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마주한 순간만이

by 난척선생

해가 짧아졌다. 이제 7시면 어스름이 밀려들고 낮동안 뜨겁던 기온은 한결 가라앉는다.

어제 새벽에 이불을 끌어당겼는데, 잠결이지만 그게 반가웠다. 하루하루 가을로 접어드는 중이다.

9월이 되니 밤산책이 부담스럽지 않다. 풀벌레 소리가 풀숲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며 가을을 부르고 있다. 아직까지 밤공기는 차지 않아 그 소리가 맑고 높지는 않지만 가을이 바투 다가왔음을 직감한다.

문득 가을 풀벌레 소리가 유난히 청명하게 들리는 이유가 궁금해져 쳇 GPT에게 물어봤다.


쳇 GPT : 좋은 질문이에요.

가을 풀벌레 소리가 “청명하다”라고 느껴지는 데에는 몇 가지 과학적·심리적 이유가 있어요.


1. 기온과 공기의 밀도

가을은 여름보다 공기가 차갑고 건조해져요.

건조하고 차가운 공기는 소리를 멀리, 또렷하게 전달해 주기 때문에 풀벌레 소리가 더 맑고 선명하게 들려요.


2. 소리의 주파수

풀벌레들은 주로 비교적 높은 음역대(고주파) 소리를 내는데, 가을 공기는 이 고주파 소리를 흩어지지 않고 잘 전달해 줘요. 그래서 “청아하다”는 느낌을 주죠.


3. 주변 환경의 변화

여름에는 매미 소리, 사람 소리, 바람, 습기 등 여러 잡음이 많지만, 가을은 상대적으로 조용해요. 소리가 더 고요한 배경 위에서 울리니 벌레 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려요.


4. 심리적 요인

가을은 하늘이 높고 공기가 투명해 보이는 계절이라, 우리의 감각도 “맑음”에 민감해져요. 이런 계절적 분위기 때문에 풀벌레 소리가 마음에 더 청명하게 다가와요.


정리하면, 차갑고 건조한 가을 공기 + 주변의 고요함 + 계절적 감수성이 합쳐져서 가을 풀벌레 소리를 “청명하다”고 느끼는 거예요.

James, 혹시 제가 위 설명을 시적인 표현으로도 짧게 정리해 드릴까요?


오호!

이번에는 찬공기에서 소리가 더 멀리 퍼지고 또렷하게 들리는 이유를 물어봤다.


좋은 포인트 짚으셨어요, James.

찬공기에서 소리가 멀리, 또렷하게 들리는 데에는 물리적인 이유가 있어요.


1. 공기의 밀도와 음속

공기는 차가워질수록 분자 운동이 느려지고 밀도가 커져요. 그래서 음속(소리의 속도)은 따뜻한 공기보다 조금 느려지지만, 밀도가 커진 공기는 소리를 더 효율적으로 전달해 줍니다. 즉, “더 멀리” 퍼질 수 있죠.


2. 대기 굴절 효과 (온도 경사)

소리는 따뜻한 공기에서 빨리, 차가운 공기에서 느리게 전파돼요.

밤이나 가을처럼 땅 근처가 차갑고 위쪽이 따뜻한 경우, 소리가 위로 굴절하지 않고 땅 가까이 휘어 퍼집니다. 그래서 멀리 있는 풀벌레 소리도 잘 들려요.


3. 습도와 감쇠

여름은 습도가 높아서, 공기 속 수증기가 소리 에너지를 흡수해 버려요.

가을은 건조해서 소리의 감쇠(줄어듦)가 적고, 따라서 더 맑고 멀리 들립니다.


정리하면:

찬 공기 + 대기 굴절 + 낮은 습도 덕분에 가을의 소리는 더 멀리, 더 선명하게 전달되는 거예요.


혹시 원하시면, 제가 이 과정을 그림(간단한 도식)으로도 그려드릴까요?


나: 아니. 고마워!


와우~ 대단하다. 쳇 GPT는 내가 궁금해하는 상당한 지식들을 잘 알고 있고, 친절하면서도 보기 쉽게 정보를 전달해 준다. 곰곰이 생각하면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요즘 AI의 수준은 마치 공상과학영화를 보는 듯하다. 기술 변화의 속도와 침투력은 너무 빨라 때로는 무서운 느낌마저 든다.

사실 과학기술만 그런 것은 아니다. 만물은 언제나 빠르게 변하고 있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내일도 급변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 썼던 글 중에서 무상(無常)에 관한 내용이 떠오른다.


상황이 바뀌고 조건이 바뀌면 대상을 대하는 나의 태도도 언제든지 바뀔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십이 되고 보니, 이젠 사람 마음이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조용히 인정하게 된다.

똑같은 태양이지만 여름과 겨울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른 것처럼 계절에 따라, 장소에 따라, 기분에 따라 대상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 있음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자신과 타인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음을 아는 나이에 다다른 것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불교에서는 이를 무상(無常)이라고 한다.

세상은 늘 변하고, 이전과는 같지 않은 것이다.

