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역학 제2법칙은 에너지 또는 만물은 시간이 지날수록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말은 무질서도가 높아진다는 뜻으로 자연계의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질서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고, 또한 이렇게 흐트러진 것은 원래의 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집안을 깔끔하게 청소를 한 뒤 사람 손길이 닿지 않게 하고 가만히 둔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게 되면 먼지가 쌓여 더러워지고, 가구 혹은 가전제품 따위는 처음보다는 낡을 것이고, 아마 천년쯤 지나게 되면 집과 그 내부에 존재하던 물건들의 형체는 부스러지고 흩어져 원래의 상태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기에 불가역적이라는 말이다.
이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자연이나 생명 혹은 인공 구조물이나 기계, 도구뿐만 아니라 에너지에게도 해당되며, 거의 모든 것에 적용되는 법칙이다. 그러므로 엔트로피의 법칙에 따르면 타임머신이 발명된다 해도 미래로의 여행은 가능하지만(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방향 즉, 과거로의 여행은 불가할 것이다. 우리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걸 막을 수도, 바꿀 수도 없는 것이다.
빅뱅 이후 우주는 시공간을 끝없이 흩어지며 팽창해 나가고 있다. 이를 두고 그리스어에서 차용한 카오스(혼돈, 공허)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데, 카오스로부터 시작된 우주는 지금도 끝 간 데 없이 확장하고 있는 중이다. 다시 말해 엔트로피는 빅뱅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증가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우연히도 어떤 질서가 떡하니 자리를 잡았다. 우주가 엔트로피가 증가되며 팽창하는 가운데, 태양계나 은하계는 어떤 힘의 축을 중심으로 질서 정연하게 공전하고 있다. 지구는 태양을, 태양은 은하의 중심축을 두고 팽팽하게 돌고 있는데 이를 일컬어서 역시 그리스어에서 따온 코스모스(질서, 조화, 정돈)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것은, 우주는 끝없이 팽창하며 무질서를 향해 뻗어나가고 있는데, 지구는 일관적이며 규칙적으로 태양을 돌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뉴턴이 발견한 만유인력의 법칙이다. 이 인력법칙은 정확한 규칙성과 항상성을 지니고 있는데, 우주가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며 무질서의 방향으로 확장하고 있으면서도, 규칙성과 항상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것들은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음으로 아무리 발버둥 친다고 해도 결국 무질서를 벋어나지 못하고, 허물어지고 부서져서 산산이 흩어질 것이 분명한데도, 태양은 우리 은하를, 지구는 태양을, 달은 지구를 도는 것처럼, 그들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를 쓰고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생명은 항상 질서(생존)를 유지하려 에너지를 쏟고 있는데, 생명 또한 결국엔 소멸할 것이 뻔한데도 체내 질서를 유지하려 애쓰며, 주위환경을 수시로 정리하고 있음을 생각해 볼 때 아이러니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종국에는 모두 무질서 속으로 빨려 들어가 흩어질 것이 분명한데도, 살아있는 것들은 무질서의 법칙을 거부하고 질서를 구축하는데 온 에너지를 쏟아 내고 있다. 죽음을 피할 수 없음에도, 우리는 매일 물과 음식을 섭취하고 있으며, 운동을 하고, 청결과 기분전환을 위해 청소를 하고 몸을 씻고 있다. 즉, 살기 위해 발버둥 치며 온몸으로 엔트로피의 법칙을 밀어내려 애쓰고 있다는 말이다.
모든 개체는 소멸을 전제하지만 생존하기 위해 엔트로피를 거부하는 방향으로 역행하고 있다. 이처럼 생명은 매 순간순간 카오스를 거부하고 저항하며 코스모스를 지향하고 있다.
모든 생명은 소멸을 향해 다가가고 있음으로 어느 기점을 지나게 되면서 점점 노쇠하게 될 수밖에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한 개체가 예전과 같은 질서를 고스란히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다 큰 에너지를 필요로 할 것이다. 즉, 나이가 들수록 힘이 들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인간 또한 마찬가지로 일정기간이 지나면 엔트로피의 증가로 인해 노화가 진행되는데, 나이가 들수록 생존을 위해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이다. 예전보다 힘이 달린다는 사실을.
