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살다

by 난척선생

사십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불안과 걱정이 앞섰던 것 같습니다.

그런 탓에 재무적으로 훗날을 대비해 저축과 보험 그리고 투자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였고, 나름의 사회적 성장발전을 위해 자기 계발을 하며, 다가올 날들을 준비하는 것에 에너지를 쏟았죠. 앞날의 불확실한 삶을 어떻게 해서든 예측하고 디자인해 보려고 노력하며 살아온 것 같군요.


하지만 지금은... 그냥저냥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되도록 하루의 루틴은 흩트러뜨리지 않고, 한 주의 주말 계획 정도만 세우려 하고 있습니다.

주말 계획이라고 해봐야 소소하고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 한 달에 한번 정도 친구들과 함께 하는 등산과 아내와 영화관을 찾는 것을 제외하면, 보통 주말은 아침에 수영을 한 뒤 아내와 점심식사를 먹으러 나가고, 오후에 도서관에서 이렇게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정도가 전부죠.

주중에는 퇴근 후 정해진 루틴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주말에도 마찬가지로 주말의 소소한 루틴을 그대로 지키고 있습니다.

이런 삶의 루틴은 오래전에 습관으로 굳어져서 이젠 잠자고, 밥을 먹는 것처럼 익숙하고 편안합니다. 그렇다 보니 어쩌다가 이런 루틴이 깨지는 것이 썩 달갑지가 않기에 주중이건 주말이건, 그저 별생각 없이 이런 나만의 루틴을 따라 살고 있습니다.

중년이 된 지금, 수년 혹은 수십 년 아니 몇 달, 몇 주 뒤의 일조차 짐작조차 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죠. 더군다나 미래를 예측하는 일 따위는 이젠 딱히 관심이 가지 않습니다. 더 이상 알 수 없는 미래를 앞 당겨 걱정하거나, 애써 대비하는 것에 많은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은 거죠.

젊은 시절과 달라진 삶에 대한 이런 시선의 변화는, 아마 나이가 들면서 내 안의 에너지 총량이 줄어든 탓에서 온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중년이 되고부터는 나이를 거듭할수록 어떤 대상이나 사건에 대해 쏟아낼 내 안의 에너지가 점점 달리고 있음을 몸소 느끼기 때문입니다.

하여 멀리서 희부윰하게 아른거리는 추상적인 일에 힘을 쏟기보다는, 그냥 내 앞에서 또렷하게 빛나고 있는 오늘에만 집중해서 살아가는 편이, 점점 고갈되고 있는 에너지를 절약하고 보존하는 현명한 방법이라는 걸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는 중인 것 같습니다.

요즘 들어,

오른쪽 눈의 백내장 증상이 나날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사물이 또렷하지 않고 부옇고 흐릿하게 보이는군요.

기억은 점점 휘발되어,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때면 '그거 있잖아... 그 왜, 뭐 더라...‘를 달고 살고 있더군요.

해가 갈수록 흰머리가 늘어가고, 좁은 이마는 점점 넓어지더니 어느새 풍성했던 머리카락은 가늘고 성기게 되었습니다.

무릎관절에서는 뚝뚝 소리가 끊이지 않으며, 불과 몇 개월 전에 스스로 경계하자고 다짐했던 '끙끙 신음소리'도 여전히 입 밖으로 새어 나오고 있죠.

이처럼 하루하루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 만은 아주 명확합니다.

하지만 늙어 간다는 것은, 모든 것들이 희미해져 가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시야도, 기억도, 머리카락도, 고집이나 집착도, 에너지도 서서히 희미해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젊은 시절, 불안하고 불확실했던 미래는 벌써 내 앞에 도착해 있군요.

내 미래를 위한 준비가 잘 되었는지, 아니면 그저 허둥지둥 살아온 것이지는 알 길이 없죠.

내가 마주한 세상과 앞으로 펼쳐질 일들 또한 여전히 모호하며,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고요.

부처님의 말씀처럼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지요. 과거와 미래는 결국 어쩔 수 없는 일들 일 뿐인 거죠.

그러니 오늘 하루만이라도 조심조심 살아낸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새떼처럼 많은 날들이 기억의 저편으로 푸드덕 날아갔고,

시간은 내 앞에서 낙엽처럼 흩날리듯 떨어지지만,

또다시 많은 날들이 봄꽃처럼, 단풍처럼 곱게곱게 물들어 올 거라고 웃음을 지어보는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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