리는 서로 다른 개성이었고,
우리는 다르지만 오랜 시간 함께한 친구들이었다.
어느덧 50대의 아저씨가 되어버렸지만 후쿠오카에서 함께한 순간들은 모두 싱그러웠던 20대의 표정들이었다.
찬 공기가 깔린 오늘 아침, 나는 점점 넉넉해지기를 소망한다.
시간에 있어서도, 경제적으로도, 그리고 정신적으로도
여유 있는 삶을 꿈꿔본다.
넉넉한 가운데 가까운 이들에게, 나아가 내가 속한 사회를 향해 미약하게라도 베풀고 싶은 욕심을 내어본다.
먼 훗날, 30년 정도 지난 어느 가을 아침,
아마카세 온천 노천탕에 친구들과 함께 들어앉아있던 유쾌한 모습이나 유카타를 입고 료칸 식당에 모여 두런두런 저녁을 먹던 모습이 불쑥 떠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아침 바람 찬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를 자꾸만 흥얼거리게 되는 찬 가을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