처음 몇 번에 걸쳐 이런 사실을 인지하게 될 때면, 자신이 쇠락하고 있음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아서, 심리적 저항과 반발하게 되지만 시간이 거듭될수록, 내장기관뿐만 아니라 뇌 기능 또한 전과 같지 않으며, 팔다리에 힘이 점점 빠져나가고 있는 걸 알게 되고, 마음 또한 예전과 달리 단단히 붙들어 매기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되면서, 자신이 점점 소멸하고 있는 중임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는 노화의 과정을 통해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되며, 결국 몸과 마음이 산산이 흩어지는 걸 막을 수도, 되돌리 수도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생존을 위해 몸의 질서를 유지하려 지금 이 순간에도 발버둥 치고 있는 중이다.
생명은 본능적으로 생을 좇기 마련이고, 그 길의 끝에는 죽음과 흩어짐과 소멸이 기다리고 있음 이 분명한데도, 절대 거스를 수 없는 엔트로피의 법칙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원자를 제외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 우주 속으로 흩어지게 되는 운명인데도 말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소멸에 가까워질수록 자연스럽게 엔트로피의 법칙을 받아들이게 되며, 그 과정에서 어렴풋하지만 뭔가를 깨닫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손아귀에 꽉 움켜쥐고 있었던 것들을 어쩔 수 없이 하나둘씩 풀어놓기 시작한다. 집착을 놓을수록 그간 보이지 않던 어떤 것들이 어슴푸레 보이기 시작하고, 미약하게나마 어제보다 쪼끔은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싫지 않은 착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만년이 지나고 나면...
나라는 존재는 말끔히 사라지고 없겠지만,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의해 나를 구성하고 있던 원자들은 그때의 세상 속에 흩어져서 어딘가에 섞이고 녹아들어 있을 것이 분명하다. 원자로 구성된 나라는 존재는 결국 다른 물질의 원자로 다시 흩어져 존재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생의 소멸에 대한 허탈감으로부터 조금은 위로가 되는 것도 같다.
죽음을 향해 서서히 분해되고 있는 과정은 어쩌면 아집에서 벋어나 스스로에게서 해방되는 과정일 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오늘도 나는 해방을 향해 하루하루 늙어가고,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엔트로피의 법칙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해도, 결국 우리는 본능적으로 생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생명이란 자연스레 그러한 것이다.
중력을 거슬러 하늘을 향해 뻗어 오르는 나무들, 끼륵끼륵 울어대며 창공을 가로지르는 기러기떼들,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 네 발을 거부하고 두 다리로 일어선 유인원들, 새벽 안락한 침대를 거부하고 오늘도 불안한 두 다리를 내딛으며, 하루를 지탱하고 있는 오늘날의 사람들, 모두가 우주 무질서의 법칙을 거부하고 그들만의 질서를 향해 힘겨운 버티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우주의 카오스를 거부하고, 스스로의 코스모스를 구축하려 쉬지 않고 애쓰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엔트로피와 만유인력에 무릎을 꿇고 말겠지만,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무질서와 중력의 흐름에 스스로를 맡겨 두려 하지 않는다. 생의 마지막 문을 열고 나서야 비로소 할 일을 다했다는 듯 스르르 우주의 법칙에 자신의 몸과 마음을 오롯이 내어 놓는다. 이것이 생명의 본래의 모습이지 않겠는가. 죽음을 거부하고, 엔트로피의 흐름에 몸을 내맡겨두려 하지 않는 것.
오늘날 인류가 진화하고 문명을 발전시켜 온 것에 대한 핵심단어를 들라고 하면, 그것은 숙명적인 거대한 흐름에 대한 '역행'일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생이란 죽는 순간까지 엔트로피를 거부하는 것이고, 온전히 엔트로피를 흡수함과 동시에 소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연한 카오스로부터 시작된 우리의 삶은 사는 동안 끊임없이 코스모스를 지향하며, 에너지를 쏟아내다가, 천천히 무질서로 흩어지면서 소멸하여 카오스로 돌아가는 것.
어쩌면 이것이 우주의 법칙이나 질서(코스모스) 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