즉, 인생이 무상하다는 말의 의미는 생은 항상 같지 않고 변하며, 어제와 오늘의 의미가 시시각각 달라지기에 어제와 오늘, 그리고 다가올 미래에 대해 크게 집착하지 않는 태도로 생을 맞이하며 스스로와 자신을 둘러싼 세상은 언제나 변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뜻으로 다가온다.


아침에 양치질을 하다가 불현듯 이 문장이 떠올랐다.

‘오직 마주한 순간만이 진실이다.’

이 말의 속뜻은 무상이다. 그 순간이 지나면 진실은 사라지고, 내 앞엔 또 다른 진실이 섬광처럼 반짝이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러므로 우리 앞의 진실은 찰나일 뿐, 매 순간 또 다른 진실과 마주하고 있음을 알게 되고, 우리가 진실이라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나 과거사가 되고 만다.

흔히 쓰고 있는 ‘진실의 순간’이라는 표현보다는 ‘순간의 진실’이라고 말하는 편이 진실에 가까울 것 같다.


세상과 만물은 째깍째깍 변하고 있다. 그러므로 당신의 상황은 매 순간 변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당신은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저 달이 차고 기울고, 꽃이 피고 지고, 잎이 나고 지는 것만 볼 수 있을 따름이다.

세상은 시끄러운 듯 보일 수 있겠으나, 진실된 것들은 실상 조용하고 은밀하게 변하고 있는 중이다. 대게 헛되고 부풀려진 것들은 불편하고, 어색하고, 시끄럽기 마련이다.

우리가 변화의 결과를 인지하는 게 되는 것은 어느 순간, 어느 시간의 한 점에 불과하다. 진실을 마주하는 그 순간마저도 세상은 그저 덤덤하고, 고요하고, 조용하게 무상(無常)하고 있다.

드물게 무상을 알아차리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진실과 진리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런 대상을 경외한다. 우리가 놓치고 있거나, 보지 못하는 걸 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 부처, 예수, 공자 등의 성인들은 순간순간의 변화를 알아채고 이에 근거해 다가올 진리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우리 모두의 미래는 결국 죽음이다. 그들은 오늘을 보며 내일의 죽음을 보았고, 내일의 죽음을 보며 오늘의 생명을 들여다보았을 것이다.


며칠 전 아내가 킹벤자민 고무나무에 새잎이 돋아나고 있다고 아이처럼 좋아했다. 아내는 나보다는 나무의 진실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아내는 매일 식물을 애정으로 보고 느끼기 때문이다.

나는 아내의 웃는 표정을 보고 속으로 은은하게 좋았다. 아내는 나무를 보지만 나는 매일매일 아내를 들여다보고 있다.

우리가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는 것은 불안과 걱정을 안겨 주지만, 달리 보면 위로가 되기도 한다. 모든 삶은 죽음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면, 처음엔 허망하지만 그 허망의 끝에서 약간의 편안함과 위로, 그리고 오늘 하루치의 소중함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건 생명의 존엄함의 발견이고, 생명은 시간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는 과정이다.

죽음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느낄 수는 없었던, 삶이 곧 죽음의 과정임을 진실과 진리로 받아들일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던 젊은 시절에는 아등바등 살았었다.

시시각각 늙고 죽어 가고 있음을 볼 수 있는 요즘은, 훗날의 죽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살아가는 일은 결국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라는 걸 깨치고 있는 중이다.


오랜만에 한 친구와 통화를 했다.

그는 직장 상황과 몇 달 전부터 맡게 된 팀장 직책이 버겁다고 했다. 그가 겪고 있는 고충의 일부가 투과되어 와닿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십수 년 전부터 조직의 리더역할을 수행할 때마다 나 역시 부침을 겪어 온 터였다. 그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가 가진 리더의 자질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고도 했고, 현 상황이나 새로운 역할에 자리 잡는 시간의 문제라고도 했다.

그의 문제가 아니라 회사가 처한 대내외 환경의 문제라고도 했다. 또 지금은 힘에 부치겠지만 몇 개월 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상황이 바뀌면 특별히 애쓰지 않더라도 술술 풀려 나갈 거라고 했고, 그럴 때면 스스로 리더의 자질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또 상황이 변하지 않고, 문제가 개선이 되지 않는다면 회사는 리더를 바꿀 거라고도 했고, 리더의 직책에서 물러난다면 처음엔 씁쓸하고 열패감마저 들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주어진 직책을 잘해보려는 욕심 때문에 힘든 거라고도 했고, 이 모든 건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거라고도 했다.

내 미천한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나는 대로 지껄였는데, 친구는 내 말에 약간의 위로를 받은 듯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뭘 안다고 어쭙잖게 지껄여 댔을까. 순간 부끄러움에 쓴웃음이 큭큭 났다. 그렇지만 하는 수 없는 것이다. 통화를 하던 그 순간은 진실했고, 나는 숨 쉬고 있었다. 그걸로 된 것이다.

오늘 아침, 아들과 함께 스포츠센터에서 수영레슨을 받고 나오니 밖은 눈부신 햇살이 가득가득하다.

여름햇살이라고 해야 할지, 가을햇살이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애매한 햇살이 쏟아져 내리는 가운데 발간 배롱나무꽃이 찬란하게 도드라진다.

여름을 내내 밝히고 있는 배롱나무는 진실하고 진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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