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處暑)가 지난 지 일주일이 되었지만 폭염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녁이 되면 조금 누그러지지만 낮 동안은 여전히 그 기세가 맹렬합니다.
지난 몇 년 사이 우리나라의 여름은 길게 늘어지더니 이젠 흡사 동남아에 온듯한 느낌마저 드는군요. 기후변화의 현실을 확실히 체감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전에는 책이나 뉴스에서 지구 온난화나 환경오염에 관한 내용을 접할 때면 그렇구나, 문제가 있구나, 하는 정도였는데, 이렇게 직접 겪고 보니 환경과 기후변화의 심각성이 크게 와닿습니다.
어쩌면 우리 삶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처음엔 누가 무슨 말을 하건 건성으로 듣게 되죠. 자기만의 생각을 고집하거나, 비록 그 타당성을 인정하라도 한쪽 구석에다 툭 던져두고는 그냥 아무렇지 않게 사는 거죠. 그러다 현실을 맞닥뜨리고 나서야, 깨닫고 후회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 아닐까요.
살아보니 지나고 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많더군요. 그땐 그랬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돌이켜 보면 아쉬움이 남지만, 어쩔 수 없는 거죠. 이미 흘러간 과거인 걸 어쩌겠습니까. 어떠한 선택으로 인해 아쉬움과 후회가 남는다고 해도 되돌릴 수는 없는 거니까요. 그땐 미처 알지 못했던 복잡다단한 선택들이 모이고 모여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거죠.
지나온 세월과 당면한 오늘이 성에 차지 않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는 걸, 다들 잘 알고 있잖아요.
나이가 들수록 지금의 모습과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달리 뾰죡한 수가 없다는 걸 알게 되더군요. 돌이킬 수 없는 지난 일들을 후회해 본들 별다른 소용이 없다는 것도, 생을 송두리째 뜯어고치거나 바꾸기란 요원하다는 것도 알게 되죠.
그러니 지나온 자신의 인생을 고스란히 인정하고, 거기에서 뭔가 깨우친다면 그나마 다행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그만인 거죠.
젊을 때와는 달리, 인생은 그렇게 특별하거나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그저 우연하게 태어나서, 그냥 살아가다가, 어쩔 수 없이 죽는 게 전부라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어지더군요.
하루하루 늙어가고 죽어가는 걸 몸소 느끼기에, 드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요즘 들어 어린아이와 젊은 친구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꽤 너그러워진 것 같습니다. 유모차에서 멀뚱거리고 있는 아기들은 하나같이 이뻐 보이고, 곁을 스쳐 지나는 젊은 친구들의 생기 넘치는 모습에 슬며시 웃음 짓는 경우가 더러 생기더군요. 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함부로 행동하는 걸 보면 인상을 찌푸리는 때가 종종 있었거든요.
이런 변화는 앞서도 말했지만 무시로 늙고 죽어가고 있다는 걸 받아들이게 되면서부터, 살아 꿈틀대는 생명력에 대한 원시적 동경과 갈망이 커진 것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펄펄 살아 움직이는 생명을 동경하죠. 썩거나 농익은 과일보다 싱싱한 걸 선호하고, 병든 대상보다 건강한 동물이나 사람을 편안하게 보게 되는 것은 생명 유지의 본능이 우리 밑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일 겁니다.
저녁 산책 길에 탄력 있는 피부와 적당한 근육을 지닌 몸매 좋은 젊은 여성이 뛰고 있으면 자꾸만 그쪽으로 눈길이 가는데, 이는 단순히 성적인 욕망이라기보다는, 생이 서서히 기울어 가고 있음을 알게 된 한 인간의 생명을 향한 근원적인 갈망과 동경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생의 한창때가 어느새 지나버리고 이제는 이울어 가는 한 인간의 생명력에 대한 부러움의 눈길이라 할 수 있는 거죠.
빔 벤더스의 영화 '퍼팩트 데이즈'에서는 '코모레비'라는 단어나 나옵니다. 이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말하는데, 우리말의 '볕뉘'와 가깝습니다. 볕뉘는 '작은 틈을 통하여 잠깐 비치는 햇볕'을 말하니까, 굳이 말하자면 볕뉘가 좀 더 넓은 의미라고 할 수 있고, 음... 또... '햇빛'은 시각적인 의미고 '햇볕'은 기운이나 온도를 나타내는 정도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무튼 화장실 청소원인 히라야마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공중 화장실을 성실하게 청소하고, 점심시간이면 근처 공원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필름 카메라로 코모레비를 찍는 일상을 통해 소소한 기쁨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과거에 어떤 큰 사건을 겪은 듯한 히라야마에게서 반짝이는 코모레비를 보는 일은 그의 삶에 있어 소중한 행복인 거죠.
나뭇잎 사이로 떨어지는 햇빛은 소박하고 부드럽습니다. 코모레비를 보는 것은 히라야마에게 '생명의 힘' 즉 오늘 하루를 살고 싶게 만드는 에너지를 주고 있는 듯합니다. 매일 부드럽고 소박한 햇살을 보며 생명을 느끼고, 생명의 에너지를 받는 것처럼 보입니다. 셔터를 누르며 하루치 소중한 생명을 사진 속에 담아두려는 모습으로 읽힙니다. 어쩌면 그가 매일 찍고 있는 것은 코모레비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히라야마는 그에게 주어진 날들을 생각이 없는 듯 단조로운, 그만의 퍼팩트 한 하루를 살아가고 있더군요. 그런 히라야마를 보고 있으면 서서히 서서히 그의 삶에 동조되어 마침내 가슴으로 끄덕이게 되더군요.
긴 여름 무더위 속에 쏟아지는 소나기 같은 영화입니다.
아내에게서도 히라야마의 표정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밤산책을 할 때입니다.
아내는 나무와 꽃을 무척 사랑합니다. 그건 길가의 나무나 꽃을 바라보는 아내의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죠. 그럴 때면 아내는 한 없이 너그럽고 애정이 담뿍 담긴 표정으로 활짝 웃고 있습니다. 어쩌면 아내는 나뭇잎을 쓰다듬고 만지며, 꽃 향기를 맡으며, 그녀만의 방식으로 생명력을 길어 올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퍼펙트 데이즈'의 히라야마처럼 말이죠.
일주일 뒤면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白露)입니다.
그때쯤엔 여름은 마침내 긴긴 꼬리를 감추고, 내 앞에는 선선한 가을이 쑥스럽게 손을 내밀고 있을 거라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